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운동 의혹 부각' 일본 전략 경계
외교부가 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둘러싼 갈등과 관련해 "정부가 직접 개입할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민간 차원의 문제에 정부가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실은 개입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측면도 있다. 정의기억연대의(정의연) 회계 부정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소녀상 문제로 일본과 맞붙으면 유리할 게 없기 때문이다.
베를린 미테구(區)는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에 오는 14일까지 철거해달라는 공문을 최근 보냈다. 소녀상 설치로 독일과 일본 사이에 긴장이 조성됐다는 이유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2일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과 전화통화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는 등 소녀상 철거를 위한 집요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도 지난달 29일 “일본 정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소녀상 철거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코리아협회는 베를린 행정법원에 철거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법적 대응에 나섰다. 독일에선 한국계 민간단체와 일본 정부의 싸움으로 번지는 중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13일 "제 3국에서 발생한 소녀상 철거 문제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소녀상이 민간 차원에서 세워진 기념물이어서 정부가 개입할 근거가 부족하고, 보편적 전시(戰時) 여성 인권 문제에 해당하는 사안이라 정치적 문제로 확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논리다.
정부가 개입하기 어려운 속사정은 또 있다. 정부는 일본이 최근 공세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정의연 문제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였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후원금 유용 의혹이 불거진 이후로 일본에선 '한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상실했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은 한국의 위안부 운동이 위축된 지금이 소녀상을 철거할 수 있는 호기로 판단한 듯 하다"면서 "한국이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정의연 문제를 정치 분쟁 이슈로 부각시키려는 일본 전략에 휘말리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녀상 외교전에서 정의연 문제가 한국의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도 외교부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해달라는 일본의 요구에 외교부는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치한 것이라 정부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독일 소녀상 철거 문제에 개입하면 외교부의 그간 입장과 모순되는 행동으로 비쳐질 공산이 크다. 일본은 제3국 소녀상 문제에 적극 대응하기 어려운 한국의 속사정까지 철저하게 계산에 넣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정부가 개입하면 일본이 어떻게 반격할지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면서 "외교전으로 확대하는 게 정답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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