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반환보증 사고액 4,000억원 넘을 듯
깡통전세 늘어나며 보증 가입도 까다로워져
#. 서울 용산구에 사는 직장인 강모(33)씨는 당장 이달 말부터 살 집이 없다. 숙박시설과 부모 집을 오가며 연말연시를 보내야 할 처지다. 내년 1월 말이나 돼야 다시 살 곳이 생긴다.
그는 전세 사기 피해자였다. 원래대로면 지난달 전세계약을 맺은대로 송파구 송파동 빌라에 이달 말 입주했어야 했다. 계약금 3,100만원을 냈고, 이삿날까지 정했다. 그러나 며칠 뒤 임대인은 돌연 잠적했다. 대부업체가 전셋집을 경매에 넘긴 직후였다.
전셋집에 걸린 근저당 3억4,500만원이 문제였다. 강씨는 입주 전까지 근저당을 말소하는 감액등기를 조건으로 계약서를 썼지만, 임대인은 이를 지킬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강씨는 근저당금이 집값보다 높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강씨는 계약 파기에 따른 배상도 받지 못했다. 임대인의 친척을 통해 계약금 원금만 겨우 돌려 받았다. 강씨는 "공인중개사도 계약 당시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며 "민원 제기와 동시에, 임대인과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집주인이 떼먹은 전셋돈 4,000억원 넘을 듯
전세난이 장기화하면서 세입자 피해도 커지고 있다. 계약 사기는 물론, 임대기간이 끝난 후 전셋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민사소송으로 집주인에게 손해배상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이는 돈 없는 세입자가 고르기 힘든 선택지다.
24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세입자가 임대인에게 전셋돈을 못 돌려받아 발생한 보증사고는 2,032건이다. 피해 금액은 3,967억원으로, 연말이면 4,000억원을 넘을 전망이다.
보증사고 증가는 '깡통전세'와 관련이 깊다. 근저당 설정액과 보증금의 합이 집값보다 높은 임대주택이 많아지면서, 전셋돈을 떼인 세입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작년 한해 보증사고(1,630건)는 올해 1~10월의 80%, 금액도 525억원 적은 3,442억원에 그쳤다.
최근 전세난은 보증사고를 더 늘리는 요소다. 전세와 매매 가격 간 차이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전국 주택 전세가율(매매 대비 전셋값 비율)은 새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직후인 8월부터 상승해 지난달엔 전월보다 0.12%포인트 오른 65.72%를 기록했다.
임대인의 잦아진 '먹튀'에 보증기관도 허덕인다. HUG가 임대인 대신 전셋돈을 돌려준 반환보증 가입 세입자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1,878가구, 금액으로는 3,680억원에 달했다. HUG는 추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돈을 돌려받지만 징수 실적은 저조하다.
반환보증 가입도 어려워져
반환보증 가입조차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HUG에게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반환보증 가입 거절 건수(319건)는 1월(107건) 대비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역시 임대차법이 시행된 8월(242건)부터 거절 건이 빠르게 늘고 있다. 빚 많은 주택이라도 입주하겠다는 세입자가 늘어나고 있단 뜻이다.
마지막 구제 수단인 민사소송도 서민에겐 그림의 떡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아무리 꼼꼼히 썼더라도, 정작 문제가 터진 뒤에는 온전한 손해배상을 받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세입자 보호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분쟁이 끝날 때까지 저금리로 세입자에게 대출을 지원하거나, 무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 등이 있을 것"이라며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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