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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아들 살해 자백 70대 노모 '무죄'...결정적 이유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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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아들 살해 자백 70대 노모 '무죄'...결정적 이유 3가지

입력
2020.11.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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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이미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법원 이미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거구의 50대 아들을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작은 체구의 70대 노모에게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노모가 범행을 자백하고 검찰도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은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 표극창)는 3일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된 A(76ㆍ여)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A씨)의 자백과 그의 딸(B씨)의 수사기관과 법정에서의 진술은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따라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무죄"라고 판단했다.

A씨는 올해 4월 21일 0시 30분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딸 B씨의 집에서 함께 살던 아들 C(50)씨의 머리를 소주병으로 때리고 수건으로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A씨는 사건 당일 0시 53분쯤 "아들이 술을 마시고 속을 썩여서 목을 졸랐더니 숨진 것 같다"고 112에 직접 신고했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아들이 약 1년 전 일을 그만두고 술을 많이 마셔서 괴로웠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줄까 걱정이 돼 살해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A씨는 법정에서도 "아들이 술만 마시는게 불쌍하고 희망이 없어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그의 딸 B씨도 "오빠(C씨)가 사망할 당시 현장에는 어머니(A씨)와 오빠만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같은 자백과 진술의 진실성과 신빙성에 합리적 의심이 있다고 봤다.

진실성과 신빙성이 떨어지는 모녀의 진술

A씨는 아들을 살해할 당시 상황에 대해 "아들이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며 술을 더 가져오라가고 해 화가 나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꺼내 때렸다. 아들이 '닦아 달라'고 말해 빨래통에서 수건을 가져와 닦아주는 척 하다가 목을 졸랐다.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76세의 A씨가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길이 75㎝, 폭 40㎝의 수건으로 키 173.5㎝, 몸무게가 102㎏정도의 50세 남성을 상대로 목을 졸라 숨지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실제 살해에 이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C씨가 숨이 막히고 생명이 위태롭게 됐음에도 가만히 죽음을 맞이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믿기 어렵다고 했다.

A씨의 "아들이 술에 만취한 상태여서 저항할 수 없었다"는 진술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부검 감정 결과 피해자(C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42%인 점 등을 보면 알코올 영향 하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B씨가 귀가했을 때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점, 피해자가 동생(B씨)과 대화를 하던 중의 상태 등을 종합하면 반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만취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어머니가 목을 졸랐을 때 오빠가 양심이 있다면 죽고 싶어서 가만히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했다는 B씨 진술에 대해서도 "상식에 비춰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소주병으로 아들을 때려 소주병이 깨지면서 산산조작이 났고 아들의 목을 조른 후 숨진 것 같아서 곧바로 112 신고를 했다. 이후 소주병 파편을 치웠다"는 A씨 진술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112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사건 현장 바닥은 깨끗하게 청소된 상태였고, 휴지통에 깨진 소주병 조각과 다수의 휴지 뭉치가 뒤섞여 담겨 있었는데, 아들을 숨지게 한 어머니가 짧은 시간 동안 소주병 조각을 치울 정신적 여유가 있을 것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또 아들이 사망한 이후 바닥을 청소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나타냈다.

실제 A씨는 사건 당일 0시 53분쯤 112신고를 해 약 2분간 통화를 했고 경찰은 이날 0시 57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청소할시간적 여유는 약 3분에 불과했다. 그동안 A씨는 딸 B씨와 통화를 하고 경찰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기도 했다.

재판부는 "만약 피고인이 소주병 파편을 치운 이후에 112신고를 했다면 피해자가 사건 당일 0시 30분 이전에 머리를 가격 당했을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사건 당시 제3자가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며 "피고인이 의도적으로 허위 진술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B씨는 사건 당일 집을 떠날 때까지 상황을 시간적으로 정리해 논리적으로 진술하지 못하고 있고 귀가 시간과 피고인과 통화한 사실, 엄마가 오빠를 살해한 것이 믿어지느냐는 질문 등에 대해 착오 진술을 반복하거나 기억하지 못하고 엉뚱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며 "이에 따라 피해자가 사망할 당시 사건 현장에 피해자와 피고인만이 있었다는 주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인천지법 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인천지법 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색한 노모의 범행 재현

A씨는 사건이 발생한지 약 9시간 만인 올해 4월 21일 오전 9시 20분쯤 사건 현장에서 "아들이 거실 바닥 소음방지 매트 위에 앉아 술을 마시면서 술을 더 달라고 했다"고 진술하면서도 범행을 재현했다. 그는 법원의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도 범행 당시 아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선 술상을 치운 상태였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B씨 진술 등을 볼 때 피해자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피고인 진술은 명백하게 사실과 다른 내용이었는데 단순히 기억이 잘못됐다고 이해하기 어렵다"며 "피고인은 범행 재현 과정에서 동작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면서 얼버무리는 태도를 취했고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목을 조르는 동작을 취하기도 했는데,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그대로 진술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부족한 살해 동기

A씨는 살해 동기에 대해 "(사건 당일) 아들이 딸과 말다툼을 하는 것으로 보고 더 이상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약 8년 전부터 A씨와 함께 B씨 집에 들어와 함께 생활한 C씨는 지난해 4~6월 사이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지낸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가 무위도식하면서 지낸 기간은 10개월~1년 정도에 불과하고 사망 전 달까지는 벌어넣은 돈이 있어 이를 사용했으며 사망하기 2개월 전 담배를 끊기도 했다"며 "피해자가 술에 취해 피고인에게 폭력을 행사했는지에 대해서는 피고인과 B씨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지만 B씨나 그 자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점은 진술이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해자가 술이 깨면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거나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원망을 품고 있지 않았다는 진술 등을 종합해보면 피해자가 술에 취해 행패를 부렸다고 해도 살해 욕구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와 B씨의 말다툼도 피해자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날 무죄가 선고된 직후 A씨와 B씨는 동시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20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재판부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은 없다"며 A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한 검찰 측은 "기록과 판결문 내용을 검토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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