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중국 랴오닝성 조선족 마을 우의촌
“출근을 했더니 학생들이 모두 사라졌어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중국 랴오닝 성의 선양 시로부터 차로 한 시간 거리의 철령 현. 그 안에 우의촌이라는 조선족 마을의 소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최대 645명의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다. 하지만 2015년 전교생 5명 중 2명은 한국으로 가고, 나머지 3명은 중국 내 큰 도시의 학교로 옮긴 뒤 폐교 운명을 맞았다. 교장 선생님을 포함한 교사 4명은 더 이상 함께 공부할 학생들이 없다.
1924년 당시 조선인들의 대거 이동이 이뤄지던 때, 300여 가구가 이곳에 터를 잡았고, 농업에 종사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그늘은 이곳에도 드리워졌으나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에 힘썼다. 김정연(49)씨의 아버지도 이 학교를 다녔고, 그의 할머니는 학교를 짓는 과정에서 직접 돌을 날라 벽을 쌓았다. 그렇게 해서 조선말로 수업하는 학교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90년이 지난 학교에 더 이상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과 중국의 수교 이후 경제적 이유로 마을을 떠난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김씨와 같이 1983년에 소학교를 졸업한 110명 중 108명이 한국행을 택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떠난 조선족들은 중국에서 벌 수 있는 돈의 20~30배를 벌어 가난을 벗어났다. 이들은 한국에서 돈을 벌고 중국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대부분 우의촌 대신 번화한 큰 도시에 새로운 터전을 잡았다.
김 할아버지가 93세에 고향을 떠난 까닭은
한국과 수교 이전인 1990년대 초까지 중국 내 조선족의 80%가 농촌에 살았지만, 2008년엔 조선족의 80%가 도시에 머물렀다. 결국 우의촌은 더 이상 마을로서 기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우의촌 출신의 최고령 김성도 할아버지는 1921년에 태어났다. 그런 김 할아버지도 2014년 자녀의 보살핌 속에서 안정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자녀들이 살고 있는 심양으로 떠났다.
우의촌은 1980년대 후반 670여 가구에 2,400여 명의 주민들이 살며 전성기를 거쳤다. 현재 우의촌에 등록된 인구는 1,936명과 725가구인데, 가구 수는 이혼, 자녀들의 분가 때문에 늘었지만 실제 마을 인구는 70명이 채 안 된다.
그 조차도 대부분 노약자다. 청년층 중년층 10여명이 남아있지만 이들은 공무원들이다. 있고 싶어서라기보다 있어야 하는 이들이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등록 인구와 가구 수가 실제보다 꽤 많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중국의 독특한 호적제도 때문이다. 호적만 있으면 토지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어 호적을 그대로 유지한 채 도시로 이주한 경우가 많다.
연변으로 대표되는 동북삼성은 한 때 200만이 넘는 중국 동포가 살았지만 지금은 그 수도 100만명 아래로 내려갔다. 정부 차원의 소수민족 정책으로 2명의 자녀를 둘 수는 있지만 오랫동안 1명만 낳는 상황이 이어져 왔다. 거기에 대다수는 한국으로, 나머지는 북경, 상해, 항주 등 중국 내 대도시로 향했다. 연변을 중심으로 한글 수필과 칼럼이 실렸던 잡지를 만들던 출판사 역시 독자들이 사라져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마을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 쓰지만
항저우 외국어사범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김재국 교수는 한때 연변에서 잡지사 편집인으로 활약했지만, 더 이상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중국 곳곳으로 동포들이 흩어지고 있어요. 자녀 교육과 먹고사는 문제가 연변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게 했습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연변의 한 마을은 조선족 40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그 중 38가구가 한족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우의촌은 학교가 자취를 감추자 식당, 슈퍼마켓 등도 사라졌다. 특히 의료 서비스의 사각 지대가 되면서 어르신들도 계속 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아프면 도시 병원으로 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할 체력이 부족한 노인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2017년 민족의 대명절 추석에는 우의촌 사람들과 이곳을 고향으로 둔 이들 100여명이 학교 마당에 모여 잔치를 열었다. 폐교가 돼 버리는 바람에 현재는 노인회의 사랑방으로 쓰이고 있지만, 김씨를 비롯한 몇몇 졸업생들이 모여 마을을 되살려보자고 의기투합했다. 2016년부터 명절마다 사람들을 모아 축제를 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국의 전통 부채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이들은 자신들의 전통이 지켜지길 바라며, 자신들의 자녀 세대들도 전통을 이어갔으면 바라고 있다.
