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8시20분쯤 인도령 카슈미르 남부 쿨감지구 'YK포라' 마을에서 활동하는 인도국민당(BJP) 당원 세 명이 무장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BJP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속한 힌두민족주의 정당으로 '반(反)무슬림' 캠페인 등 소수자 혐오 운동을 다방면에서 펼쳐온 극우 정당이다. BJP는 인도 내에서 유일하게 무슬림 인구가 주류인 카슈미르 지역에서 당원 늘리기 작업을 적극 벌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BJP 당원 암살 직후 저항전선(TRF)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카슈미르 무장 단체가 떠올랐다. TRF는 텔레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꼭두각시를 제거했다. 작전은 계속된다 #TRF" 라 적었다. 암살이 자신들 소행이라고 밝힌 메시지로 풀이됐다.
올해 들어서만 암살당한 카슈미르 지역 BJP 활동가는 8명이다. 8월 9일 카슈미르 북부 부드감 지구에서 발생한 암살 사건 또한 TRF 소행으로 밝혀졌다. 잇따른 암살 사건은 결국 카슈미르 BJP 지도부 4인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BJP와 더이상 관련이 없다'는 자필 사직서를 SNS에 올려 만방에 알렸을 정도다.
약 30년 전인 1980년대 말, 잠무카슈미르해방전선(JKLF)이 카슈미르 무장 투쟁의 서막을 연 후 여러 단체가 등장과 쇠퇴를 거듭했다. JKLF를 제외한 나머지 조직 이름에는 종교적 색채가 담겨 있다. 따라서 '저항전선'이라는 세속적 이름의 등장은 JKLF 이후 처음이다. 카슈미르 옵서버들은 세속적 조직 이름에 기대 카슈미르의 투쟁임을 강조하는 TRF의 방식을 대(對)인도 무장 저항이 누구의 조종을 받는 게 아니라 카슈미르인들 고유의 자유 투쟁임을 항변하는 전술로 보고 있다.
인도 군 당국이 TRF를 처음 거론한 건 올해 3월 23일이다. 그러나 TRF가 세상에 처음 포착된 건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볼 때 지난해 10월 12일이다. 남아시아 무장 분쟁을 고급 분석해온 '카슈미르 인텔'은 지난 4월 'TRF 해독되다'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작년 10월 12일 스리나가르 하리싱 도로 위에서 발생한 수류탄 공격에 대해 TRF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바 있다고 전했다.
TRF는 지난해 8월 5일 인도가 카슈미르 자치를 명시한 헌법 370조와 35A를 폐기, 자치를 박탈당한 시점에 등장했다.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수류탄 공격을 두고 인도 언론들은 "정상화된 카슈미르를 방해하려는 책동"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카슈미르 인텔에 따르면 이 공격을 시작으로 이듬해 3월 10일까지 TRF는 텔레그램 계정에 10개에 달하는 공격을 자신들 소행이라고 밝혔다. 자치가 소멸된 시대, 카슈미르 무장 저항은 새 시대 새 옷을 입고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TRF가 결정적으로 주목받은 사건은 올 4월 초에 발생했다. 카슈미르 분단선이자 인도와 파키스탄을 가르는 통제선(LoC)과 가장 가까운 카슈미르 북부 쿠파라 지구의 케란지역에서 인도군 특수작전 부대인 '파라 특수부대(Para SF)'와 총격전 끝에 Para SF 코만도 5명의 목숨을 앗아간 반군이 있었다. 4월 1일 개시된 첫 충돌에서 인도 최고의 엘리트 부대원 5명이 한꺼번에 전사하자 인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케란 교전'은 TRF 대원들이 고도의 군사 훈련을 받고 험지 생존 능력까지 갖춘 이들임을 증명했다.
