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하얗게 눈이 덮여 있어야 할 남극 기지 주변의 맨땅이 드러난 사진이 화제였다. 지구 가열(global heating)의 영향 탓인지 남극에 이상 고온 현상이 생기면서 나타난 일이다. 이 사진을 보면서 문득 남극 한쪽에 묻혀 있을 로버트 스콧과 그의 두 동료(에드워드 윌슨과 헨리 바워스)가 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책상머리 탐험가였던 터라서 구할 수 있는 대로 이런저런 탐험기를 탐독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탐험은 남극점을 향한 영국의 스콧과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의 경쟁이었다. 알다시피, 그 경쟁의 승자는 아문센이었다. 스콧은 패자였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잃었다.
당시에는 승자 아문센에게 감정이입하고 나서 패자 스콧을 비웃었다. 그럴 만했다. 개가 끄는 썰매와 조랑말이 끄는 썰매. 나중에는 조랑말이 죽어서 스콧과 동료가 썰매를 끌어야 했다. 설원을 달리는 스키와 무방비 상태의 두 발. 따뜻한 가죽옷과 바람이 송송 들어오는 모직 옷. 탐험가 대원과 과학자 대원 등. 모든 면에서 아문센이 스콧을 이길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 J. 라슨은 ‘얼음의 제국’에서 이런 통념을 깨면서 좀 더 풍부한 이해를 돕는다. 아문센은 말 그대로 남극점 정복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하지만 스콧의 우선순위는 남극 연구였다. 그도 남극점에 도달한 최초의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겉으로는 과학 연구가 먼저였다. 애초부터 스콧의 탐험대가 과학자로 구성된 이유였다.
실제로 스콧과 동료가 죽고 나서 8개월 후에 꽁꽁 언 채 발견된 그들의 시신 옆에 놓인 썰매에는 온갖 표본이 가득했다. 춥고 배고프고 심지어 동상으로 손발이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서도 그들은 과학 연구를 위한 표본이 가득 든 썰매를 끝까지 끌고 왔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학’ 탐험대였으니까.
지금으로서는 어처구니없는 대목도 있다. 남극점 정복이 목적이었던 아문센은 북극의 이누이트로부터 가죽옷을 구하고, 개 썰매 훈련을 따로 받았다. 스콧과 일행은 개 썰매를 제대로 다룰지 몰랐다. 스키까지 외면한 데는 ‘남자다움’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영국 당대의 통념에 사로잡힌 탓도 컸다.
스콧과 그를 후원하던 영국의 탐험가 전통에서는 스키와 개를 이용한 극지 탐험 방식을 폄훼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사람이 썰매를 끌고 가는 것이 극지방에서 여행하는 방법이다. 스키도 개도 필요 없다.” “인간이 개의 도움 없이 성취해낸 것과 비교하면, 개와 함께 성취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스콧은 이런 분위기를 따라서, 직접 썰매를 끌었다.
그러고 보면, 스콧과 동료는 “과학의 위대함”과 “조국의 남성다움”을 입증하고자 썰매를 직접 끌고 남극점까지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이런 맥락을 알고 보면, 스콧의 죽음을 마냥 비웃기가 어렵다. 그 후로도 또 지금까지 과학, 조국, 남성의 이름으로 희생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얼음의 제국 : 그들은 왜 남극으로 갔나
- 에드워드 J. 라슨 지음
- 임종기 옮김
- 에이도스 발행
- 425쪽ㆍ1만7,500원
저자 라슨은 ‘신들을 위한 여름’(글항아리 펴냄)으로 1998년 퓰리처상을 받았던 과학사학자다. 그는 ‘얼음의 제국’에서 20세기 초 디스커버리호(로버트 스콧, 1901~1904년), 님로드호(어니스트 셰클턴, 1907~1909년), 테라노바호(로버트 스콧, 1910~1913년)의 남극 탐험을 중심에 놓고서, 남극을 둘러싼 과학적 탐구와 당대의 욕망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나저나, 스콧이 남극점을 향해서 썰매를 끌었고 결국 목숨을 잃었던 서남극 빙상은 지구가 데워지면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 지구 해수면 상승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1912년 3월 29일, 서남극 한쪽에서 최후를 맞았던 스콧과 동료의 유해는 여전히 얼음 밑에 있을까. 어쩌면 얼음이 녹으면서 이미 남극해로 흘러갔을 수도 있다.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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