이들은 폐교 공간을 민속 박물관으로 만들기 위해 공안 당국과 협상에도 안간힘을 쓴다. 공연은 할머니 품바, 합창, 사물놀이 등 다채롭게 구성되어 마을 사람들과 마을에 살다가 외지로 떠난 사람들이 섞여 즐기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은 품바공연으로 맛깔난 춤과 표정으로 참석한 모든 이들이 덩달아 신이 나 함께 어우러졌다.
잔치에 맛있는 음식이 빠질 수 없는 법. 순대, 돼지고기 수육, 김치와 시루떡이 너무 맛났다. 한국에서도 친숙한 음식들을 90년 전 선조들이 옮겨 와 뿌리 내린 그 장소에서 그들의 후손들과 맛볼 줄이야. 끊어진 관계를 되살리고, 조선족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노력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공연에 참여한 이들은 “우리 세대가 떠나고 나면 그동안 즐겨 온 전통 문화와 삶의 흔적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을 전하면서도 “민속 박물관 프로젝트를 잘 만들어 한국 사람들도 찾아오고 다시 북적이는 마을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하루에 100개의 마을이 사라진다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공간은 도시다. 수렵 채집이나 농경 사회를 거쳐 상거래가 발달하며 우리 인류는 시장을 만들었고, 시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만들어졌다. 도시는 인위적인 손길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본래의 도시 태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돈이 오가고 지나는 자리에 도시가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도시 속에서 사는 인간에게 생노병사가 있는 것처럼, 도시 역시 흥망성쇠의 운명을 지닌다. 도시의 운명은 인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사람이 몰려들면 흥하는 도시가 됐다가도, 빠져나가면 망하는 도시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수많은 얘기들이 들어있다.
인구 14억명, 전 세계 국가 면적 5위, 경제력 2위, 1979년 개혁 개방을 시작으로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자임하며 승승장구 해 온 중국. G2에 오른 중국과 미국의 패권 다툼 속에 중국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도시는 사람에 의해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이 문제를 탐구하기 위해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인 항저우를 찾았다.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이 나온 학교로 유명한 항주외국어사범대는 최근 주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이 많이 들어와 1캠퍼스보다 더 넓은 땅 위에 2캠퍼스를 짓느라 정신이 없었다.
중국의 출산율은 빠르게 내려가고 있지만
이 학교에 재직 중인 인구학자 펑웨이빈(彭?斌) 교수를 만났다. 중국은 1979년부터 시작한 한자녀 정책으로 인해 저출산 상태가 이어지자, 2015년 이 정책을 완화했다. 펑 교수는 ‘소황제’로 불리 울 만큼 큰 관심 속에서 자라고 있는 1명이 머지않아 할아버지들, 할머니들, 부모 등 6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다가오는 상황이 매우 걱정된다고 했다.
“하루 100개의 마을이 사라지고 있어요.”
펑 교수는 위와 같은 제목으로 보도되는 것이 언론에서 약간 과정하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는 실제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동안 중국 정부가 가진 출산률 통계는 현실과 많이 어긋나 있다는 것. 인구 학자들이 직접 조사해 가지고 있는 통계는 정부 측의 수치보다 훨씬 낮게 나타났고, 이를 근거로 정부에 산아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강하게 의견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배경에 공무원 조직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뜻이 담겨 있었다며 허탈해 했다.
1967년 중국인민정부는 계획생육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위원회는 각 도시 마다 하부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거대한 규모를 유지해 왔다. 산아제한 정책을 고수하면서 아이를 더 낳을 때마다 벌금을 내도록 했다. 아이를 더 낳으면 사회 시스템 유지를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더 늘어나게 된다는 게 그 이유다. 그렇게 걷힌 벌금 등은 공무원 조직인 계획생육위원회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출산률의 실제 지표가 걱정스럽게 나타나자 중국 당국은 그제서야 2016년 위생부와 계획생육위원회를 합쳐 인구 문제를 담당하는 기능을 다른 부서로 통째로 넘겼다. 내부 기득권 문제와 인구 폭등에 따른 사회시설 인프라 부족 문제에 대한 우려 등은 반대로 중국 내 고령화를 더 빨리 가져왔고, 이제는 그에 따른 사회 갈등과 비용 지출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산아 제한 풀었지만 인구는 늘지 않고
중국의 60세 이상 인구는 약 2억5,000만명(2019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18%를 넘어섰다. 2016년 산아 제한 정책을 없앴지만 1,786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나 산아 제한을 실시했던 2015년의 1,655만명에 비해 불과 131만명 늘어나는데 그쳤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7년도엔 1,723만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63만명이 바로 감소했다. 2018년도엔 1,523만명으로 무려 200만명이 줄어들었다. 2019년엔 1,460만명으로 63만명이 감소했다.
