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간토와 간사이, 일본에 공존하는 다른 문화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현지 대학에 재직 중인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도쿄에서 신칸센(일본의 고속철도)을 타고 두 시간 남짓 달리면 일본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오사카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오사카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 있다. 개찰구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다. 보행자를 위해 에스컬레이터 한 쪽 줄을 비워 놓는 관행은 같은데, 도쿄에서는 오른쪽 줄을 비우고 오사카에서는 왼쪽 줄을 비운다. 도쿄에서처럼 무심코 오른쪽을 비웠다가는 십중팔구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오르는 바쁜 여행자들과 몸을 부딪힌다. “아차, 여기는 도쿄가 아니라 오사카였지!”.
◇간토와 간사이, 일본 열도 속 두 문화
외국인에게는 도쿄나 오사카나 뭉뚱그려 똑같은 일본 문화다. 하지만, 일본인의 눈에는 이 두 도시의 문화적 차이가 크다. 일본은 크게 ‘간토(?東)’와 ‘간사이(?西)’ 지방으로 구분된다. 간토 지방은 수도 도쿄가 중심인 일본 열도의 동쪽을, 간사이 지방은 오사카가 중심인 서쪽을 가리킨다. 간토와 간사이의 명확한 경계선이 어디인지를 둘러싸고 시대마다 해석이 분분하다. 그만큼 두 지방을 이질적인 문화권으로 구분한 역사가 길다.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동료는 ‘이문화 (inter-cultural 혹은 cross-cultural)’ 라는 개념을 해설하기 위해 간토와 간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사례로 든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문화라는 용어는 동서양처럼 지역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매우 동떨어진 상황, 혹은 영어권과 중국어권처럼 언어, 종교, 생활 습관 등이 명백히 다른 상황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같은 일본에서, 그것도 고속철도로 두세 시간이면 오가는 두 지역인데 ‘이문화’라니 처음에는 그의 말이 농담인가도 싶었다.
일본인의 눈에는 크게 비치는 간토와 간사이의 문화적 차이란 무엇일까? 우선 거론되는 것은 사람들의 기질이 다르다는 점이다. 간사이 사람은 성질이 급하고 외향적이다. 유머 감각을 중시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선뜻 말을 건넨다. 간사이 사람들과의 모임은 쉴 새없이 농담이 오가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반면 간토 사람은 진지한 성격에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예의바르지만 인간적으로는 건조하다는 평도 듣는다. 아무래도 간사이 사람 중에 화려하고 주목받는 캐릭터가 많다. 인기있는 희극 배우 중에는 간사이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고, 오사카 사투리는 개그 유행어의 단골 레퍼토리다. 이런 간사이 사람에게 간토 사람의 차분함이 위선적이고 의뭉스럽게 보인다.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외골수라는 혹평도 따라붙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간토 사람이 간사이 사람을 풍류를 아는 멋쟁이로 평가할 리는 없다. 간토 사람이 볼 때에 간사이 사람은 여과없이 자기 의견을 들이미는 제멋대로에 사귀기 피곤한 부류다. 서로에 대한 가혹한 평가는 피차 일반인 것이다.
개인의 성격이 출신지로 정해지겠느냐마는 도쿄와 오사카의 거리를 걷다 보면 두 도시의 분위기가 다른 것이 의외로 피부로 느껴진다. 예를 들어, 도쿄에서는 지하철 안에서 목소리를 높여 떠드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거리는 차분하고 서로에게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라서 귀찮은 일에 휘말릴 일도 없다. 반면, 오사카의 거리나 가게는 제법 떠들썩하고 흥겹다. 처음 보는 사람이 불쑥 말을 거는 친근함은 좋지만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런 차이를 경험하다 보면 간토-간사이 이문화 가설에 은근히 납득하고 마는 것이다.
