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넷플릭스 '사카라 무덤의 비밀'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한국일보>
피라미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릴 때 본 아동잡지의 기사였다. '새소년' '소년중앙' '어깨동무' 등 아이들이 보던 잡지였다. 가장 재미있게 본 건 만화와 잡다한 상식들이다. 특히 UFO와 네스호의 괴물,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같은 것들. 7대 불가사의로는 지금도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와 함께 바빌론의 공중정원,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등이 소개되었다. 다른 건축물들은 그림으로 묘사되었지만 쿠푸의 피라미드는 사진이었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디며 당당하게 서 있는 피라미드를 보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나온 피라미드는 많이 봤다. 인디아나 존스가 현장으로 안내했고, 트랜스포머는 피라미드 위에서 격투를 벌였다. '스타게이트'에서는 이공간으로 가는 입구이며, '엑스맨 아포칼립스'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등에서는 외계인이나 초인이 만든 건축물로 그려지기도 했다. 제일 부러운 것은 영화 '점퍼'에서 공간이동을 하는 주인공이 스핑크스 위에서 한가로이 누워 있는 장면이었다. '점퍼'를 보며 다짐했다. 스핑크스 위에 올라가지는 못하겠지만 언젠가 내 눈으로 스핑크스를, 피라미드를 보겠다고.
코로나 19 팬데믹이 심해지기 직전인 지난 2월에 터키, 이집트, 잔지바르를 일주일씩 거쳐가는 여행을 떠났다. 모든 풍경이 새롭고, 풍요롭고, 아늑했다. 터키에서 파묵칼레의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와 공동묘지 네크로폴리스 유적을 보았고, 카파도키아의 기묘한 지형을 고공의 열기구에서 감상했고, 거대한 지하도시 데린쿠유도 내려가 보았다. 장구한 시간을 품에 안은 유적의 쓸쓸함은 은근히 따뜻했다.
이집트에 간 첫날, 카이로 공항에 내려 바로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로 향했다. 처음 소년지에서 피라미드 사진을 보았을 때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진들을 보면서 피라미드 바로 옆에 도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자에서 묵은 호텔 옥상에 올라가면 눈앞에 피라미드가 펼쳐졌다.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피라미드가 있었다. 피라미드는 인적이 드문 사막에 외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 옆에 세워진 거대한 무덤이자 기념물이었다. 히에라폴리스 옆 네크로폴리스처럼. 현장에서 본 피라미드는 기대만큼 아름답고 거대했다. 그리고 신비로웠다. 직접 피라미드를 손으로 만져보는 느낌이 황홀했다.
파라오의 무덤이 있는, 룩소르의 ‘왕가의 계곡’의 감흥은 또 달랐다. 바위산 아래 곳곳에 파라오의 무덤이 있고, 좁은 통로를 거쳐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이승에서 누렸던 것을 저승에서도 누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 이집트인에게 생명과 죽음은 부활하고 순환하며 하나의 세계로 이어져 있다. 벽에 새겨진 현란한 색채의 벽화와 조각들은 파라오의 일대기를 보여주거나, 그들이 꿈꾸는 내세를 보여주었다.
터키에서 본 네크로폴리스와 이집트의 파라오의 무덤을 보는 경험은 매우 흥미로웠고 짜릿했다. 그들은 죽음과 삶이 하나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형태나 질감이 달라질 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며 죽은 자의 처소와 도시를 산 자들의 것과 거의 동등하게 아니 더욱 공들여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저승으로의 여행은 이국으로의 여행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넷플릭스에 '사카라 무덤의 비밀'이 올라오자마자 찾아 봤다. 지난 여행의 감흥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2018년 이집트의 고고학 탐사단은 카이로 서쪽 사막에 위치한 사카라에서 약 4400년간 아무도 침범하지 않은 무덤을 발견한다. 제5왕조시대의 고위 관리였던 와흐티에의 일가족이 묻힌 무덤이다. 벽화와 상형문자를 통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했는지 파악한다. 그리고 수직 갱도를 파고들어 관과 미이라, 각종 유물을 찾는다.
