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16시간 일하고 알바뛰어도 폐업 외 답 없었다" 전직 사장님 6인의 절규

알림

"16시간 일하고 알바뛰어도 폐업 외 답 없었다" 전직 사장님 6인의 절규

입력
2020.10.12 16:24
수정
2020.10.12 16:31
3면
0 0
8일 명동 한 상점에 영업종료 안내문이 붙어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올해 4월 재취업 프로그램 참여자 40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폐업 소상공인은 창업부터 폐업까지 평균 6.4개월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8일 명동 한 상점에 영업종료 안내문이 붙어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올해 4월 재취업 프로그램 참여자 40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폐업 소상공인은 창업부터 폐업까지 평균 6.4개월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자본금 4,000만원으로 시작한 떡볶이 장사는 2년 만에 부채만 4,000만원 남겼어요.”

서울 동대문구에서 2018년 11월 떡볶이 가게를 차린 박세진(31)씨는 임대차 계약이 끝나는 다음달 가게 문을 닫는다. 청년 사업가의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떡볶이 가게는 20대 시절 직장 생활과 아르바이트로 번 돈 4,000만원으로 시작했다.

①4,000만원 빚만 남긴 동대문 떡볶이집

처음엔 장사가 잘 되는 듯도 했다. 월 매출 1,000만원을 찍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올해 2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떡볶이집엔 사람이 들지 않았다. 결국 매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가며, 월 임대료 120만원도 내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직원을 내보내고 배달도 직접 뛰어봤지만, 그가 쥔 선택지는 결국 폐업 뿐이었다. 박씨는 “창업 때문에 수천만원 빚만 남고 차상위 계층이 됐다”며 “배달 알바를 하며 버티는 것도 이젠 지쳤다”고 토로했다.

불황에도 잘 나가는 소수 음식점을 제외한 대부분 요식업 경영자들은 올해 박씨와 같은 실패담을 겪었다. 행정안전부 인허가 관련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서울 시내 음식음식점 8,157곳이 문을 닫았다.

②폐업도 맘대로 못하는 백화점 디저트 전문점

한국일보가 코로나 19 여파로 장사를 접었거나 폐업을 앞둔 6명의 자영업자들의 사연을 들어 봤더니, 매출 감소 때문에 도저히 사업을 이어나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2년 전 수도권 백화점에서 프랜차이즈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다 8월에 폐업한 김유진(가명ㆍ38)씨도 올해 2월 찬바람을 맞기 시작했다. 매달 재료값 400만원, 관리비 50만원, 인건비 190만원, 임대료(매출 23%) 등을 쓰면, 사비 350만원을 털어 넣어야 가게가 겨우 유지됐다고 한다. 백화점 입점 가게라 마음대로 문을 닫을 수도 없었다는 김씨는 “옷 가게 5년, 치킨집도 2년이나 해봤지만 이 정도로 힘든 적은 없었다”며 “출근하는 자체가 지옥이었다”고 털어놨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③위약금 토해내고야 폐업한 파스타집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준비하며 ‘문을 열기보다 문 닫기가 힘들다’는 말을 절감했다. 동작구 보라매병원 인근에서 파스타집을 운영하다 8월 폐업한 김소희(47)씨는 “2년 전 개업할 때 6,000만원 들인 인테리어를 업자에게 130만원을 주고 철거했다”며 “예상보다 빠른 폐업 탓에 포스기(판매시점정보관리기), 폐쇄회로(CC)TV 등을 위약금까지 물어주면서 반납했다”고 말했다. 폐업 직전 상반기 종합소득세와 7, 8월 세금 등 142만원을 납부하니 통장에 남은 건 빚 8,000만원이었다. 김씨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시는 요식업계에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④구로 고깃집은 아직 폐업도 못 해

어쩌면 이렇게라도 폐업을 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인 경우도 있다. 구로구에서 돼지갈비집을 운영하는 심태섭(55)씨는 폐업 시도조차 실패했다. 강서구에서 배달전문 소곱창 가게를 운영했던 심씨는 6월 3,500만원을 대출받아 새로운 가게를 인수했지만 곧장 코로나19 재확산에 직격탄을 맞았다. 소위 ‘오픈효과’를 누릴 기회도 날려버린 심씨는 고민 끝에 인수 두 달 만에 가게를 내놨지만, 계약금까지 지불한 인수 예정자는 인계를 일주일 앞두고 계약을 파기했다. 심씨는 “고깃집이라 폐업을 하기 위해 원상복구를 하려면, 환기구 교체 등 비용이 어마어마해 그럴 수도 없다”며 “10년째 자영업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장사가 두렵고 겁이 난다”고 체념했다.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서 상인들이 폐업식당에서 사들인 중고 식당가구와 주방기구를 트럭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서 상인들이 폐업식당에서 사들인 중고 식당가구와 주방기구를 트럭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⑤다시 경력이 단절된 40대 경단녀

거액의 빚을 남기고 '가게'라는 무겁던 짐을 털긴 했지만, 폐업 이후 삶도 불안하다. 강동구에서 5년째 운영하던 왁싱샵을 폐업한 김성희(가명ㆍ49)씨는 5년 전 했던 고민을 다시 한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관련 회사에서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던 김씨는 ‘경력단절녀’라는 핸디캡을 안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왁싱샵을 차렸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의 학비라도 벌려면 다시 생활비를 마련해야하지만 5년 전보다 나이는 더 들었고, 몸은 더 지쳤다. 김씨는 “뭐라도 일을 하고 싶기는 한데 지금 나이에 취업도 힘들고, 창업하려면 돈이 또 들어가니까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⑥16시간 일해도 폐업 못 면한 만두집

정부의 재난지원금도 수렁에 빠진 이들에게 별 도움이 되진 못했다. 경기 과천시에서 만두가게를 하다 신천지 사태로 폐업까지 하게 된 이정우(64)씨는 정부로부터 한 푼도 지원을 못받았다고 한다. 올해 1월 개업한 탓에 지난해 소득 감소분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암으로 몸이 불편한 아내와 가게 옆에 셋방까지 얻어 하루 16시간 동안 일을 했지만 가게를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씨는 “장사하는 동안 하루 일당 10만원 막노동을 하며 버텼다”며 “정부가 우리 소상공인이 실제로 겪는 일들을 세밀하게 살펴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