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국립외교원장,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등 대북 전문가 3인은 12일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한 데 대해 미국에 대한 '억지력'을 과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의 무게 추가 미국에 쏠려 있지 않다는 경고 성격이 강했다는 의미다.
이들은 북한이 당장 신형 무기 시험발사 같은 대형 도발을 감행하기보다 미국 대선 이후 세계 정세를 살피며 상황 관리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번 열병식이 대미ㆍ대남 메시지보다는 내부 결집에 맞춰져 있다고 분석했다. 김준형 원장, 정세현 부의장, 김연철 전 장관은 이날 각각 CBS 김현정의 뉴스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했다.
"북한, 체제 보장 요구하면서도 수위 조절 신경 써"
북한이 열병식에서 ICBMㆍ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신형 전략무기들을 공개한 데 대해 '자신들의 체제를 보장하라'는 메시지를 미국에 던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전략무기를 이용한 도발 의지는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대미ㆍ대남 메시지를 보내며 수위 조절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평가했다.
김준형 원장은 "(북한이) 굉장히 치밀하게 계획하고 수위를 잘 조절한 것 같다"며 "전략무기를 쏘거나 실험했다면 전체 판이 깨지는데, 자기들은 충분한 억지력을 갖고 있다는 걸 전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북한이 앞으로 자기들의 체제가 보장되지 않을 경우 무기들은 자신들을 지키는 수단이 될 것이며, 급한 게 없다는 걸 확실히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정세현 부의장은 "미국한테 굉장히 위협적인 무기들을 다 선보였다"며 "비유하면 주먹질을 직접 하지 않고 알통 자랑만 한 것이다. '건드리면 내가 이 알통으로 한 대 때릴 수 있으니 건드리지 마라'는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김연철 전 장관은 "북한이 앞으로 다양한 환경을 검토할 것으로 보여지는데 미국 대선 결과가 가장 중요할 것"이라며 "향후 변수가 많아 열병식에선 대체로 상황관리를 해 나가겠다는 의도가 읽혀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1월 8차 당대회가 열리는데 이전에 정세에 대한 평가와 전략적 방향에 대해 정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이번에 선보인 전략무기를 시험 발사하는 등 도발을 벌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김 전 장관은 "이런 무기들은 실전 배치를 하려면 시험 발사를 해봐야 된다"며 "굵직굵직한 환경 변수들이 있어서 거기에 따라 (발사 시기를) 결정할 텐데 이를 방지할 수 있는 환경 마련이 숙제로 남겨졌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민 감성 건드리는 세계 지도자 유행 따라가"
세 사람은 열병식 분위기를 볼 때 볼거리를 풍성하게 해 북한 주민을 위로하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평가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눈물을 흘리는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추스르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즉 열병식이 대외보다는 대내 결집 다지기에 활용됐다는 설명이다.
김준형 원장은 "(열병식은 북한) 인민에게 한 얘기가 제일 주목할 부분"이라며 "김 위원장이 12번이나 고맙다고 했는데, 국민의 감성을 건드리는 세계 지도자들의 유행을 따라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눈물에 대해선 "북한의 최고 존엄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인간적 모습을 보여줬는데, 할아버지ㆍ아버지와 다른 김정은 리더십의 특징"이라며 "백두혈통과 철권통치만으로는 국민들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기도 하다"고 예측했다.
정세현 부의장은 "(김일성, 김정일은) 잘못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른바 '수령의 무오류' 원칙이란 게 있었다"면서 "김정은 시대에선 북한 인민과 최고 수령이 동고동락하는 모양을 만들어 동질성을 높이고 체제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김 위원장이 이날 입은 회색 양복도 주목했는데, "할아버지(김일성)가 즐겨 입던 회색 양복을 입어서 할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려 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10일 0시에 맞춰 심야 열병식을 진행한 점에 대해선 '대외 과시용'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김준형 원장은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결심을 보여주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고, 김연철 전 장관은 "최근 북한이 행사 때 조명과 빛을 많이 활용하는데, 이번 열병식의 핵심은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수해 등 어려움을 겪는 주민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의 대남 유화 메시지, 확대 해석은 말아야"
김 위원장의 유화적 대남 메시지를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김 위원장은 "하루빨리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또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이란 표현도 썼다. 일부에선 남북교류 재개에 대한 의지를 비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지만, 낙관적으로 관측한 것이라고 선을 그은 셈이다.
김준형 원장은 "남한과 손 잡을 날을 바란다는 것(원론적인 수준)이지 구체적으로 남한에 대한 불만이나 제안이 담기지 않았다"며 "2018년 신년사에선 평창동계 올림픽에 대해 사변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체적인 내용이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과잉 해석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이게 마치 대화의 제스처로 보는 건 무리한 해석"이라고 일축했다.
김연철 전 장관도 "김 위원장의 표현은 3월과 9월 남북 정상 간 주고 받은 친서 표현과 비슷하다"며 "말 그대로 코로나19 상황이 조금은 해결돼야 접촉할 수 있다는 것으로, 너무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북미관계가 개선되기 어려운 만큼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북미관계를 풀어나가려는 의도를 담았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정세현 부의장은 "미국에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정책을 추진하려고 해도 1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미국이 뭔가 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남북이 뭔가 해 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남북이 한 발 앞서 관계 개선을 위해 추진해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대선 이후 남북 정상회담 재개 등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깜짝 이벤트가 열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갑자기 두 정상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만날 수도 있다"며 "문 대통령이 7월 들어 새 외교안보팀과 꾸준히 북한을 노크했다. (정부가 미국 대선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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