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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으로 병들어 가는 동물들

입력
2020.10.24 11: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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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새로 개장하는 한 체험동물원 공사 현장에 방치된 동물들. 창고는 악취가 심하고 케이지 바닥은 오물로 가득하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 제공

제주도에 새로 개장하는 한 체험동물원 공사 현장에 방치된 동물들. 창고는 악취가 심하고 케이지 바닥은 오물로 가득하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우후죽순 성행하던 체험동물원들 중 문을 닫는 시설들이 생기고 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월부터 현재까지 폐원신고를 한 곳은 총 7곳이다. 폐업 사유로는 경영악화, 매출부진 등으로 적었다. 관람객이 줄은 이유가 야생동물과의 접촉으로 인수공통질병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 때문인지, 경기침체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동물원이 문을 닫으려면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30일 전에 신고해야 한다. 폐업하면서 동물이 방치되거나 유기되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다. 그런데 전국에 지점을 운영하던 한 실내체험동물원 업체가 지난 8월 4개 지점의 문을 닫으면서 폐원신고조차 하지 않은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문 닫은 시설들을 찾아가자 몇 곳은 이미 문이 닫혀 있었고, 철거 작업 중인 시설 구석구석에는 남겨진 동물들이 몇 마리씩 보였다. 대부분 설치류 등 '몸값이 비싸지 않은' 종이었고, 건강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영업을 종료한 것이면 차라리 좋겠는데 장사가 안 되는 지점들은 닫고 남은 동물들을 끌어 모아 동물체험, 카약 체험 등을 하는 복합 오락시설을 개장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동물들이다. 제주도에 새로 연다는 실내동물원을 찾아가니 아직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바닥에는 우리에 갇힌 거북이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페럿, 친칠라, 프레리도그, 심지어 고양이까지 이동장에 갇혀 이삿짐처럼 쌓여있는 모습이 야생동물시장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바닥에는 오물이 흥건했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 새장에 넣어져 아래위로 쌓여있는 앵무새들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었다. 대부분의 사육장에는 마실 물조차 없었으며 그나마 있는 물에는 배설물과 죽은 파리가 떠 있었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어떤 질병에 감염되었는지도 모르는 동물들이 다시 만지기 체험에 사용되는 것은 또 다른 인수공통전염병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최근 덴마크, 네덜란드, 미국 등에서도 모피를 생산하는 밍크농장에서 동물들이 집단 감염되는 사례들이 발생했다. 애초부터 동물복지와 공중보건 측면에서 상식적인 기준조차 없는 시설들이 운영 가능한 이유는 법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양식도 없이 '잘 관리하겠다'라고 적은 종이 몇 장만 제출하면 등록증을 발급해주고, 제대로 운영하는지 정기적인 검사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 현행 동물원수족관법의 수준이다. 이 업체가 폐원신고를 안 한데 대해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고 해도 다른 동물원을 또 여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심지어 현행법에서 6개월 동안 아무 조건 없이 휴원을 허용하고 있어 '사실은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휴원 중이었다'고 주장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업체는 평택에 전국 최대 규모의 실내동물원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야생동물 관리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조성되면서 국회에서 동물체험을 금지하는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이 연이어 발의되고 있다. 지난 7일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환경부 장관은 동물체험을 금지하고 문을 닫는 시설들의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겠다고 답변했다. 정부도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이런 시설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직도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체험'이라는 명목으로 야생동물을 가두고, 병들게 하고, 오락을 위해 만지기까지 하는 문화는 이제 그만둘 때도 됐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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