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종 회장, 2018년 국회에 약속해놓고도
점주에 보복성 소송… 가격인하는 흐지부지
영업이익률 30% 달해 "본사만 폭리" 비판도
BHC "삼성 출신 영입해 비합리적 관행 제거"?
공정위 "불공정거래 인정될 경우 엄중 제재"
“가맹점과 최선을 다하여 소통하는 회사로 거듭날 것임을 약속 드립니다.”
2018년 10월 15일. 치킨 프랜차이즈 BHC의 임금옥 대표가 3가지 약속이 담긴 서류를 들고 여당 실세인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찾았다. 이날 BHC의 박현종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맹점 갑질 사태’ 증인으로 참석한 직후 가맹점과의 ‘상생실천 약속’을 만들어 의원실로 온 것이다. BHC가 의원실에 자발적으로 내건 공약에는 △가맹점협의회와 월례 정기대화 △수시 설명회 개최 △상생협약식 실시 등이 담겼다. 그로부터 꼭 2년이 지났다. BHC는 그 약속을 얼마나 지켰을까.
BHC “폭리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정치권까지 나서서 상생실천 약속을 받아낸 것은 그만큼 BHC 본사와 가맹점주의 갈등이 심각했다는 뜻이다. 갈등은 같은 해 5월 가맹점에 공급하는 신선육과 해바라기유 원가 논란에서 불거졌다. BHC 매출이 업계 1위인 교촌보다 적은데도, 영업이익률은 교촌의 3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맹점주들은 “신선육과 해바라기유 원가를 공개하라”고 본사에 요구했다. BHC 본사가 원재료를 비싸게 팔아 가맹점으로부터 폭리를 취한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가맹점주협의회는 또 “신선육 1마리당 400원의 광고비를 부과한 것은 계약내용과 다르다”며 신선육 가격 인하도 요구했다. BHC가 당시 전해철 의원실에 보낸 ‘상생실천 약속’에도 ‘신선육 가격인하를 포함한 상생방안을 찾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2년이 흐른 지금도 BHC 본사는 신선육 가격을 예전과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BHC 본사는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및 대면인터뷰에서 “(신선육 가격은) 이전과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으며 당시 400원 인하 약속을 한 적이 없다”면서 “신선육을 포함한 (원재료) 가격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본사에서 제시한 인하 금액을 가맹점협의회가 거부하고 더 큰 폭의 인하를 주장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말했다.
해바라기유 원가를 둘러싼 이견도 좁혀지지 않았다. 전해철 의원은 당시 공정위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근거로 “BHC 해바라기유 가맹점 공급가격이 2017년 이후 6만7,100원(부가세 포함)으로 원가인 3만1,680원의 2.1배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가맹점주들도 해바라기유 가격이 비싸다며 원가를 공개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BHC는 “기업이 원가를 공개할 이유가 없고 폭리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고 본사만 배불리는 게 아니라 가맹점 매출도 늘어났다”고 반박했다.
‘상생’ 외친 가맹점주들 계약해지
BHC의 ‘1번 공약'인 ‘가맹점협의회와 월례 정기대화’의 결과는 어땠을까. 본사와 가맹점은 ‘상생실천 약속’ 이후 5차례 간담회를 열었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원가 공개를 요구하며 상생 협약에 앞장선 가맹점협의회 집행부 6명이 본사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들은 BHC 본사의 ‘보복성 해지’라며 소송을 냈고, 본사는 이들 가운데 일부에 대해선 1년 단위로 ‘찔끔찔끔’ 계약을 연장해줬다.
BHC 본사가 브랜드 가치 하락 등을 이유로 가맹점협의회장을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가맹점주들이 민형사 소송에 휘말리자, 1,100명에 육박했던 가맹점협의회 회원은 300명 가까이 줄었다. 한국일보와 통화한 한 가맹점주는 “본사가 계약해지라는 무기를 들고 있어 불안한 1년살이를 하고 있다. 먹고살기 바빠서 본사와 장기간 소송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며 노심초사하고 있다. 가맹점주들을 대리한 이주한 변호사는 “상생협약에 앞장 섰던 집행부 인사들이 대부분 계약 해지됐다면 정당한 해지라기보다는 보복성 해지에 가깝다”고 말했다. BHC 측은 그러나 “가맹사업법을 근거로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이라고 밝혔다.
BHC 본사의 가맹계약 해지는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 가맹사업법상 최초 계약 후 10년까지는 본사가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없지만, 이후로는 계약자유 원칙에 따라 계약 갱신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사와 상생협약에 앞장선 집행부가 줄줄이 계약을 거부당했다는 점에서 상생협약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생협약 중재자로 나섰던 전해철 의원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가맹점주들 계약해지가 적절하지 않은 수단으로 활용된 측면이 있다”며 “법으로 강제하는 것보다는 서로 예측 가능한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했는데도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갑을 관계' 뚜렷한 국내 프랜차이즈
전문가들은 본사에 비해 가맹점들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국내 프랜차이즈 산업의 구조가 이 같은 갈등의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이상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스타트업MBA 주임교수는 “프랜차이즈는 본사와 가맹점의 결혼이라고 비유할 수 있는데, 본사가 가맹점주를 동등한 계약 상대방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치킨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치킨 프랜차이즈 상위 3개사의 영업이익률은 교촌이 8.64%이고 BBQ제너시스가 10.63%인 반면, BHC는 무려 30.68%에 달했다. 치킨 프랜차이즈업이 고도성장하는 첨단사업도 아니고, 업체마다 비슷비슷한 공정을 거친다는 감안하면, 30%대 영업이익률은 쉽게 달성하기 힘든 비현실적 수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조업이나 유통업에선 보통 5~10% 영업이익률만 나와도 경영을 잘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BHC의 높은 영업이익률은 획기적인 경영혁신의 결과이거나, 가맹점에게 돌아갈 이익을 본사가 취했다는 것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이상규 교수는 “가맹점이 본사 이익률만큼 남기지 못했다면 결국 본사가 과다한 이익을 가져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정당한 계약관계가 아닌 불공정거래로 볼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BHC 측은 이에 대해 “삼성 출신 전문경영진을 영입해 비합리적인 관행을 제거하고 광고나 홍보마케팅, 판매관리비를 효율적으로 운영해 영업이익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의 프랜차이즈 맥도날드는 유통과정에서 마진을 남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맹점주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좋은 식재료를 낮은 가격에 사야한다는 철학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대신 본사는 브랜드 사용료와 함께 가맹점 매출의 3~5%정도를 받는데, 통상의 유통마진보다 적은 수준이다. 목 좋은 장소의 점포를 사들여 점주에게 안정적으로 임차해주는 등 로열티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내 가맹사업의 불공정 논란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현종 BHC 회장이) 2년 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상생협약안 만들고 공급가격 인하하겠다고 약속하고, 보복성 가맹계약 해지 철회 약속까지 했다”며 “그러나 국정감사가 끝나니 이보다 더한 악질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BHC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선 법 위반 행위가 인정되는 경우 엄중 제재하겠다. 속도를 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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