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재재단, 美서 긴급 매입
18일부터 고궁박물관서 일반에 공개
“‘은입사’(銀入絲ㆍ홈을 파 은실을 박아 넣는 기법)가 너무 아름다워요!”
1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대강당. 작은 가마솥 모양의 유물을 본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탄성을 질렀다. 노르스름한 동제(銅製) 솥 표면에 반짝이는 은빛 선(線)과 글자들이 자잘하게 박혀 있었다. 조선 시대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였다.
이날 공개된 앙부일구는 올 8월 고국으로 돌아왔다. 1월 유물 관련 정보를 입수한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몇 번 미뤄지다 6월 열린 경매를 통해 긴급 매입 형태로 미국에서 사들였다. 김동현 재단 유통조사부장은 간담회에서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사는 한 개인이 현지 골동품상에서 구입해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환수된 앙부일구는 최상급 제품으로 평가된다. 두드러지는 건 예술성이다. 오목한 솥 안쪽에 은입사로 섬세하게 새겨진 시각선(수직)ㆍ절기선(수평), 한자 등이 대표적이다. 다리 부분의 용과 거북 머리 모양, 구름 무늬 등 장식도 화려하다. 최응천 재단 이사장은 “빼어난 다리의 문양과 정교한 은입사 기법으로 미뤄볼 때 분명 궁중 장인의 작품일 것”이라며 “보존 상태도 완벽해 공예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정 청장도 “예술성과 기능이 잘 조화된 일품”이라고 했다.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보는(仰) 오목한 가마솥(釜) 안쪽에 뾰족한 막대(영침)를 설치하고 영침 때문에 생기는 해 그림자(日晷)의 위치로 시각을 측정하는 시계인데, 최대 장점이 다기능이다. 무엇보다 농민에게 필수 정보인 양력 절기를 앙부일구는 표시할 수 있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이용삼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명예교수는 “앙부일구는 한양의 위도에서 태양 운행의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는 실용적인 해시계”라며 “독창성과 창의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지름 24.1㎝, 높이 11.7㎝, 무게 약 4.5㎏ 크기에, 제작 시기는 18세기와 19세기 초 사이로 추정된다. 1713년(숙종 39년)에 청나라 사신이 한양 종로에서 북극 고도를 37도 39분 15초로 측정했는데, 이 유물에 ‘北極高三十七度三十九分一十五秒’(북극고삼십칠도삼십구분일십오초)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로 볼 때 1713년 이후 제작된 듯하다고 재단은 설명했다.
서울의 위도를 정확히 측정한 뒤 영침을 서울의 북극 고도에 맞춰 설치했다는 사실에도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문화재청 측은 “앙부일구는 서울 위도에서 시간을 읽어야만 정확하다”며 “비로소 고국 하늘 아래로 돌아와 시간을 알릴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앙부일구의 이번 환수가 더 뜻깊다”고 했다.
앙부일구에는 통치자의 애민(愛民) 정신도 반영돼 있다는 게 문화재청 얘기다. 공중(公衆) 시계라는 점에서다. 세종이 앙부일구를 처음 만들어 백성들이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종묘와 혜정교(惠政橋ㆍ지금의 서울 종로1가)에 설치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조선 시대의 과학 기기류 중에서도 앙부일구는 특히 희소하다. 세종 당시 원본은 사라졌고, 여러 재료로 만들어진 것 중 대표적인 금속제 앙부일구가 이번 환수품 외에 지금껏 7점에 불과했을 정도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2점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돌아온 앙부일구는 앞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관리되며 자격루, 혼천의 등 다른 과학 문화재들과 함께 연구, 전시, 보고서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18일부터 내달 20일까지는 박물관 내 과학문화실에서 일반에 특별 공개될 예정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