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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는 능력주의 승자 아닌 패자… 능력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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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는 능력주의 승자 아닌 패자… 능력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입력
2020.11.05 14:12
수정
2020.11.05 17:0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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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인천공항공사 직원들과 취업준비생들이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졸속 추진됐다며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8월 인천공항공사 직원들과 취업준비생들이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졸속 추진됐다며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능력 없으면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라던 정유라의 이 한마디는 코피 흘려가며 공부해 명문대 입시를 통과한 학생들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그 분노는 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됐다. 조국 사태 때도 명문대생들은 다른 청년들보다 더 발끈했다.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네트워크가 자녀에게 대물림 되는 특권을 묵과할 수 없다면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인국공’ 논란,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한다며 진료 거부로 응수한 전공의 파업사태까지. 대한민국 엘리트 청년들에게 ‘공정’은 절대 무기다. 그들의 공정을 지탱하는 건 바로 능력주의란 이데올로기. 특권과 세습이 아니라 능력과 실력에 따라 평가 받아야 한다는 엘리트들의 외침은 너무나도 타당하고 당당해 반박할 능력조차 상실하게 만든다. 그들의 말대로, 능력주의는 과연 절대선일까.

'엘리트 세습' 저자 대니얼 마코비츠 예일대 법대 교수. 세종서적 제공

'엘리트 세습' 저자 대니얼 마코비츠 예일대 법대 교수. 세종서적 제공

대니얼 마코비츠 예일대 법대 교수는 고개를 젓는다. 그 역시 자신의 능력으로 엘리트가 됐지만, 능력주의는 더 이상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 ‘실력에 따라 기회를 얻고 정정당당하게 출세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 약속은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 불평등을 없앤다더니 외려 불평등의 근원이 됐고 능력 없는 자도, 능력 있는 자도 파멸로 몰아넣고 있다. 2019년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능력주의의 덫(The meritocracy Trap)’이다.

억울할 수 있다. 타고난 혈통과 가문 하나면 기득권이 자동 보장됐던 귀족들과 달리, 현대의 신흥 엘리트들은 뼈를 깎는 노력 없이는 살아남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좋은 학교, 좋은 직업, 높은 연봉, 윤택한 삶은 각고의 희생으로 얻어낸 합당한 보상일 뿐, 거저 주어진 건 없다고 항변한다. 이들의 높은 근면성은 능력주의에 도덕적 우월감마저 부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능력 자체가 불평등의 산물이라면. 재능과 실력 또한 만들어진 세습의 결과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신흥 엘리트들은 과거 귀족들처럼 땅이나 집 등 물리적 자산을 상속하지 않는다. 대신 인적 자본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유산을 물려주고 있다. 유치원에서부터 명문대, 전문대학원까지 아이 한 명당 1,000만 달러의 ‘능력’을 투자하는 건, 중산층 가정에선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엘리트 교육은 엘리트 직업으로 이어지고 엘리트의 자식들은 그들의 부모와 똑 같은, 아니 더한 방식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나간다. 중산층이 아무리 규칙에 맞춰 경쟁한다 해도 절대 쫓아갈 수 없는 구조다. 능력주의는 '현대판 신흥 귀족제도'가 돼버렸다.

출발선이 다르니, 중산층의 교육과 일자리의 기회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중산층 어린이들은 무기력한 학교로, 중산층 성인들은 장래성 없는 직장인으로 내몰리며 주변부를 겉도는 루저로 전락한다. 자동화 기술은 중간숙련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으면서, 고숙련노동자에게 유리한 노동시장을 만들어냈다. 그 사이 계층간 소득격차는 더 벌어졌다. 1975년 이후 상위 1%의 소득이 3배 증가하는 동안, 중위 실질 소득은 고작 10분의 1정도 늘었고 2000년대 이후엔 그나마도 정체 상태다. 중산층 수백 명의 일자리와 소득이 소수의 엘리트층에 전유되고 있는 것. 그럼에도 엘리트들은 중산층의 몰락을 게을러서, 노력을 다하지 않아서라고 책임을 전가하기 바쁘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고 엘리트들에게 능력주의가 마냥 행복만을 안겨다 주는 것도 아니다. 귀족들은 타인을 착취하면서 불평등을 키워 나갔다. 하지만 신흥 엘리트들은 신분 상승의 대가로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소외된 노동을 버티는 “계층만 높은 징집병”에 불과하다. 일생 동안 끊임 없는 경쟁 속에서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재정비하느라 강박적인 과로에 시달리고, 세대가 바뀌면 특권을 새롭게 쟁취해야 하는 극한직업이다. 엘리트는 능력주의의 최대 수혜자임 동시에 최대 피해자일지 모른다.

탈진 상태의 ‘쓸모 있는 자’, 기회를 박탈당한 ‘쓸모 없는 자’. 능력주의가 갈라놓은 불평등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비용도 적지 않다. 계층 갈등, 포퓰리즘, 저성장 등은 능력주의가 불러온 저주다.

엘리트 세습ㆍ대니얼 마코비츠 지음ㆍ서정아 옮김ㆍ세종서적 발행ㆍ504쪽ㆍ2만2,000원

엘리트 세습ㆍ대니얼 마코비츠 지음ㆍ서정아 옮김ㆍ세종서적 발행ㆍ504쪽ㆍ2만2,000원

저자의 해법은 ‘탈출’이다. 중산층과 엘리트 모두가 능력주의라는 열차에서 뛰어내려야 해방될 수 있다. 최고 명문학교의 정원을 늘리고, 중간 숙련도급 근로자에게도 적정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식으로 교육과 직업에서 엘리트들의 독점을 깨트려 나가는 걸 우선 제안한다. 능력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까지 갈 길은 멀다. 하지만 능력이 공정과 정의, 공평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데서부터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 일생을 긴장과 불안 속에 살아가는, 그래서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엘리트들이 먼저 찾아 읽어야 할 책이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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