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베트남에 부는 야구 바람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 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한국일보>
지난달 24일 저녁 베트남 하노이의 한 공터. 해가 지자 청년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가을에 접어든 한국과 달리 30도를 웃도는 베트남의 9월은 여전히 무더웠다. 하지만 주섬주섬 야구 글러브를 꺼내든 이들은 더위가 익숙한 듯 캐치볼을 시작했다. ‘퍽, 퍽’ 경쾌한 포구 소리가 잇따라 공기를 가르자 야구 문외한인 베트남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 쳐다봤다. 정식 연습장도 아닌 광장에서 어둑한 조명마저 높은 곳에 하나만 켜져 있다 보니 잠시만 집중력을 잃어도 공은 엉뚱한 데로 빠지기 일쑤였다. 수시로 공을 주우러 몸을 움직인 탓에 청년들의 옷은 이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옅은 어둠 속으로 언뜻 보이는 건장한 남성의 인상이 낯설지 않았다. 한국 프로야구 LG트윈스 선수 출신인 유재호(30) 전 라오스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다. 잠시 후 그가 던지는 배드민턴 셔틀콕을 치는 훈련이 이어졌다. 야구 연습장이 없는 베트남에서는 공을 멀리 보내는 타격 훈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며칠 뒤 일요일 오전. 하노이 미딩 지역의 한 축구연습장에서 청년들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그럴듯한 야구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들은 베트남 1세대 야구인. 유 전 코치도 함께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더운 나라에서 청년들은 왜 야구에 목을 메는 걸까. 또 한국 엘리트 야구인은 왜 야구 불모지에 온 걸까. 의문을 풀어야 겠다.
친선시합 작은 인연, 협회 창설 결실로
베트남과 한국의 야구 동행은 작은 인연에서 시작됐다. 2016년 하노이 한국국제학교에서 체육 과목을 가르치며 야구부 감독도 겸했던 이장형(43) 교사는 하노이 국립대에 야구 클럽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친선경기를 추진했다. 속구만 던지 줄 알던 하노이대 선수들은 기본기가 충실한 한국 고교생들에게 당연히 크게 졌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뒤 만난 하노이대는 예전의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그 사이 유튜브를 보면서 변화구를 장착했고 타격의 깊이와 세밀함도 더해졌다.
베트남 야구인들의 열정과 발전 가능성에 놀란 이 교사는 2018년 라오스로 향했다. 한국 야구의 레전드이자 당시 라오스에 야구를 보급하고 있던 이만수 전 SK 감독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듬해 이 전 감독이 이끄는 라오스 국가대표팀과 베트남팀의 하노이 친선경기가 성사됐다. 그는 “시합 후 베트남에도 한국 야구를 전파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1904년 외국인 선교사가 한국에 야구를 소개한지 100년이 지난 지금 전 국민이 사랑하는 스포츠로 거듭난 것처럼 베트남도 야구를 통해 더욱 하나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실은 훗날 베트남 야구협회 출범으로 나타났다. 이 전 감독과 이 교사, 실무를 총괄하는 이용득 베트남 국영방송(VTC) 온라인 부사장 등 지원 조직을 꾸린 한국인들이 산파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지원단의 진심 어린 노력은 베트남 정부를 움직였다. 정부는 내년 하노이에서 열릴 동남아시안게임(SEA)과 2022년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에 참가하기로 방침을 굳혔다. 야구가 워낙 생소한 스포츠라 실무를 맡을 적임자가 없어 망설였지만 이 전 감독이 유 전 코치를 보내준 덕분에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한국프로야구연맹(KBO)도 야구교본과 각종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로 약속했다.
협회 창설은 시간 문제인 듯 보였다. 이 때 엉뚱한 복병이 등장했다. 기나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하늘 길을 막았고, 이 전 감독도 베트남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현지 지원단은 좀 더 힘을 냈다. 이 교사 등은 하노이대 야구클럽 전 주장 팜맷찌엔과 함께 베트남 스포츠국 관계자들을 만나 협회 창설 필요성을 꾸준히 어필했다. 지난한 회의와 현장 실사도 반복됐다. 마침내 베트남 정부는 내달 창립 총회를 열고 베트남 야구협회의 시작을 알리기로 결정했다. 초대 야구협회장은 딴득판 베트남 스포츠총국장, 고문은 이 전 감독이 각각 맡기로 했다. 초대 감독에는 유 전 코치가 부임할 예정이다. 4년 전 그저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이 만나 펼친 친선 시합이 협회 창설이란 원대한 성과로 마무리된 것이다.
연습장 없어도 열정만큼은 최고
베트남 야구협회는 유 감독의 지휘 아래 12월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를 예정이다. 전국의 야구클럽 회원이 200여명에 불과하고, 동호인까지 다 합쳐도 2,000명을 겨우 넘기는 등 베트남 야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규격 야구장도 하노이의 한 국제학교 운동장이 전부일 정도로 야구 생태계는 열악하기만 하다.
그러나 야구를 향한 열정만큼은 열악한 인프라를 뛰어 넘고도 남는다. 하노이(6개), 호찌민(2개), 다낭(1개)의 클럽 선수들은 20여명에게만 주어지는 ‘베트남 국가대표’ 타이틀을 얻기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연습하고 있다. 찌엔 전 주장은 “우리는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가 아니고 직장에서 일한 뒤 만나 훈련하는 순수 야구인”이라며 “아직은 볼품없지만 국가대표로 선발될 경우 베트남의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칠 각오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라오스에서 동남아 야구를 이미 경험한 유 감독도 베트남 야구의 미래를 낙관했다. 그는 “SEA 야구 종목에 출전하는 11개국 가운데 필리핀과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를 제외하면 대회 출전 경험이 한 두번에 불과하다”며 “베트남 선수들은 다른 동남아 나라들보다 기술 습득 속도가 월등히 빨라 준비만 잘하면 4강 진입도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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