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임기제 시행 뒤 21명 중 13명 임기 못채워
개인사ㆍ내부 혼란ㆍ법무부 장관과 갈등?때문에
"어떤 압력이 있더라도 소임을 다할 것입니다."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국정감사였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22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여권에서 제기되는 사퇴 압박과 관련해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시사했습니다. 또 "대통령께서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면서 소임을 다하라고 말씀을 전해줬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전하기도 했죠.
사실 검찰총장이 사퇴 압박을 받는 상황이 이례적이지는 않습니다. 최근 20년 사이에 검찰총장을 지낸 인물은 윤 총장을 제외하고 14명인데요. 그 중 9명이 2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중도 사퇴했습니다. 재임 중인 윤 총장을 빼더라도 평균 임기가 약 1년 4개월밖에 되지 않아요.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임명된 21명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13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대체 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걸까요.
분명 조직도에서 자신보다 위에 있는 법무부 장관에게도 큰 소리를 칠 만큼 막강한 자리인 검찰총장은 '가시밭길'인 걸까요?
채동욱 총장, 사상 첫 감찰 대상되자 물러나
41대 총장이었던 김수남 전 총장은 2016년과 이듬해인 2017년을 관통하는 탄핵 정국을 지낸 유일무이한 인물이에요.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모두 경험하기도 했죠. 그런데, 그게 그에겐 '독'이었나봅니다. 김 전 총장은 문 대통령이 조국 당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민정수석에 임명한 날인 2017년 5월 11일 "주어진 소명을 다했다"며 사의를 표명했어요.
어떻게 보면 기다린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김 전 총장은 당시 "박 전 대통령 관련 사건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수사여서 인간적인 고뇌가 컸으나, 오직 법과 원칙만을 생각하며 수사했다"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집행됐을 때 검찰총장직을 그만둘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어요. 그런데 대통령이 탄핵된 데다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인해 사실상 법무부 장관까지 공석이 되면서 차마 총장직을 바로 내려놓지 못했다고 해요.
사퇴 배경을 두고 아직까지도 많은 얘기가 나오고 있는 총장도 있죠. 39대 총장을 지낸 채동욱 전 총장입니다. 그는 '혼외자 의혹'이 제기된 지 일주일 만에 전격 사의를 표명했어요. 물론 순전히 혼자서 결정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에요. 당시 법무부 장관이 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 감찰 지시를 내렸는데, 사실상 사퇴 종용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거에요.
채 전 총장은 불명예 사퇴를 하며 "저의 신상에 관한 모 언론의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임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밝혀둔다"고 의혹을 부인했지만, 법무부와 검찰은 의혹이 사실이라는 취지의 발표를 하기도 했죠. 끝내 의혹을 해소하지 못해 혼외자 의혹은 지금까지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어요.
내부 갈등으로 인해 밀려난 경우도 있어요. 바로 38대 총장을 지낸 한상대 전 총장입니다. 한 전 총장은 재임 기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의혹,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등에 대해 부실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어요. 거기다 검찰 내부 비리 등으로 퇴진론이 제기되기도 했죠.
그런 상황에서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를 두고 거센 내부 반발에 부딪힌 것이 사퇴의 결정적 배경이 됐어요. 검찰 조직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최재경 당시 중수부장과 심각한 갈등을 겪은 건데요. 갈등 당사자인 중수부장을 제외한 검사장급 간부 전원이 용퇴를 건의하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수많은 압박에도 자리를 지키던 한 전 총장은 2012년 11월 30일 검찰개혁안을 발표하고 끝내 물러났습니다.
"내가 떠안고 가겠다"식 사퇴
검찰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항명하기 위해 물러난 전직 총장들도 더러 있었어요. 김준규 전 총장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뜨거운 감자였던 '검경 수사권 조정'이 화근이었는데요. 정부가 진통 끝에 2011년 6월 20일 검경 수사권 합의안을 이끌어냈는데, 국회에서 경찰의 수사 개시권을 포함한 법률안을 통과시키면서 검찰 고위 간부들의 사의 표명이 잇따르던 상황이었어요.
김 전 총장 역시 불만이긴 마찬가지였어요. A4 용지 6장 분량에 달하는 '사퇴의 변'에서 "장관과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 주요 국가기관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최고 국가기관 내에서 한 합의, 그리고 문서에 서명까지 해서 국민에게 공개한 약속마저 안 지켜진다면 우리나라에서 과연 어떠한 합의와 약속이 지켜질 수 있겠냐"라고 강하게 반발했어요.
한마디로 반발성 사퇴였던 셈입니다. 일부에선 검찰총장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죠.
36대 총장을 지낸 임채진 전 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직격탄이었어요. 그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한창이던 2008~2009년 검찰총장을 지냈는데요.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측근과 가족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고 구속됐었죠.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검찰의 저인망식 수사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비판이 확산했어요. 임 전 총장 본인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들어 검찰을 계속 지휘한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서거 당일 사표를 냈다가 한차례 반려된 뒤 다음달 3일 다시 사표를 내고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윤 총장처럼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고 사퇴한 총장도 있었습니다. 34대 김종빈 전 총장입니다. 2005년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김 전 총장에게 강정구 당시 동국대 교수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하라는 지휘권을 발동했어요. 당시 강 교수는 "6ㆍ25전쟁은 통일전쟁이었다" 등의 글을 유포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상황이었죠. 김 전 총장은 천 전 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검찰 독립성이 훼손됐다"며 사퇴했습니다.
임기 1년도 채 안 돼 물러난 '단기' 총장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명 어록이죠. 노 전 대통령은 집권 직후였던 2003년 3월 9일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검사들에게 강한 어조로 일침을 가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초대 법무부 장관에 비교적 젊은, 게다가 진보적 성향의 여성 변호사인 강금실 전 장관을 앉혀 검찰의 강력한 반발을 사면서 마련된 자리였는데요.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뇌부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내자 김각영 당시 총장은 바로 다음날 불만을 표시하며 사퇴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말기 총장 자리에 올라 4개월 만에 물러난 셈이에요.
전임 총장이었던 31대 이명재 전 총장도, 30대 신승남 전 총장도 2년 임기의 절반인 1년도 채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나긴 마찬가지였어요. 이 전 총장은 2002년 11월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서 피의자가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취임 10개월 만에 옷을 벗었고, 신 전 총장은 김대중 정부에 치명타를 안긴 '이용호 게이트'에 동생이 연루돼 구속되자 8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어요.
지난해 7월 임명된 윤 총장의 임기는 내년 7월 24일까지입니다. 약 9개월 정도 남았는데요. 과연 그는 몇 안 되는 임기를 마친 총장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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