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가구 가격변동·소유주 전수 분석
재벌가 기업대표 연예인 이름 즐비
최고가 77억… 5년새 123% 급등도
'지분 쪼개고 2년 후 증여' 절세 수단
2030 명의 11%… '부의 세습' 모습도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사전 예약은 하신 건가요?”
지난 9월 18일 서울 용산구의 고급아파트단지인 한남더힐 후문 앞에 차량을 정차하자 유니폼을 입은 경비원이 기자에게 방문 목적을 물었다. 한남더힐 안내를 맡은 A씨가 약속이 돼있다고 알리자, 경비원이 차량을 통과시켜줬다. A씨는 “한남더힐은 정문과 후문뿐 아니라, 산책로로 이어진 모든 출입문을 성곽을 지키듯 꼼꼼하게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출입문을 통과해 단지 내로 들어서자, 동과 동 사이의 거리가 다른 아파트에 비해 꽤 멀었다. 한남더힐은 대지면적 3만 4,000여평에 32개동(최고 12층ㆍ전용면적 57~243㎡)이 들어서 있으며, 가구 수도 600가구로 적은 편이다. 비슷한 대지면적의 일반아파트에는 통상 50여개동ㆍ2,000여 가구가 들어서는 것과 비교하면 밀집도가 상당히 낮다.
기자는 이날 100평형대(전용면적 242㎡) 아파트 내부를 둘러봤다. 복층 구조인 이 아파트는 출입문이 1.5층에 위치해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신발장과 수납장 크기는 30평형대 아파트의 2~3배에 달했다. 바닥과 벽면은 모두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었다.
계단을 반층 내려가 복도에 서자 오른쪽에 거실과 주방이 보였다. 주방 주위를 둘러보다 또 다른 현관문이 발견됐는데, 이 문은 다용도실로 이어져 있었다. 이는 가사도우미가 거주자가 이용하는 현관문을 오가지 않고 곧바로 주방으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문이었다.
거실 2개 면은 통유리를 통해 커다란 테라스와 연결됐는데, 이 테라스만 약 20평으로, 거실과 침실(마스터룸)을 잇고 있었다. 침실은 거실과 마찬가지로 2개 면이 테라스와 맞닿아 있어 탁 트여 있었다. 긴 복도 양 옆으론 욕실과 파우더룸이 위치했고, 이를 지나치자 다시 서재방이 나왔다. 서재방 입구 반대쪽에 또 다시 유리문이 나왔는데, 이는 이 집에 딸린 작은 정원을 오갈 수 있는 출입문이었다. 침실 3.5개와 욕실 4개로 구성된 이 아파트는 78억원에 매물로 나와있다.
아파트 내부를 둘러본 뒤 커뮤니티센터로 이동했다. 센터 출입문 앞에는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인 마크 퀸의 ‘욕망의 고고학’이라는 조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단지 내에는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 30여점이 전시돼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이날 커뮤니티센터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센터 내부에는 피트니스센터, 수영장, 스크린골프장 등이 갖춰져 있다. A씨는 "한남더힐은 보안과 시설, 예술품 전시 등 모든 면에서 최고급을 지향하는 만큼 주택가격이 비싼 것은 당연하다”며 "애초부터 '상위 1%'를 겨냥해 지어진 만큼 서민들의 입주조건이나 접근성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지를 빠져나와 한남대로를 건너다보니 배용준, 빅뱅 지드래곤 등이 거주하고 있다는 나인원한남이 보였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600m를 걸어 내려가면 고급주택의 대명사인 유엔빌리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매봉산으로 둘러싸인 한남더힐과 그 일대는 그야말로 거대한 성곽과 같았다. 한남동 골목에서 종종 눈에 띄는 생활맥주 체인점과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재계ㆍ연예인들의 보금자리
이날 기자가 둘러본 한남더힐은 안락함과 편리성이 모두 보장되는 아파트였다. ‘대한민국 상위 1%의 보금자리’라는 말이 실감됐다. 실제로 한국일보가 올해 5~9월 한남더힐 600가구의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한 결과 재계인사와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233㎡ 아파트를 보유 중이고, 정성이 이노션 고문, 박세창 아시아나IDT 대표이사도 같은 면적의 아파트를 소유했다. 이 밖에도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 등 재벌 총수일가 20여 가구가 한남더힐에 둥지를 틀었다. 안병광 유니온약품그룹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 자수성가한 기업인들도 한남더힐에 터를 잡았다.
‘샐러리맨 신화’를 이룬 대기업 임원 출신들 중에도 한남더힐을 거주지로 삼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고동진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두 채(233㎡)를 구매해 한 채는 미래에셋대우에 신탁했고, 다른 한 채는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전세를 줬다. 김종중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1팀장(사장), 김명수 삼성물산 사장,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등 전·현직 ‘삼성맨’ 9명도 한남더힐에 입주했다. 이 외에도 김창근 전 SK이노베이션 의장, 김성수 카카오M대표(전 CJ E&M 대표) 등도 이곳에 터를 잡았다.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는 정상명 전 검찰총장,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장병완 전 국회의원,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이 한남더힐에 입주해 있다. 삼성비자금 특검으로 활동했던 조준웅 변호사도 아들 조원호씨와 함께 233㎡ 아파트를 공동 소유 중이다.
연예인 중에는 가수 이승철, 배우 안성기, 김태희, 소지섭, 한효주, 이요원, 추자현, 개그맨 이영자 등이 거주했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 등을 연출한 김태호 MBC PD, 드라마 '도깨비' '파리의 연인' 등을 쓴 김은숙 작가도 이들과 이웃주민이다. 특히 김태희 남편인 가수 비(정지훈)는 다른 동에 세입자로 들어가 있어, 부부가 등기상으로 한남더힐에 두 채의 아파트에 입주했다.