'사카라 무덤의 비밀'은 와흐티에 무덤의 발굴 과정과 함께 당시 이집트 사람들의 종교와 내세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생활상을 알려준다. 유적과 유물을 분석하여 과거를 추정한다. 와흐티에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사제였고, 파라오 아래 최고 권력자였을 것이다. 와흐티에는 무덤에 자신의 형상으로 많은 조각상을 세웠고.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아마도 자기도취가 강하며, 과시욕이 강한 인물이다. 그런데 상형문자를 해석하던 학자들이 의심스러운 것을 발견한다. 이미 있던 문자가 지워지고, 그 위에 와흐티에의 이름이 새겨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무덤은 가족 누군가의 것을 와흐티에가 가로챈 것일까?
4개의 수직 갱도를 조사하던 탐사대는 의문을 가진다. 남자아이들과 여성들이 함께 묻혀 있다. 저마다 나이가 다른 이들이 한데 묻혀 있는 것은 어떤 이유로 동시에 죽었음을 의미한다. 무덤의 주인인 와흐티에는 심지어 미이라로 만들어지지도 않은 채, 별다른 유물도 없이 쓸쓸하게 매장되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누군가의 무덤을 가로채고 내세의 심판관들 사이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던 야심만만하고 권위적인 와흐티에의 마지막 길은 왜 이렇게 초라한 것일까. '사카라 무덤의 비밀'은 유적과 유물을 통해 그의 마지막 사건을 파헤친다.
'사카라 무덤의 비밀'은 발굴단에 속한 사람들의 이름을 세세히 알려주며,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발굴에 참여하는지 보여준다. 모두가 학자, 연구자는 아니고 대대로 발굴에 참여하거나 하나의 직업으로서 참여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일을 하건 각자의 감흥이 있고, 저마다의 성취가 있겠지만 수천 년 전의 무엇인가를 처음 발견하는 느낌은 정말 특별하지 않을까. 어둠 속에서 동물 미이라를 수십 구 발견하고, 조각상의 머리를 찾아내서 이전에 발굴된 조각들과 맞춰 본다거나, 동물을 숭배하는 부바스테이온 신전에 있었을 동물 조각상을 흙속에서 캐내는 감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순간 카메라가 잡은 발굴단, 연구자들의 얼굴에는 정말로 즐겁고 행복한 감정이 배어 있다.
극적인 드라마도 있다. 라마단이 오기 전까지 발굴은 끝나야 한다. 중요해 보이는 새로운 무덤이나 뭔가가 발견되지 않으면 연장은 불가능하다. 결국 담당 공무원이 와서, 이틀 안으로 모든 정리를 마치고 끝내야 한다고 통보한다. 다들 침울한 표정이다. 발굴한 유물들을 옮기고, 현장을 정리하던 와중에 새로운 유적이 발견된다. 담당자가 와서 들여다보자 화려한 벽화가 새겨진 벽이 보인다. 언뜻 보기에도 대단해 보인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이 발견으로 기간은 연장되고, 새로운 자금이 지원될 것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다시 일자리가 주어진 것이다.
이집트의 과거를 연구하는 학자가 말한다. ‘우리가 착각하는 게 있다. 이건 그들의 꿈이지 현실이 아니다. 이들은 현세보다 내세의 존재를 더 믿었다.’ 그러니까 거대하고 아름다운 무덤 속 벽화와 유물들이 그들의 실제 생활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유적을 발굴하는 것은 단지 신화를 찾는 위대한 여정만이 아니라 발굴단의 일상이며 소소한 행복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웅장하면서도 소박한 일을 하는 우리들의 얼굴을 '사카라 무덤의 비밀'에서 만날 수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