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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명 사상 낚싯배 충돌 사고… '명당' 선점 무리한 운항이 화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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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명 사상 낚싯배 충돌 사고… '명당' 선점 무리한 운항이 화 불렀다

입력
2020.11.01 18:00
수정
2020.11.01 18:37
14면
0 0

바다낚시 인기에 출조객, 사고 증가
'명당' 선점 경쟁 치열... 안전사고 상존
충남 서해안 주말이면 2만명 출조

지난달 31일 낚시객을 태우고 원산안면대교 교각 들이받은 어선. 충남도 제공

지난달 31일 낚시객을 태우고 원산안면대교 교각 들이받은 어선. 충남도 제공

충남 태안에서 새벽 바다를 빠른 속도로 운항하던 낚싯배가 교량 교각을 들이받아 3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다. 탑승자 모두 구명조끼를 착용했고 정원 초과나 선장의 음주 등 법규 위반은 없었다. 바다 낚시 철을 맞아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무리한 경쟁이 화를 부른 것으로 분석됐다.

1일 해경에 따르면 전날 오전 5시 40분쯤 충남 태안군 안면도와 보령시 원산도를 잇는 원산안면대교 아래를 지나던 9.77톤급 어선 ‘푸른바다3호’가 1번 교각(영목항 기준)과 충돌했다.

사고 당시의 충격으로 22명 가운데 A(62)씨 등 40∼60대 3명이 숨졌다. 다른 승선자 1명도 머리를 크게 다쳐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를 받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사망자 3명 외 중상 4명, 경상 15명 등 승선자 전원이 부상을 입었다”며 “인근 병원 10곳에 분산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명당’ 선점 위한 무리한 운항

출항 당시 파도 높이는 1m 수준으로 잔잔했고, 안개도 짙지 않아 항해 조건이 나쁘진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선박 속도가 빨랐다. 해경에 따르면 사고 선박은 최고 18노트(시속 약 33㎞)의 속도를 냈다. 한 관계자는 “교량 주변에서는 10노트 이하 운항이 보통”이라며 “일출 전 어둠 속에서 18노트의 속도를 냈다면 굉장히 빠른 속도”라고 말했다. 보령해경은 선장 B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입건, 사고 원인을 수사 중이다.

낚싯배 ‘푸른바다3호’가 들이받은 원산안면대교 교각 모습. 충남도 제공

낚싯배 ‘푸른바다3호’가 들이받은 원산안면대교 교각 모습. 충남도 제공

정확한 원인은 수사가 마무리되어야 나오겠지만, 현지에서는 사고가 명당을 선점하기 위한 무리한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이다. 현지 업체들에 따르면 최근 낚싯배들이 태안 쪽으로 몰리면서 어선들이 출조 시간을 앞당기거나 속도를 높이는 등 무리하게 운항했다. 해경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낚싯배들이 이처럼 무리한 운항을 하는 배경에는 바다낚시 붐과도 무관치 않다. 최근 바다낚시를 주제로 한 종편 예능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낚시 인구가 늘어난 데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야외에서 밀집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천항의 한 낚시업체 관계자는 “방송 이후 바다낚시에 나서는 사람 수가 20% 이상 늘었다”며 “골프장 대신 삼삼오오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실제,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골프길이 막히면서 국내 골프장 포화하자, 많은 골퍼가 낚시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 끌어올린 ‘바다낚시 붐’

이 외에도 가을이 바다낚시 최성수기인 점도 선박들의 경쟁을 끌어올린 배경으로 꼽힌다. 사고 선박이 출발한 오천항은 물론 인근의 안흥항, 삼길포항 등은 요즘 낚시객 덕에 맞아 최성수기를 누리고 있다. 보령 오천항의 한 업체는 22명 정원의 어선 15척을 보유하고 있으나 주말 예약은 꽉 찼을 정도다. 서산 삼길포항의 주꾸미 낚싯배도 2, 3주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승선이 어렵다. 지난해 말 기준 충남의 낚싯배는 1,110척에 이르고, 주말 출조객이 2만여명에 이른다.

낚싯배 ‘푸른바다3호’ 사고 지점. 충남도 제공

낚싯배 ‘푸른바다3호’ 사고 지점. 충남도 제공

태안, 보령 등 연안에서는 주꾸미, 갑오징어 등이 잡히며 배를 따로 빌리지 않더라도 5만~15만원의 비용만 내면 웬만한 장비를 빌려 낚시를 할 수 있어 인기다. 목포 앞바다 은갈치 낚시와 인천 앞바다 주꾸미 낚시도 6만원이면 장비를 빌려 선상 낚시를 할 수 있다. 한 선장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바다를 즐길 수 있고 손맛은 물론 조황에 따라 출조비용 이상의 고기를 잡을 수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사고 선박 낚시꾼들도 주말 광어 등 낚시를 위해 온라인을 통해 승선 예약한 뒤 전국 각지에서 2∼5명씩 팀을 이뤄 보령에 왔다. 홀로 온 사람도 있었다. 서해안의 한 낚싯배 대여업체 관계자는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것보다 낚시꾼들을 싣고 한 바퀴 도는 게 더 이익”이라고 말했다. 낚싯배에서 잡아 올린 해산물은 유통시킬 수 없다.

전남 목포 앞바다 은갈치 낚싯배 풍경. 장비 대여료까지 포함, 1인당 6만원을 내면 밤 새도록 낚시를 즐길 수 있다. 독자제공

전남 목포 앞바다 은갈치 낚싯배 풍경. 장비 대여료까지 포함, 1인당 6만원을 내면 밤 새도록 낚시를 즐길 수 있다. 독자제공


낚시인구 느는데 안전의식, 시설은...

문제는 삼면이 바다인 국내 바다낚시 인구가 빠르고 늘고 있지만, 안전의식은 그 수준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많은 낚시 어선들이 ‘손맛’ 좋은 곳을 선점, 고객 확보와 단골 유지를 위해 속도를 내고, 특정 장소에 많은 배가 한데 몰려 사고 위험이 높지만 이를 제지할 만한 마땅한 수단도 없다.

포항 등 낚싯배가 많은 경북도 관계자는 “가을이 산란철이라 낚시인구가 가장 많이 몰린다”며 “조업 허가를 받은 어선이 자치단체에 신고만 하면 낚시꾼 받는 배로 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낚싯배 이용객은 2016년 343만명에서 2019년 482만명으로 1.4배 증가했다. 사고도 2016년 52건에서 2019년 83건으로1.6배 늘었다. 특히, 일부에서는 물 때를 맞춰야 하는 낚시인과 선주, 지역 어민들의 민원으로 새벽 출항 금지조치가 완화된 것도 사고 증가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에 따라 사고예방을 위해 교각에 야광 표지판이나 점멸등 같이 주의표시를 의무화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완공한 원산안면대교 하부에는 야광표지판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서해안에서 이뤄지는 바다낚시 어선에 세워진 낚싯대. 주꾸미를 잡기 위한 낚싯대로 특별한 장비랄 게 없다.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바다낚시에 나선다. 독자제공

서해안에서 이뤄지는 바다낚시 어선에 세워진 낚싯대. 주꾸미를 잡기 위한 낚싯대로 특별한 장비랄 게 없다.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바다낚시에 나선다. 독자제공




보령= 이준호 기자
포항= 김정혜 기자
목포= 박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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