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 주권 보장'과 '의사 결정의 현대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전당원 투표제를 도입하며 내건 목표는 이렇게 요약된다. 그러나 올해 들어 전당원 투표제는 연달아 논란의 중심에 섰다.
21대 총선 승리를 위한 비례대표 연합 정당 꼼수 참여,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천을 위한 당헌 개정 등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는 데 전당원 투표가 활용됐다. 당 지도부가 결정을 해 놓고 당원들에게 쾌속으로 의견을 묻는 식이었다.
민주당의 전당원 투표에는 집권 여당으로서의 '책임', 충분한 토론과 조정을 거치는 '숙의', 당원들의 총의를 상향식으로 모아내는 '민주성'이 결여돼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3무(無) 전당원 투표'인 셈이다.
1無: 토론 없이 속전속결...'숙의'가 없다
속전속결로 실시되는 전당원 투표는 '숙의'의 실종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이후 민주당은 모두 4차례의 전당원 투표를 진행했는데, 투표를 제안한 시점부터 표결을 마칠 때까지의 시간은 점차 짧아졌다. 총선 공천 규칙 결정을 위한 지난해 6월 전당원 투표는 실시 한달 전에 공지됐다. 비례대표 연합 정당 참여 여부를 물은 올해 3월 전당원 투표는 4일 전에 공지됐고,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의 합당 여부를 가린 5월 전당원 투표 때는 11일 전에 공지됐다. 이번 서울·부산 보궐선거 공천 관련 전당원 투표는 투표 결정부터 개시까지 단 이틀이 걸렸다.
속도를 중시한 민주당은 반대 목소리를 억눌렀다. 3월 비례대표 연합 정당 전당원 투표를 앞두고 김해영 당시 최고위원이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이 발언은 당 공식 회의록에서 삭제됐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7월 "정치인은 신뢰가 중요하다"며 보궐선거 무공천을 주장했으나, 이해찬 전 대표에게 질타를 받고 이후 침묵했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당의 기틀을 정하는 당헌과 당규를 고치면서 반대 토론도 없이 표결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민주 정당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2無:'하향식 결정...'민주'가 없다
소수의 당 지도부가 투표 과정을 독점적으로 주도한다는 점에서 '민주성'이 결여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민주당의 전당원 투표는 '당 최고위원회는 주요 당무에 관한 심의·의결을 할 수 있다'는, 당 지도부의 막강한 권한을 포괄적으로 명시한 당헌 제27조에 따라 결정됐다.
이처럼 '하향식' 전당원 투표를 실시하는 데는 제약이 없는 반면, 민주당원들이 '상향식'으로 전당원 투표를 요구해 관철시키는 통로는 사실상 막혀있다. 선출직 당직자의 소환과 당의 정책·의사 결정에 관한 전당원 투표를 당원들이 요구할 수 있다고 당규에 규정돼 있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투표 발의에 권리당원 10분의 1 이상의 서명이 필요하고, 투표권자 3분의 1이상의 참여가 있어야 성립된다.
당원 참여 플랫폼을 통해 단기간에 유력 정당으로 성장한 스페인 포데모스의 '상향식' 투표와도 다르다. 포데모스에선 당원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정책을 제안하면 상향식으로 투표를 진행한다. 공천, 정책 현안, 조직과 관련한 세세한 결정들이 전부 당원 투표의 안건이 된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포데모스처럼 온라인 당원 투표 활용하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면서도 "이번처럼 실질적으로 하향식으로 진행되는 전당원투표는 오히려 의사결정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3無:약속 뒤집기에 대한 '책임'이 없다
전당원 투표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책임성'를 회피하는 카드로 활용된다는 우려도 있다. 민주당은 '당선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실시되는 재·보궐 선거에선 후보를 내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이를 당헌에 새겼다. 차기 대선 승리의 발판을 다지겠다며 당헌을 고친 건 공약 파기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정당이 공약을 내걸고 시민의 선택을 받으면 최대한 책임을 지고 이행하는 게 민주정"이라며 "전당원 투표로 약속을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면, 정당이 공약은 대체 무엇때문에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평소에 정책적인 문제에 대해선 의견을 수렴하지 않다가 위성정당 창당같은 정치적 문제에 대해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전당원 투표를 활용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의도를 의심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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