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토요일 격주로 식재료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은 아무도 몰랐던, 식재료를 제대로 대하는 법을 통해 음식의 기본을 이야기합니다.
사실은 아보카도를 좋아한다. 어찌 싫어할 수 있으랴. 어린 시절 책으로만 접해 왔던 아보카도를 1998년 처음 먹어 보았다. 미국 텍사스주의 지인 집에서였다. 양념을 하지 않고 구운 날김에 아보카도와 날치알, 게맛살 등을 함께 말아서 간장에 찍어 먹었다. 지금 돌아보면 일식집에서 먹을 수 있는 ‘마키(말이)’의 집밥 버전일 텐데, 김의 감칠맛이며 간장의 짭짤한 악센트 등과 어우러진 아보카도의 맛은 신선하게 놀라웠다. 나무와 과실의 향을 확실히 품으면서도 풍성한 지방이라니 신기했다.
이후 나는 오랫동안 아보카도를 즐겨 먹었다. 2002년, 미국에 본격적으로 머물기 시작하면서 멕시코 음식과 친해진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미국(텍사스 또는 캘리포니아)식 멕시코 음식이겠지만, 곁들이로 딸려 나오는 아보카도 샐러드 과카몰리(Guacamole) 덕분이었다. 맛과 별개로 귀여워서라도 아보카도를 좋아했다. 오뚝이처럼 배가 볼록하게 나와 손에 쏙 들어가니 소위 ‘그립감’도 좋고, 매끈하면서도 오톨도톨한 껍질의 질감도 재미있다.
아보카도를 먹지 않은 세 가지 이유
그런 아보카도를 요즘은 먹지 않는다. 운을 떼며 ‘사실은’이라고 단서를 붙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마트에서 마주쳐도 속으로 찔끔, 눈물을 머금으며 애써 못 본 척 돌아선다. 세 가지 이유 탓이다. 첫 번째는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아보카도는 물을 많이 잡아먹어 원체 그다지 환경친화적인 작물이 아니다. 그냥 많이 잡아먹는 것도 아닌 ‘순위권’으로, 생산지역의 수자원에 스트레스를 주는 3대 작물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유네스코의 연구에 따르면 아보카도 1톤당 수자원 발자국은 1,981㎥이다. 수자원 발자국이 608㎥인 포도와 비교한다면 영향력이 매우 크다. 세계의 수자원 부족이 어제오늘의 어려움이 아님을 감안한다면 모두 한 번쯤 곱씹어 봐야 할 아보카도의 특징이다.
아보카도가 건강 식재료의 일종으로 큰 인기를 누리면서 세계적인 골칫거리로 자리 잡았다. 내가 아보카도를 먹지 않는 두 번째 이유이다. 커피나 바나나처럼 아보카도 또한 사정이 어려운 지역 혹은 국가에서 경작돼 좀 더 잘 먹고사는 나라로 수출된다. 덕분에 먹고살기 어려운 국가의 돈줄로 자리 잡았으니 농가의 소득이 올라가고 일자리를 창출해 낸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아보카도가 요즘 한국의 샤인 머스캣 포도처럼 효자 작물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돈을 잘 벌어온다는 사실이 동네방네 소문나다 보니 주변에 나쁜 사람들이 꼬이기 시작한다. 분명히 내 자식인데 안녕을 보장해 줘 그렇게 잘 벌어 먹고산다면서 비용을 부담하라고 압박을 넣는다.
아보카도에 손을 대는 범죄조직의 이야기이다. 전 세계 아보카도의 34%를 책임지는 주요 생산국 멕시코를 필두로, 원래 마약이나 팔아 먹는 조직들이 지역을 장악하고 소득의 상당 비율을 갈취한다. 아보카도를 먹으면 궁극적으로는 이들 조직에 치른 비용의 일부를 지불하는 셈이라는 주장도 있다.
경작지의 규모에 따라 돈을 요구하며, 거부할 경우 농장주와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농장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조직과 사투를 벌여 위협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지역과 농장이 그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처럼 잠재 수익의 상당 비율을 갈취당하니 농가가 생산 인력에게 치르는 비용도 줄어든다. 결국 농가와 농민은 열악한 생활 환경에 넘치는 수요로 인한 높은 강도의 노동, 공정하지 못한 보상의 삼중고에 시달리며 아보카도를 재배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런 아보카도가 단일 경작 작물이라는 점 또한 다시 돌아와 첫 번째 이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요즘의 농사는 단순한 유기농을 넘어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을 추구한다. 먹고살기 위해 인간이 싸우고 정복해 효율 위주로 개편한 경작지보다 그 이전 상태의 자연에 좀 더 가까운 환경을 조성하자는 게 생물다양성의 핵심이다. 땅을 싹 쓸어 돈이 되는 한 가지만 심어 키우기보다 여러 작물이 한데 어우러지면 상호 보완 작용을 통해 지력도 덜 소모되는 등, 그야말로 좀 더 자연스러운 경작이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아니면 한 번에 한 작물만 키우더라도 다른 작물과 소위 ‘로테이션’을 돌려 땅에 숨 돌릴 여유를 줄 수도 있다. 땅이 힘을 되찾으면 작물도 건강해져 병충해에 좀 더 잘 견딜 수 있다.
