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주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편집자주
※ 한국일보문학상이 53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이주란의 단편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의 ‘나’는 친구 P의 “나 사실 네 기도 매일 해”라는 문자메시지에 “난 괜찮으니까 네 기도를 많이 해”라는 답장을 보낸다. “태어나고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고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과 어렵게 내린 자신의 선택, 그로 인한 감정들이 모두 남(신)의 뜻이라는 것이 싫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하기까지 하다(‘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일상생활’)는 걸 알고 있지만 “갑자기 통보받고 싶지”(‘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 않은 마음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주란의 소설 속 인물들은 “멀리 떨어진 곳”(광역버스로 2시간 가까이 걸리는)에 살고 있다. 그들은 “그냥...그곳에 있”다. 뭔가 제 목소리라도 낼라치면 “인생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는 말을 듣고 그 기세에 눌려 움츠러든다. 그러면서도 “어떤 순간이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면 어쩔 줄을 모르겠”는 이들이다. 사라졌거나 사라질 존재들에 대해 전전긍긍하면서, 자칫 사람들의 발에 밟혀 뭉개질 보도 블록의 새싹들을 피해 걷느라 출근 시간이 늦어지고 길을 잃고 지하철 안으로 들어온 실잠자리를 잡아 밖으로 돌려보낸다. 이주란은 이렇듯 ‘당신’의 시선이 미처 보지 못하고 놓치는 삶들을 포착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사라졌고 사라질 존재들을 실잠자리의 날개를 조심히 잡아 지금의 이 시간으로 건져올리려는, 안간힘에 대한 기록이다. 소설이라는 형식에 어울리지 않을 인물들의 일상을, 너무도 사소해서 흐릿하기까지 한 “일기에 쓸 일도 일기에 쓸 말도 일기에 쓸 필요도 없는” 일상을, 그러나 어떤 순간도 마지막이 될 수 있기에 마지막을 연습하듯 일상을 살고 있는 이들의 그 일상을 세밀하게 기록한다.
이주란은 너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온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 천천히”, 몰아서 쓰면 일기가 아니게 되어 무의미해질까봐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복기한다. 김치를 볶고 조카와 사철나무를 보며 잡담을 나누는 단조로운 일상이 자몽청의 실패담에 이르면 어느 순간 손에 진득한 자몽 알갱이들이 잔뜩 달라붙은 듯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감각을 일깨운다. 거미줄처럼 미약하지만 어느 형체를 갖추며 구축이 된 그 세계 속에서 붕어빵이냐 옥수수냐를 놓고 하는 고민은 결코 죽느냐 사느냐의 결정보다 하찮지 않다.
하지만 일기와 편지로도 그 마음을 표현할 도리가 없을 때 그들은 운다. 자주 운다.
아무도 아닌 사람, 그 사람에게 이주란의 눈길이 닿을 때 그들은 아무도 아닌 존재에서 ‘오직’ 한 사람이 된다. “그냥 그대로 있는” 미미한 존재에서 돌부처처럼 오랜 시간 그 자리를 견뎌온 묵직한 존재감으로 뒤바뀐다. 그래서 나는 “멀리 떨어진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걸 병적으로 좋아”했다는 어떤 소설가처럼 이주란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 소박한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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