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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허락된 최대한의 목소리 내는, 아름답고도 서늘한 생동감

입력
2020.11.26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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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 심사평

20일 한국일보사옥에서 열린 제53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강경석 문학평론가, 박연준 시인, 하성란 소설가, 편혜영 소설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김형중 문학평론가. 이기호 소설가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화상으로 참여했다. 서재훈 기자

20일 한국일보사옥에서 열린 제53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강경석 문학평론가, 박연준 시인, 하성란 소설가, 편혜영 소설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김형중 문학평론가. 이기호 소설가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화상으로 참여했다. 서재훈 기자


10권의 후보작을 선정하는 예심은 10월에 이뤄졌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한 달 간의 검토기간을 더 거친 뒤 진행된 본심의 분위기는 사뭇 화기애애했다. 이중 어떤 작품이 수상작으로 결정되든 받아들일 만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집과 중편, 장편으로 양식이 다양했을 뿐 아니라 주제나 스타일에서도 각자의 개성을 최대한으로 밀고 나아간 작품들 사이에서 어느 한 편에 무게를 싣는 일은 오히려 쉽지 않았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하나의 완성형으로 보여주고 있는 중견들의 노작도 주목할 만했지만 이제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탄탄한 신뢰로 바꿔준 젊은 작가들의 작품 그리고 한국문학의 미래를 가늠케 하는 새로운 목소리까지 어우러져 어디에 기준을 마련해야 할지부터 아득했기 때문이었다.

우열을 가늠하기 어려운 가운데 결국 표결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오래 토론한 작품은 강화길의 '화이트호스', 박민정의 '바비의 분위기',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 이장욱의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한정현의 '소녀 연예인 이보나'(이상 작가명 가나다순)였다. 여러 해 지속된 페미니즘문학의 강세가 또다시 확인된 셈이지만 이제 그 진화의 경로 또한 다양해져 한두 가지 경향으로 묶기 어려워졌다는 데 심사위원 대다수가 공감했다.

20일 한국일보에서 열린 제53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재훈 기자

20일 한국일보에서 열린 제53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재훈 기자


이장욱의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은 구성의 치밀함과 완성도 면에서, 박민정의 '바비의 분위기'와 한정현의 '소녀 연예인 이보나'는 페미니즘, 퀴어, 소수자문제에 대한 개성적 접근 측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두 여성작가는 특히 소설형식으로 일종의 문화연구에 육박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는데 이제 막 조명을 받기 시작한 한정현의 끊임없이 증식하는 듯한 이야기 스타일은 장래를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긴 토론의 중심은 강화길과 백수린이었다. 가부장제의 모순을 고발하는 주제의식을 튼튼히 유지하면서도 최근으로 올수록 자신만의 장르적 스타일을 완성해가고 있는 강화길 소설의 문제적 의의와, 어딘지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이던 인물들이 삶의 균열을 마주해 드디어 자신에게 허락된 최대한의 목소리를 내는 백수린 소설의 아름답고도 서늘한 생동감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결국 후자에 손을 들어주었다. 무엇보다 소설집 '여름의 빌라'가 백수린 문학의 한 절정이라는 데 여러 심사위원들이 동의했고 문학상이 응원의 형식이라면 그것이 주어져야할 최적의 시점이 바로 이때일 것이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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