5년째 실거래가 1위… 올해 매매가 1~3위
이처럼 유명인사들이 잇따라 한남더힐에 터를 잡자 홍보효과까지 생겨났다. 이는 ‘한국 최고가 아파트’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남더힐은 현 정부 들어 발표된 23차례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최고가 매매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월 4일 전용면적 243㎡가 77억5,000만원에 매매돼 종전 최고가(올해 기준)였던 같은 단지 내 240㎡ 매매가 73억원(4월)을 경신했다. 이는 올해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평균 실거래가인 8억4,400만원의 9배가 넘는 가격이다. 한남더힐은 또 지난 9월 기준 올해 최고가 매매 주택 1∼3위를 휩쓸었고, 상위 30위 내에는 17채나 포함됐다.
고가 거래는 특정 시기에 국한된 흐름이 아니다. 한남더힐은 2015년부터 매년 전국 아파트 실거래가 1위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단지 내에 12채만 존재하는 242㎡ 펜트하우스가 84억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특정 평형대로만 인기가 쏠리는 것도 아니다. 이 아파트의 모든 평형은 정부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꾸준히 매매가격이 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작은 평수인 57~59㎡의 매매가는 2016년 10억~13억원이었다가, 올해 6월에는 22억3,000만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5년 새 71~123%가 상승한 것이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감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평균 실거래가 상승률은 58.2%였는데 이를 크게 웃돈 수치다. 한남더힐에서 가장 많은 가구 수(261가구)를 차지하는 233~235㎡ 아파트는 2016년 40억~45억원이었다가, 올해 8월 56억원에 매매돼 최대 40%의 상승률을 보였다.
부의 대물림 수단 활용되기도
초고가 아파트인 만큼 한남더힐은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총 600가구 가운데 부모로부터 증여를 받았거나 부모ㆍ자녀 또는 친인척 관계로 추정되는 이들이 공동소유 중인 아파트는 36가구로 확인됐다. 여기에 최초 아파트 구매 시 부모와 자녀 공동명의였다가 이후 부모의 지분 전체가 자녀에게 넘어간 사례도 있어, 자녀가 물려받은 가구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206㎡ 크기의 한 아파트는 2016년 부모와 자녀가 5대 5비율로 구매했다가, 올해 4월 부모의 모든 지분이 자녀에게 넘어갔다.
20대나 30대(1981~2000년생) 소유주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전체 가구의 10.8%에 해당하는 65가구에 20, 30대들이 단독 또는 공동소유주로 이름을 올렸다. 인원수로만 따지면 가구 수보다 많은 83명(20대 9명ㆍ30대 74명)이 한남더힐 아파트의 젊은 주인들이다. 소유주와 가구 수 사이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가족 또는 형제 등이 한 가구를 공동소유하고 있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 가장 어린 소유주는 만 20세인 2000년생이었다. 물론 이들 중 자수성가한 사례도 있겠지만, 10%가 넘는 수치만 보면 한남더힐 소유주들 사이에 어느 정도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시중은행의 한 자산관리 전문가는 “2030 가구가 한남더힐과 같은 초고가 아파트를 소유한다는 것은, 근로소득만으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전재범 강원대 교양교육원 부동산전공 교수는 “지금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향후 한남더힐 소유주의 자녀들이 성년이 되면 증여를 통해 더 많은 공동명의 가구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반인은 잘 모르는 '절세 공식'
증여과정에선 세금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각종 전문지식이 동원됐다. 예를 들어 206㎡ 크기의 한 아파트는 2015년 부모와 자녀가 지분 3대 7 비율로 구매했다가, 2년 후 부모의 모든 지분이 자녀에게 넘어갔는데, ‘지분 쪼개기’와 ‘2년 후 증여’로 인해 줄어든 세금만해도 상당하다. 우선 지분 쪼개기를 통해 증여세율이 달라졌다. 이 아파트는 매매 당시 38억원에 거래됐는데 이 경우 증여세는 원래 30억원 초과분(이 경우 8억원에 해당)에 대해선 최고 세율인 50%가 적용돼야 했다. 그런데 공동소유자인 자녀는 지분을 70%(26억6,000만원)만 받았기 때문에 증여세율이 40%만 적용됐다.
이 가구는 또 다른 절세효과도 본 것으로 추정된다. 핵심은 ‘2년 후 증여’다. 증여부동산의 가격(증여가액)을 평가할 때는 시세(매매가)를 기준으로 하는 게 원칙이지만, 2년이 지나면 공시지가를 증여세 산정의 기준으로 삼는다. 우병탁 신한금융그룹 부동산자문센터 팀장은 “예를 들어 3개월 전에 산 부동산을 2개월 만에 증여하면 매매가격이 곧 증여가액이 되지만, 2년 1일이 지나는 시점부터는 매매가를 그대로 증여가액으로 보기 애매하다고 판단한다”며 “이 때문에 그때부터는 공시지가 또는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증여가액을 산정한다”고 설명했다. 통상 공시지가가 일반 거래가의 6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이 가구는 지분을 쪼개서 2년 후 증여를 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절세효과를 본 것이다.
이 같은 절세공식(?)을 따른 가구 수는 올해 9월까지 총 9가구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정책위원인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방법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합법적인 선에서 최대한의 절세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부유층과 세무상담을 많이 해 본 한 세무사는 “이런 절세법은 일반 시민들은 잘 생각해 내지 못하는 방법으로, 세법 등 전문지식을 접하기 쉬운 부유층일수록 ‘재산 지키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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