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대책위 ‘유일호 카드’ 무산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 4개월여 만에 시험대에 올랐다. 그의 평생 숙원인 ‘공정경제 3법’이 당내 반발에 부딪힌 데 이어,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경선룰 등을 논의할 선거대책위 위원장에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를 임명하려다 무산되면서다. 리더십이 급격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내년 4월까지 당을 이끄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12일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비대위 회의를 앞두고 비대위원들과 주요 당직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하면 대선에서 진다”고 우려를 나타냈다고 한다. 당 중진들을 중심으로 여당이 독식한 상임위원장직 18개 중 7개를 가져오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을 거론하면서다. 그는 “이러다가는 비대위를 더 끌고 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국민의힘이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 보다 여전히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우회적 질타였다.
상임위원장 재배분만을 거론하긴 했지만, 김 위원장의 이런 언급은 일련의 당 상황에 대한 작심발언으로 해석된다. 비대위는 당초 유 전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4ㆍ7 재보궐선거대책위원회를 이날 띄우려 했으나, 당 안팎의 반발에 부딪히며 계획이 불발됐다. 유 전 부총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지낸 친박근혜계 인사라, 특히 비박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비대위는 그 대신 영남 3선인 김상훈(대구 서구) 의원을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대책위의 명칭도 경선준비위로 바꿨다.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이 직접 인선을 추진한 인사 대신 당 주류인 대구ㆍ경북(TK) 의원이 위원장직을 가져간 셈이 됐다.
대책위를 조기에 띄워 서울ㆍ부산시장 선거를 ‘야당의 판’으로 만들겠다던 전략이 시작부터 차질을 빚으면서, 당 안팎에선 비대위가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 경선준비위원은 “인선부터 비대위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4ㆍ15 총선 참패로 무너진 당을 일으켜 세울 유일한 적임자로 의원들의 부름을 받아 당권을 잡았다. 그러나 보수정당에는 ‘굴러온 돌’이나 다름 없는 김 위원장에게 찾아 온 위기는 예견된 일이었다. 당의 한 재선 의원은 “김 위원장은 당에 ‘뿌리’가 없기 때문에 흔들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비대위 초반에는 김 위원장을 못마땅해하는 이들도 당 지지율이 오름세여서 김 위원장을 ‘믿고 지켜보자’는 분위기였지만, 지지율이 정체되면서 김 위원장의 지지대가 사라진 상황”이라고 평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자기 세력이 없는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한계를 드러낸 모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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