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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아직 더 많은 흑인작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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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아직 더 많은 흑인작가가 필요하다

입력
2020.10.30 04:30
수정
2020.10.30 16:3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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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네히시 코츠는 논픽션 '세상과 나 사이'로 미국 출판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오늘날 가장 중요한 미국 흑인 작가 중 한 명이다. 다산북스 제공

타네히시 코츠는 논픽션 '세상과 나 사이'로 미국 출판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오늘날 가장 중요한 미국 흑인 작가 중 한 명이다. 다산북스 제공


지난 8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할리우드 배우 채드윅 보스먼. 단지 젊은 배우의 안타까운 죽음만을 뜻한 건 아니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의 흑인 영웅 캐릭터 '블랙 팬서'는 그 자체가 이미 흑인의 우상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같은 명사들, 그리고 비욘세 같은 슈퍼스타들이 한 배우의 죽음에 그토록 애도를 표한 건, 그 상징성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묘하다. 첫 흑인 미국 대통령과 가장 돈 많이 번 흑인 여가수처럼, 이 세상에는 흑인 명사들의 성공 이야기가 이미 가득하다. 그럼에도 왜 흑인은 별도로 추모받을까. 흑인의 성취는 이례적이거나 상징적이며, 피부색을 핑계로 한 일상의 차별 또한 여전히 이뤄지기 때문이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흑인 문학은 여전히 불충분하기에 우리에게는 여전히 더 많은 흑인 작가가 필요하다.

최근 함께 출간된 타네히시 코츠의 ‘워터 댄서’와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읽어봐야 할 책들이다.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흑인 작가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워터 댄서

  • 지은이 타네히시 코츠
  • 옮긴이 강동혁
  • 발행 다산책방
  • 분량 552쪽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인종, 빈부, 성별 등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이 줄 세워지던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속박의 사슬을 부수고 나왔는지 상상하고 써내려간 소설이다.

타네히시 코츠는 2015년 흑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논픽션 ‘세상과 나 사이’로 그해 전미도서상을 받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도 오른 바 있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핫한' 흑인 작가다. ‘세상과 나 사이’는 오바마 전 대통령 뿐 아니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등의 강력한 추천을 받으며 200만부 이상 팔렸다.

‘워터 댄스’는 그 코츠의 첫 장편소설이다. 노예제가 남아있던 19세기 남부 버지니아 주와 북부 필라델피아 주를 배경으로, 한 번 본 것은 모두 기억하고 순간이동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노예 해방에 앞장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책 앞머리에다 작가는 “내 역할은 노예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었다. 주인의 이야기를 전할 사람이 부족한 경우는 없었으니까”라는 말을 인용해뒀다. 이 말은 노예 폐지론자이자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말이다. 이 인용이 무색하지 않게 소설은 실제 노예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극 끌어온다. 여기에 초능력이라는 환상적 소재를 버무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착취했던 그 차별이,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생생히 살아 숨쉬는 이야기임을 들려준다.


영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버나딘 에바리스토.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라는 정체성 아래 독특한 글쓰기을 보여왔다. ⓒJennie Scott

영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버나딘 에바리스토.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라는 정체성 아래 독특한 글쓰기을 보여왔다. ⓒJennie Scott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장편소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노벨문학상ㆍ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부커상의 지난해 수상작이다. 마거릿 애트우드와 함께 상을 받음으로써 에바리스토는 부커상 최초 흑인 여성 수상자가 됐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지난해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 됐다.

소설은 레즈비언 연극 연출가인 ‘엠마’를 중심으로 영국 흑인 여성 12명의 삶을 그렸다. 90대 해티로부터 10대 야즈에 이르기까지,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앵글로색슨 남성이 주류인 영국 사회의 풍경과 거기서 철저히 배제된 흑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실제 에바리스토는 어린 시절 백인 학생들 중 유일한 흑인이었다. 연극학교를 졸업하고도 흑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계에 부딪히자 아예 흑인 여성 극단을 직접 만들어 흑인 페미니즘 문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 인터뷰에서 에바리스토는 “문학에 흑인 영국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게 불만스러워서 그 존재를 열두 명으로 축약해 등장시켰다"고 말했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 지은이 버나딘 에바리스토
  • 옮긴이 하윤숙
  • 발행 비채
  • 분량 636쪽

2019 부커상 수상작으로 흑인 여성 작가 최초의 부커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백오십여 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엄마와 딸, 혹은 친구, 또는 동료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열두 여성의 삶이 담겼다.


당연하게도 두 책은 완전히 다르다. 작가의 성별도, 성정체성도, 국적도,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도, 유머도, 스타일도 모두가 다르다. 노예제가 아직 살아있던 1800년대 미국과 다자 연애를 즐기는 2000년대 영국 흑인 레즈비언 이야기는, 한데 모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두 이야기가 모두 필요하다.

1901년 이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모두 117명. 이 가운데 여성은 16명, 흑인은 3명에 불과하다. 흑인이자 동시에 여성인 작가는 1993년 수상자 토니 모리슨 한 명 뿐이다. 117명 중 ‘아시아 여성’ 작가는 단 한 명도 없다. 우리에겐 여전히 더 많은 인종과 성별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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