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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할리우드, 미대선

입력
2020.11.18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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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좋아하는 감독, 좋아하는 배우를 영화 한편만으로는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영화와 저 영화를 연결지어 영화에 대한 여러분의 지식의 폭을 넓히고 이해의 깊이를 더하고자 합니다.


미 남부 백인 저소득층의 삶을 그린 영화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제공

미 남부 백인 저소득층의 삶을 그린 영화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제공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이 끝나면 뒷말이 나오곤 한다. 상을 받아선 안 될 영화나 인물이 수상했다는 비판이 의례처럼 잇따른다. 올해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등 4관왕에 올랐을 때 환호가 쑥덕거림을 압도했다.

‘기생충’의 수상에 못마땅해 하는 목소리는 영화계 밖, 백악관 주인에게서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한국과 무역 문제가 많은데, 그들에게 작품상을 줘버렸다”며 혀를 끌끌 찼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나 ‘선셋대로’(1950) 같은 위대한 영화를 다시 볼 순 없는 것일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수많은 명작 중에서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선셋대로’를 언급한 이유는 뭘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조지아주 대농장을 배경으로 미 남부의 시선에서 남북전쟁을 그린다. 미국 동영상스트리밍업체(OTT) HBO맥스가 지난 6월 인종차별을 다룬 부분을 문제 삼아 콘텐츠 목록에서 제외했던 영화다. 트럼프다운 영화라고 할까. ‘선셋대로’는 트럼프가 젊은 시절 영화감독이 될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선셋대로’ 모두 백인 중심 보수주의가 할리우드에서 힘을 쓰던 때 만들어졌다. 미남배우 록 허드슨(1925~1985)이 게이이면서도 게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 시대가 더 궁금하면 영화 ‘헤일, 시저!’와 넷플릭스 드라마 ‘오! 할리우드’를 추가로 보길).

지금 할리우드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곳이다. 다종다양한 인물들이 모여 무지갯빛 사랑을 하며 주로 민주당을 지지한다. “트럼프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말이 서슴없이 나오는 곳이다. 트럼프는 옛날옛적 할리우드를 제외하고 할리우드의 모든 것이 싫을 수밖에.

반(反)트럼프주의자들이 넘쳐나는 할리우드가 올해 미대선을 지나칠 리가 없다. 미대선 한달 가량을 앞두고 나온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과 대선 직후 공개된 ‘힐빌리의 노래’는 사뭇 시사적이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 넷플릭스 제공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 넷플릭스 제공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은 1968년 시카고에서 반전 시위를 주동한 7인에 대한 재판을 그린다. 닉슨 정부는 진보적인 7인을 단죄하려 하고, 검찰과 재판부는 한 몸처럼 움직인다. 영화는 없는 죄도 만들 수 있는 공권력의 작동 법칙을 보여준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은 공교롭게도 골수보수주의자 에이미 코니 배넛이 새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된 시기에 공개됐다. 마치 민주당 지지자들의 결집을 호소하듯이.

‘힐빌리의 노래’는 정반대 편에 서있다. 2016년 트럼프에 몰표를 안긴 미 남부 백인 저소득층의 힘겨운 삶을 전한다. 빈곤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분노와 폭력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리다.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편들어줄 수는 없지만 용서하려고 해. 용서하지 않으면 벗어날 수도 없는 거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승자가 된 지금, 의미심장하다. 마치 승자가 베푸는 관용의 말처럼 들리지 않나. 정치적이지 않은 듯 지극히 정치적인 할리우드의 실체를 새삼 깨닫는 한 해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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