생물다양성은 간단한 개념이 아니지만 너무 이상적이어서 실현 불가능한 개념도 아니다. 다만 아보카도처럼 일단 세계적인 유행을 타기 시작한 작물에는 누리기 어려운 사치에 가깝다. 결국 매년 같은 땅에서 아보카도 한 가지만 되풀이해 재배되고, 그것도 모자라 수요를 맞추기 위해 경작지가 늘어난다. 그렇게 땅은 황폐해지고 지역의 생태계의 균형은 깨진다. 작물은 키우는 족족 해외로 수출되지만 수익은 폭력조직에 갈취당해 보상은 적은 가운데 지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환경도 파괴된다. 이처럼 단 한 줄로 요약한 아보카도의 현실은 매우 비참하다.
손가락으로 꾹꾹 멍드는 아보카도
아보카도의 비참한 현실이 생산지에서 끝난다면 참으로 다행이다.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키워낸 작물이니 소비자가 제대로, 맛있게 먹을 수라도 있다면 의미가 완전히 증발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아보카도는 실생활의 소비 단계에서 가장 큰 치명상을 입는다.
바나나처럼 아보카도는 나무에 달린 채로 완전히 자라기는 하지만 익지는 않는다. 따라서 아보카도가 다 자라면 일단 수확을 해 3.3~5.6도의 저온에서 유통한 뒤 이상적으로는 1~2주일 실온에 두어, 일반적으로는 에틸렌 가스에 노출시켜 후숙을 촉진시킨다. 원래 나무에서 익지 않는 데다가 좋든 나쁘든 인간의 능력으로 후숙시킬 수 있다니, 지금 당장 마트에 가면 잘 익어 당장 먹을 수 있는 아보카도만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보카도를 즐겨 먹는 이라면 잘 알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늘도 마트에는 조금 과장을 보태 돌덩이 같은 아보카도가 쌓여 있다. 이런 것들 가운데 먹을 수 있는 걸 골라내는 책임이 거의 100% 소비자에게 돌아가는데, 그 탓에 아보카도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는다.
‘손에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아보카도를 가볍게 눌러보세요. 살짝 들어가는 느낌이 난다면 먹을 준비가 거의 다 된 것입니다.’ 처음 아보카도를 즐겨 먹기 시작하면서 이런 요령을 요리 프로그램에서 배웠다. 물론 나만 아는 비법일 리가 없고 투시 능력이 없는 보통의 인간에게 널리 퍼진 요령이다.
그렇다 보니 너도나도 아보카도를 눌러 본다. ‘살짝 누르라’고들 하지만 그 ‘살짝’의 기준이 사람의 신체 및 정신 조건에 따라 다르니 누군가는 아주 세게 누르기도 한다. 세계 아보카도 연합 같은 단체에서 PSI(압력크기를 나타내는 단위) 같은 단위로 표준 수치를 발표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아보카도는 불특정 소비자가 자신의 기준에 맞는 것을 찾을 때까지 무작위 및 무차별적으로 손가락의 압박을 받은 뒤 다시 진열대에 놓이기를 되풀이한다. 이런 과정을 계속 거치다 보면 결국 아보카도는 껍질 밑의 과육에 무수한 멍을 입지만 익지는 않은 채로 눌러보기에 지친 소비자의 손길만을 기다린다. 바로 나 같은 소비자 말이다.
분명히 엄지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살짝 들어가는 느낌이 나서 사왔는데 그 상태에서 일주일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다. 결국 참다 못해 갈라 보면 과육의 맨 바깥쪽은 진초록으로 거의 상했지만 그 아래로는 여전히 덜 익어 딱딱하고 풋내를 풍긴다. 농가가 삼중고를 겪으며 애써 키운 아보카도를 이런 과정을 겪은 뒤 고스란히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키기를 되풀이하게 되면 결국은 포기하고 만다. 이렇게까지 해서 먹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면서.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아보카도의 족보를 떠올린다. 대표 품종인 ‘하스(Hass)’의 사연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원예를 취미로 삼았던 우편배달부 루돌프 하스는 1926년, 품종이 확실히 구분 안 되는 아보카도의 씨를 세 알 사서 싹을 틔운다. 적어도 두 번의 실패를 겪고 당시의 대표 품종이었던 푸에르테 아보카도 나무의 접그루에 싹 틔운 접순을 붙여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낸다. 그리고 자신의 성을 따서 하스라 이름 붙인다. 이후 거의 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가운데, 모든 하스 아보카도는 바로 저 첫 번째 나무의 후손이다.
세상 만물에 나름의 사연이 깃들어 있으니 뭐 대수로울 게 있겠느냐 싶겠지만, 나는 가끔 하스 아보카도의 사연을 떠올리며 속을 끓인다. 백 년 가까이 하나의 나무에서 퍼진 자손 아보카도들이 오늘도 마트의 진열대에 쌓여 수많은 사람의 손가락으로 고통받는다.
‘세심한 맛’은 식재료를 잘 먹는 요령을 소개해왔지만, 이번 화에서만은 아보카도의 사연까지만 소개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연의 기구함을 감안할 때, 아보카도는 안 먹는 게 잘 먹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루고 미루며 다루지 않다가 91화까지 왔다. 모든 식재료에 첨예한 윤리의식의 촉각을 세우면 현실적으로 먹고살기가 힘들어지지만, 어떤 식재료에는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며 사정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아보카도가 그런 관심의 최전선에 있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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