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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람이 먼저다’

입력
2020.10.22 18:00
수정
2020.10.22 18:00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012년 9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첫 공식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남긴 방명록 문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2년 9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첫 공식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남긴 방명록 문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베테랑’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 유명한 유아인(조태오)의 것이다. “맷돌에 뭘 갈려고 집어넣고 돌리려고 하는데! 손잡이가 빠졌네? 이런 상황을 어이가 없다고 그래요.” 맷돌의 물림장치나 손잡이를 이르는 ‘어처구니’에서 유래해 “어처구니없다” 혹은 “어이없다”는 관용구가 나온 걸 인용한 거다. 그 감정은 황당함과 당황스러움 사이의 어디쯤일 것이다.

□ 올해 국정감사장에서도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질의 중인 현직 국회의원에게 피감기관의 장이 “어이”라고 부르며, 말을 끊은 것이다. 의원은 28세의 류호정 정의당 의원, 피감기관장은 71세의 최창희 공영홈쇼핑 대표이사다. 답변 중 나온 돌발 발언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함의가 크다. 상대가 비슷한 연배의 남성 중진 의원이었더라도 과연 그랬을까 싶어서다. 최 대표가 만든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가치 ‘사람이 먼저다’에 빗대 ‘나이가 먼저다’라는 풍자가 나오는 이유다.

□ ‘어이’ 사건으로 다소 가려졌지만, 국감에서 최 대표가 받은 의혹은 간단치 않다.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지인들 특혜 채용, 내부 고발자 색출과 보복, 사내 이사 ‘셀프 임기 연장’ 등이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질타가 이어졌다. 특히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내부 감사 자료와 공익 제보 같은 구체적인 물증까지 공개하며 필요하다면 수사도 의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대표가 지금의 자리에 갔을 때도 인사 특혜의 결과라는 비판이 나왔으니 공교롭다. ‘캠코더(캠프ㆍ코드ㆍ더불어민주당) 인사’ 아니냔 거다.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의 홍보고문을 지낸 경력 때문이다.

□ 이래저래 최 대표의 작품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구는 ‘내 사람이 먼저다’로 퇴색했다. 문재인 정부도 임기 내내 ‘진영에 갇힌 정치’로 소모적 논쟁을 자초하고 있으니 말이다. ‘베테랑’에서 유아인은 이런 말도 했다. “황당하잖아. 아무것도 아닌 손잡이 때문에 해야 될 일을 못하니까.” 알고 보면 진영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 편, 내 사람만 고집하느라 할 일을 못하면 정말 어이가 없는 일 아닌가.

김지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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