사실 다르다는 데에 방점을 찍고 보면 간토와 간사이 지방의 차이점은 셀 수 없이 많다. 예를 들어, 간토 지방의 우동 국물은 멸치나 가츠오부시 등 건어물로 맛을 내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짙고 검은 색이다. 반면, 간사이 지방의 우동 국물은 다시마로 맛을 내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맑고 옅은 색이다. 한국의 음식점에서 매운 맛, 순한 맛을 선택하듯이, 국물 맛을 간토풍, 간사이풍 중에서 선택하도록 배려하는 국수집도 있다. 주먹밥도 간토 지방에서는 위가 뾰족하게 각이 선 삼각뿔 모양의 ‘오무스비(おむすび)’ 가 대세, 간사이 지방에서는 동글납작한 쌀 가마니 모양의 ‘오니기리(おにぎり)’가 대세다. 같은 한자인데도 불구하고 간토와 간사이의 읽는 방법이 다른, 이색적인 경우도 있다. 도쿄에도 오사카에도 한자어로는 동일하게 ‘日本橋’ 라고 표기하는 전철역이 있는데 도쿄는 ‘니혼바시 nihonbashi,’ 오사카는 ‘니뽄바시 nipponbashi’가 정식 명칭이다. 심지어는 두 지역에서 사용하는 전기 주파수도 간토는 50헤르츠, 간사이는 60헤르츠로 서로 달라서, 가전 제품을 교차 사용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도쿄와는 다르다”는 간사이 지역의 뿌리깊은 정서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적 관습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넓지 않은 한반도만 해도 남도와 북도의 음식 맛이 다르고 지역마다 독특한 생활 습관과 방언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자질구레한 지역간의 차이를 굳이 이문화라고 해석하는 것은 좀 다른 맥락에서 볼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앞서 소개한 에스컬레이터 한줄서기 관행의 차이는 도쿄와 오사카의 이문화를 상징하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의 어느 쪽 줄을 비워놓을까 라는 문제는 도시의 역사나 자연 환경 등 지역적 특성이 영향을 미칠 만한 사안은 아니다. 그보다는 도쿄와는 다른 방식을 고집하는 오사카 사람들의 반골 기질에서 굳어진 사회적 관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동일한 한자를 굳이 다르게 읽거나, 혹은 서로 다른 주파수의 전력을 고집하는 일 등도 불편함과 혼란을 감수하더라도 도쿄와는 다른 노선을 고수하겠다는 지역 사회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보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간사이 사람들에게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도쿄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뚜렷한 자부심과 정체성이 있다. “우리는 도쿄와는 다르다” 라는 암묵적 정서에 기반해서, 간토와는 다른 생활 양식과 습관을 의도적으로 실천해 온 역사가 있는 것이다. 지난해 도쿄가 올림픽 준비로 열을 올리고 있을 때에도 오사카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올림픽 개최에 대해 냉소적인 의견도 적지 않았고, 올림픽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도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사실 그들에게는 개최가 코 앞으로 다가온 도쿄 올림픽보다도 2025년 오사카에서 개최될 예정인 만국 박람회가 훨씬 더 설레는 일이다. 최근에는 오사카 시와 인근 지역을 통폐합해서 도쿄와 동급의 ‘도(都, 한국의 ‘특별시’에 해당하는 상위 행정 구역)’로 승급하는 행정 개편안이 주민 투표에서 부쳐지는 일이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좀더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었고, 개편안의 내용도 부실해서 결국은 부결되고 말았다. 하지만, 도쿄에 집중된 사회적 인프라를 지방으로 분산해야 한다는 본격적인 시도가 나올 수 있는 곳은 역시 오사카인 것이다.
◇도쿄가 일본 사회와 문화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수도인 도쿄가 정치, 경제, 행정의 구심점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도쿄에는 외교관이나 매스 미디어의 특파원도 상주한다. 그 곳의 사회적 분위기가 일본 사회 전체의 일인 양 전해지는 것도 무리도 아니다. 하지만 도쿄가 일본 사회와 문화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을 타깃으로 하는 ‘혐오 발언’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혐오 발언’을 금지하는 조례를 앞장서 도입한 지역도 오사카, 혐오 발언을 한 인물의 신상을 공표하도록 정한 이 조례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며 극우 단체가 제기한 위헌 소송이 최근 기각된 것도 오사카에서 였다. 정치적인 우경화가 일본 전체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간사이 지방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오사카처럼 도쿄와의 대결 정서가 강한 지역도 있고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규슈나 홋카이도처럼 독자적인 특성이 강한 지역 사회도 있다. 같은 나라라고 해서 단 하나의 얼굴로 이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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