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결혼은 NO! 출산은 YES!
비혼 여성 "부부 출산만 허용하는 현실에 좌절"
"아빠 역할 못하는 가정보다 더 잘 키울 자신"
"아이를 키우는 데 아버지가 꼭 필요한가요?"
"출산을 장려하자며 비혼인 저의 출산을 사회가 원치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빠가 의무를 저버린 가정에 비해, 경제 능력이 있는 제가 혼자라도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41)씨의 '비혼 출산' 고백은 '부부관계 안에서의 출산'만을 정상적인 것으로 보는 한국의 가족제도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남편 없이 엄마가 될 권리'를 찾다가 절망했던 비혼 여성들은, 사유리씨 사례가 보도된 이후 법·제도·편견 탓에 이루지 못했던 '슬픈 실패담'을 쏟아냈다. 주변의 이상한 눈초리를 이기지 못해 끝내 결심하지 못했거나, 경제적 지원 제도가 없어 단념했거나, 육아의 엄두를 내지 못해 포기한 여성들이 우리 주변엔 적지 않았다. 이들은 왜 아빠 없이 엄마만으로 출산하는 일이 제도적으로 금지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왜 결혼 없는 출산을 원하나
비혼 여성들은 출산을 꼭 결혼과 결부시키는 한국 사회의 출산·육아 시스템을 문제 삼았다. 취업준비생 A씨는 여전한 가부장제 관습 하의 결혼이 싫어 비혼 출산을 원한다고 고백했다. A씨는 "저 스스로 가부장적 집안에서 유년시절을 보내 보니 아버지는 육아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며 "지금도 결혼제도에서 여성은 경력단절을 감수하며 혼자 육아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마저 그런 일을 겪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본보 기자들이 비혼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을 접촉해 "왜"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많이 돌아온 답은 "아이를 좋아하고 낳고 싶어서"였다. 직장인 박모(26)씨는 "아이를 좋아하고, 자식이 생긴다면 누구보다 잘 키울 자신 있다"며 "내가 낳고 싶다면 그 이상의 이유가 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나 사회가 '출산해도 되는 여성'을 결정하는 현 상황을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혼 출산 가로막는 제도와 편견
그러나 아이를 낳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비혼 엄마'가 될 수 없는 현실에 부딪쳐, 대부분 포기하고 마는 게 현실이다. 강소라(38)씨는 5년 전쯤, 미혼 여성은 양육은커녕 임신부터 지원하는 제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아이 갖기를 포기했다. 강씨는 "기혼 난임 여성은 고액의 시험관 시술을 지원 받을 수 있는 것과 달리 나는 미혼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용을 100% 혼자 감당해야 했다"며 "당시 병원이 혼인한 부부만 시술을 하는 게 맞다며 시술을 꺼려해 나도 두려워져 아이를 못 갖게 됐다"고 씁쓸해 했다.
경제적 이유도 극복하지 어려운 장벽이다. 간호사 B씨는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비혼 출산을 결심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친언니가 육아하는 걸 지켜보니, 지금 급여 수준으로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돈 문제보다 더 넘기 어려운 장애물은 '이성부부'가 아니면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뿌리 깊은 편견이다. 2018년 아이를 출산해 지금은 두살배기 아들의 엄마가 된 김정미(24)씨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김씨는 "책임감이 부족한 아이 아빠와 힘들게 가정을 이루느니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혼자 아이를 키우겠다고 하자마자 주변에선 '철없다' '아빠 없이 어쩌려고 그러느냐' 며 김씨를 질책하는 사람 뿐이었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이는 없었다. 김씨는 "아이를 낳자마자 세상이 똘똘 뭉쳐 내가 틀렸다고 찍어누르던 경험이 힘들고 서러웠다"고 고백했다.
비혼 출산이 자연스러운 유럽 등에서 살다 온 이들에게, 부부에 의한 출산만을 인정하려하는 한국의 고루한 가족제도는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다. 독일에서 16년을 살았던 김나리(38)씨는 "독일은 이유를 불문하고 여성 혼자 아이를 출산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고, 그에 대한 지원도 잘 돼있다"며 "반면 한국에 오니 여성이 아이를 낳아 지원을 받으려면 ‘부부’ 아니면 ‘미혼모’ 카테고리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게 불합리했다"고 지적했다.
"부부 중심 출산 지원에서 벗어난 정책 필요"
엄마가 되고 싶은 비혼 여성들은 자신들에게도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출산 지원 대책이 주어지기는 바란다. 강소라씨는 "스웨덴 등 유럽 국가처럼 미혼 여성에게도 정자기증이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비혼 출산을 원하는 대학생 정모(25)씨 역시 "정자기증으로 태아를 갖는 것은 여성 입장에서 계획적이고 준비된 임신"이라며 "오히려 국가에서 권장할 만한 출산 방법으로 독려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가가 비혼 출산을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면 사회적 편견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30대 여성 제모씨는 "사유리씨 출산에 '아빠가 없는 아이는 불행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고 놀랐다"며 "사회가 정한 틀에 속하지 않는 가정에 우리 사회가 어떤 시선을 보내고 있는지 다시 깨달았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씨는 "기존의 틀에 맞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는 것을 국가가 나서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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