인도 정부는 TRF 대원 5명 중 3명의 신원을 공개하며 이들이 2018년 펀잡 지방 국경인 '와가-아타리' 국경을 넘어 합법적으로 파키스탄에 간 뒤 불법적으로 LoC로 침투한 이들이라고 발표했다. 이들은 모두 무장 반군 활동이 왕성한 카슈미르 남부 출신이다. 인도는 그간 카슈미르 무장 단체들이 파키스탄 정보국(ISI) 조종을 받는다는 입장을 꾸준히 견지해왔다. TRF가 소행을 밝힌 공격에 대해서는 파키스탄 무장 단체인 라슈카르에타이바(LeT)의 소행이라거나 'LeT 대리 조직'의 소행이라는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 군 뿐 아니라 인도 언론들과 안보 전문가들 모두 TRF를 국제사회에서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힌 LeT가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라는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TRF가 LeT의 대리조직이든, 새 구성원들로 개편된 새 조직이든 사력을 당해 카슈미르의 BJP 제거 작전에 나선 건 분명해 보인다. 5월 31일자로 발표한 성명을 보자. 우선 "우리는 종교와 종족을 초월하여 민간인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엄격한 원칙을 갖고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민족의용단(RSS)과 BJP 음모에는 속지 않는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RSS 파시스트들이 카슈미르에 '민간인'이라는 미명하에 정착, 카슈미르 인구 구성에 변화를 꾀하려는 음모를 잘 알고 있다"며 "재정착을 위해 카슈미르로 오는 인도인은 모두 RSS 요원으로 간주한다는 점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RSS는 힌두 극우 조직들의 중심축이고 BJP는 RSS 연계 조직 중 정치 정당에 해당한다. TRF는 카슈미르 내 힌두민족주의 세력과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인도 언론 더프린트의 8월 3일 'BJP는 헌법 370조 폐기 후 1년간 어떻게 카슈미르 당원 25만명을 늘렸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년 새 늘어난 25만명은 '카슈미르 계곡'에만 해당되는 사례다. 잠무 카슈미르 전역을 합하면 총 70만명이라는 게 BJP 주장이다. 만일 BJP 주장이 사실이라면 카슈미르의 정치 지형도 변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힌두 인구가 65% 안팎을 차지하는 잠무 지역은 전통적으로 BJP 영향력이 강한 편이고 이는 2014년 지방의회 선거에서 잠무에서만 BJP가 25석을 얻어 잠무와 카슈미르주 전체 2위를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진 바 있다. BJP는 결국 28석을 얻은 인민민주당(PDP)과 연정을 꾸려 잠무 카슈미르 주정부까지 구성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선거에서조차 BJP는 카슈미르 계곡에선 단 한석도 얻지 못했다.
지난 1년 BJP의 몸집 불리기가 성공한 이유는 선명하다. BJP를 제외한 카슈미르의 다른 모든 정당, 심지어 친인도계열 카슈미르 지역 정당들까지도 간부들이 모두 가택 연금됐다. 2014년 BJP와 연합정부를 구성했던 PDP의 메흐부바 무프티 대표조차 지난달 13일이 돼서야 14개월 가택 연금에서 석방될 수 있었다. 카슈미르가 자치를 박탈당한 지난 1년간 다른 정당들은 손발이 묶인 반면 BJP는 당원 확산에 전력투구해 왔다고 스스로 증언하고 있다. 그렇게 몸집이 불어난 BJP는 이제 카슈미르 새 무장 조직 TRF의 주 타깃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도 정부가 지난달 27일 공표한 '잠무 카슈미르 재구성에 관한 명령 3호'는 사태를 단연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카슈미르 현지인에게 제한되던 토지 매입과 소유권도 인도 시민 전체에 개방된다. 잠무와 카슈미르의 전 주(州)장관이자 카슈미르 최대 정당인 국민회의 부대표 오마르 압둘라는 "카슈미르가 매각될 처지에 놓였다"고 한탄했다. BJP 활동가를 잇따라 암살해 온 TRF의 예비 정착민을 향한 경고도 자치를 상실한 시대 새로운 불안으로 엄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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