중국 정부는 애초 산아 제한을 풀면 1,2년 안에 베이비붐 현상이 일어날까 봐 우려했지만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걱정이 되고 말았던 것.
인구 학자들이 저출산과 그에 따른 사회 문제를 연구하려고 현장 조사를 나가면, 대다수 마을의 규모가 많이 쪼그라들어 각 마을을 따로 다루지 못하고 몇 개 마을을 합쳐서 조사를 진행하는 사례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공업 단지가 있던 마을도 더 이상 직원을 뽑을 수가 없고, 학교도 규모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기능을 유지하지 못하는 지방의 도시들이 빠르게 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정부(계획생육위원회)가 내놓은 통계보다 인구 학자들이 제시하는 수치와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자 중국 정부는 뒤늦게 산아제한 정책을 풀었지만 이미 늦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자식 대신 손주 돌보는 중국의 할아버지 할머니
중국의 젊은 부부는 아이를 낳고, 노동현장으로 가고, 육아의 빈자리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몫이 되었다. 자녀들이 아이 한명을 낳은 이후 더 낳지 않으려 하는 것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부모세대.
심양의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들도 하나같이 자식들이 아이 하나 더 낳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 할머니는 “시골에서 올라와 (자식들 대신) 손주를 돌보는 것도 한번이면 족하지 두번은 못할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3개월째 아들과 며느리 대신 육아를 책임지고 있다고 했다.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자, 손녀를 매우 사랑하고, 정말 잘 키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해 보였다. 그러나 “내 인생도 즐겨야 하는 상황에서 아기를 계속 안아줘야 하니 허리가 아파온다”며 “노년의 시간을 아픈 채로 보내긴 싫다”고 했다.
결혼보다 대출받아 자동차 사려는 주링허우 세대
주링허우(九零后·1990년대생) 세대로 불리우는 1990년대 생들은 과거 세대보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난징에서 만난 대학원생 왕진진(25) 역시 고향에 남은 친구 중 여성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에 결혼하지만, 자신처럼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온 이들은 결혼은 엄두도 낼 수 없다고 했다.
결혼은 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가끔 고향에 가면 “노처녀”라며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고 투덜댔다. 하지만 학업을 이어가고 일자리를 얻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리고 몇몇 친구들은 취직하자마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할부로 자동차를 사는 등 삶을 즐기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중국 청년들이 자기주도적으로 꿈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소비를 극대화하기 위해 젊은이들로 하여금 대출 인생을 시작하도록 사회 체제가 유도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는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의 젊은 인구가 줄어들고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각 해 지는 동시에 임금은 이전보다 높아지면서 많은 공장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베트남으로 옮기다 보니 경제 규모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 지는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
즉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려워지니 기업 운영도 어려워지고 부족한 일손을 대체하기 위해 기계를 활용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젊은 세대는 일자리가 줄어 돈 벌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팽창·확대 시대 돌아 수축·축소 시대로
게다가 이런 현상들이 중국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양로 문제, 부양 문제, 사회복지 문제의 압력이 아래로부터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저출산이 고령화 속도를 빨라지게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 때문에 중국 정부는 장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 이상을 양로 문제 해결에 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고 한다. 노년층의 소득 문제와 연금의 지속 가능성은 머지않아 중국 사회에 큰 위협으로 떠오르게 될 것 같다.
현재 중국은 남성 60세, 여성 50세에 은퇴를 하는데 일부 여성 간부와 특별근로 환경에서 근무하는 남성은 55세로 돼 있다. 그런데 은퇴 이후 바로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연금을 줘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적으로 상당한 압박이 되고 있다.
때문에 연금 받는 나이를 뒤로 늦추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40대 후반의 펑 교수는 자신이 은퇴할 때쯤이면 정년이 67세로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 봤다.
그러나 중국의 여론은 대체로 정년 연장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인구 대국 중국은 머지않아 가장 많은 인구의 나라 자리를 인도에 내 줄 것으로 보인다. 부모 세대가 살았던 ‘팽창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축소의 시대’가 오고 있다. 그 시대를 이끌어 갈 중국의 젊은 세대에게 큰 숙제가 놓여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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