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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산, '박쥐'만 비난해선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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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산, '박쥐'만 비난해선 안되는 이유

입력
2020.10.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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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감염병의 4분의3이 인수공통
생태계 파괴로 바이러스 변형된 탓
박쥐 감소하면 새 질병 발생도 증가

관박쥐. 게티이미지뱅크

관박쥐. 게티이미지뱅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10개월 넘게 인류를 괴롭히고 있지만, 바이러스가 어디서 유래됐는지에 관해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그 중에서도 박쥐는 감염병이 도질 때면 늘 숙주로 의심받아 왔다 이번에도 박쥐 연구가가 있는 중국 우한 바이러스연구소 유출론, 박쥐고기 섭취설 등 박쥐에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박쥐에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감염병 증가는 오랜 세월 동물의 서식지를 마구 파괴해 온 인간의 잘못에 있다는 것이다.

영국 BBC방송은 13일(현지시간) ‘박쥐 책임론’ 뒤에 숨은 인간의 이기심을 조명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코로나19 확산의 근본 원인은 야생에 대한 인간의 간섭이 증가한 탓이다. 야생동물이 살던 자연을 농지, 목축지, 공장부지 등으로 바꾸면서 동물과 인간의 접점이 늘었다. 이에 종간 접촉은 잦아졌고, 특정 동물에만 감염되던 병원체가 ‘인수(人獸) 공통’ 감염병으로 변형돼 사람에게 전염되는 구조다.

실증적 연구 결과도 이런 논리를 뒷받침한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에볼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등 인류는 수많은 감염병에 시달렸다. 이들 질병의 공통점은 인간과 동물이 함께 걸린다는 것. 유엔환경계획(UNEP)과 국제축산연구소(ILRI)가 올해 7월 공동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기존 감염병의 60%와 최근 새롭게 생겨난 전염병의 75%가 인수공통이다. 보고서는 △공장식 육류 농장 증가 △관개시설 건설 △운송ㆍ식품 공급망 발달 등 인간의 활동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기후변화 역시 병원균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인수공통 감염병을 옮기는 동물 개체수가 자연훼손 지역에서 최대 2.5배 더 많고, 개체 비율을 따지면 훼손지역 서식종의 최대 70%에 달한다”고 전했다.

그래도 왜 박쥐만 희생양이 된 걸까. 근거는 물론 있다. ‘바이러스 저수지’로 불리는 박쥐는 강한 면역력 덕분에 체내에 137종의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 중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도 61종이나 된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중간 숙주는 사향고양이, 낙타 등으로 다를지언정 모두 박쥐 바이러스에서 비롯됐다. 게다가 체온이 다른 포유류보다 2~3도 정도 높아 박쥐 바이러스는 고온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강한 병원성을 띈다. 1,400종 이상이 6개 대륙에 걸쳐 사는 넓은 서식지 역시 바이러스 전파에 유리하다.

감염병 원흉으로 지목된 탓에 박쥐는 코로나19 확산 후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박멸을 겪기도 했다. 미국 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는 5월 인도 정부가 중단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현지 북서부 4개 지역에서 200여마리의 과일박쥐가 죽임을 당했다고 확인했다. 쿠바, 페루, 인도네시아에서는 횃불과 물대포로 대량 사냥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생태 전문가들은 박쥐 개체 수가 감소할 때마다 새 질병 발생 비율도 그만큼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박쥐를 없앨수록 오히려 질병의 위험은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매체는 동물보호단체 본프리재단 조사를 인용해 “야생동물을 대량 포획하거나 사육할 경우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돼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실제로 박쥐는 꽤 이로운 동물이다. 300종이 넘는 과일나무의 수분을 도울 뿐만 아니라, 씨앗을 멀리 퍼뜨려 숲을 확장하게 하는 생태계의 구심점이다. 또 해충을 먹이로 삼아 미국 농가에만 연간 37억달러(4조2,500억원)의 이익을 가져다 준다.

결국 인간의 안녕을 위해서는 자연과 맺은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포르투갈 포르투대의 리카르도 로차 교수는 BBC에 “박쥐는 건강한 생태계에 필수 구성원”이라며 “이번 불행(코로나19)으로 알게 된 중요한 메시지는 자연을 아프게 하면 우리도 아파한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장채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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