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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환자와 함께한 40년, "치과의사가 환자를 무서워하면 안 되죠"

입력
2020.12.17 09:00
수정
2020.12.1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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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치과 '더스마일치과' 이긍호 센터장 인터뷰
70년대 의료봉사 현장에서 전문지식 필요성 절감
장애인 치과 진료체계 마련 위해? 40년간 고군분투

장애인 치과 센터 '더스마일치과' 이긍호 센터장 인터뷰. 배우한 기자

장애인 치과 센터 '더스마일치과' 이긍호 센터장 인터뷰. 배우한 기자

"장애인의 치아 관리가 잘 안 되는 이유 중에는 치과 의사인 우리 자신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해요. 치과 의사들에게 매 맞을 얘기지만 의사가 장애인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거죠."

40년 동안 치과 치료 현장에서 장애인 환자를 만나온 치과의사의 쓴소리다. 어찌 된 영문일까? 2015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장애인 구강보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특수학교 및 복지관 이용)의 충치 경험률은 비장애인과 비슷하다. 하지만 썩은 이를 치료받지 못한 채 방치해두거나 그냥 뽑아버리는 경우는 비장애인에 비해 더 많다. 접근 가능한 치과 수 부족, 진료비 부담 등으로 인해 비장애인보다 제대로 된 치과 치료를 받기 어려워서다.

지난달 20일 장애인 치과 센터 '더스마일치과'를 운영하는 이긍호 센터장(79)을 만나 장애인 구강건강과 치과의사의 책임에 관해 들었다.

'장애인 치과학' 개설...전문지식 필요해

장애인 치과 센터 '더스마일치과' 이긍호 센터장 인터뷰. 배우한 기자

장애인 치과 센터 '더스마일치과' 이긍호 센터장 인터뷰. 배우한 기자

이긍호 센터장의 지난 40여년은 오롯이 한국에 장애인 치과 진료 체계를 마련하는 시간이었다. 1976년부터 경희대 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이 센터장은 1986년 ‘장애인 치과학’을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일본으로 넘어갔다. 한국에 장애인 치과학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때였다.

“장애인 치과학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지역 사회에 장애인이 별로 보이지 않았어요. 집 안에 장애인이 있으면 부끄럽다고 해서 숨기고, 시설에 보내고 그런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도 처음부터 장애인 치과학의 필요성을 느낀 건 아니다. 그의 전공은 소아치과, 환자를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다던 그의 자신감이 와장창 깨졌던 건 1970년대 중반 장애인 치과 진료봉사 현장에서였다.

“옛날에 장애인을 치료했을 땐 ‘불쌍한 사람을 도와준다’는 마음에서 자기 의료 행위를 한 거예요. 그런데 막상 장애인 환자를 만나니 봉사정신만으론 치료가 안 됐어요. 장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했던 거죠.”

고정 장치가 달려 있는 유닛체어.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정 장치가 달려 있는 유닛체어.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에서 돌아온 뒤 기회가 닿는 대로 장애인을 대상으로 진료에 나섰다. “치과의사로서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결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1994년 정립회관(국내 최초 장애인 이용시설), 1995년 상계동 뇌성마비복지회관에 유닛 체어(치과 진료 의자)를 설치해두고 경희대 치대 제자들과 함께 매주 1회 진료를 나갔다. 1998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경희대 치대에 '장애인 치과학'을 학과목으로 개설하고, 2004년 장애인치과학회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2014년 '장애인에게 먹을 권리를 주자'를 목표로 더스마일치과가 개원한 후 5년 동안(2014~2019년) 치과를 찾은 장애인 환자는 총 863명. 현재 더스마일치과엔 치과의사(원장) 1명과 치위생사 2명이 상주하고 임플란트, 근관 치료, 전신마취 등 추가 치료가 필요할 땐 각 분야 전문가들이 돌아가며 치과에 온다.

"치과의사가 환자를 무서워한다"

이긍호 센터장이 이끄는 장애인 전문 치과병원 더스마일치과의 전신 마취실. 더스마일치과 제공

이긍호 센터장이 이끄는 장애인 전문 치과병원 더스마일치과의 전신 마취실. 더스마일치과 제공

이 센터장은 장애인 구강 건강의 첫 번째 책임은 치과의사에게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똑같은 치과 치료라 해도 환자들은 장애 유형, 장애 정도 혹은 과거 치과 치료 경험에 따라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 무엇보다도 당사자에게 치과 치료가 왜 필요한지 납득시키는 데만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 센터장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장애인 환자가 치과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치과의사가 환자를 무서워한다'고 말합니다"라며 "환자가 병원에 들어왔을 때 '아이고 또 지겨운 애가 왔구나'라고 하면 이것이 어떤 식으로든 환자에게 전달되고 치료를 거부하려 한다"고 전했다.

구두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끈기 있게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한다. 환자가 난폭해지거나 우는 경우 그 원인을 분석해 대처하고, 가정이나 시설에서의 행동과 생활도 참고해 대응한다. 치과의료인으로서 연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환자 대응의 기본' 중 일부, 장애인 치과진료 가이드북(2019)

이 센터장도 치과 치료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일반의학 책을 한참을 뒤적였다. 뇌성마비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선 해부학적 지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뇌성마비의 특성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장애인 환자의 '행동조절'이 어렵다는 이유로 치료가 가능한 치아를 내버려 두거나 함부로 뽑아버려서는 안 된다. 게다가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신마취를 하는 건 아닌지 경계할 필요도 있다.

이 센터장은 "전신마취를 많이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치료를 위해 전신마취가 필요한 경우는 전체 환자에서 5~10%밖에 안 됩니다"라며 "그런데 치료가 안 되니까 전신 마취를 자꾸 하려는 겁니다"라고 꼬집었다.

치료를 거부하던 환자가 매일 찾아온 사연

진료를 보고 있는 이긍호(오른쪽) 센터장의 모습. 더스마일치과 제공

진료를 보고 있는 이긍호(오른쪽) 센터장의 모습. 더스마일치과 제공

이 센터장은 "매일 한 번씩 치과에 오는 애가 있었어요. 여길 좋아해서 근처라도 왔다 가야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들어오지도 않으려고 해서 애썼던 앤데 허허"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치과에 들어오기도 싫어했던 환자가 어떻게 치과를 좋아하게 됐을까? 이 센터장은 "오늘은 치과에 들어오는 것까지, 내일은 유닛 체어에 앉는 것까지 이렇게 시간을 두고 기다렸죠. 또 기본적으로 치과 기구가 무섭잖아요. 그 무서움을 해소하기 위해선 환자에게 하나하나 보여주고, 말로 설명해줘야 해요"라고 답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되면서 환자들과 소통이 어려워진 점이 아쉽다. 이 센터장은 "사람들이 눈 마주치고 표정을 나누면서 관계를 맺잖아요. 그런 게 안 돼서 어려운 부분이 있죠. 얼굴을 보지 못해서 거리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치과 치료 어렵게 하는 진료비 문턱 낮춰야

장애인 치과센터 '더스마일치과' 이긍호 센터장이 장애인을 위한 치과 치료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장애인 치과센터 '더스마일치과' 이긍호 센터장이 장애인을 위한 치과 치료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이 센터장은 "많은 장애인이 치과 치료를 받는데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며 "이걸 국가가 지원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년 기준 치과의원 의료비 중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52%, 일반의원 14.8%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치과의 높은 비급여 진료 비율은 빈곤한 장애인이 치과를 찾기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문턱으로 작동한다.

더스마일치과는 비급여 진료 품목의 진료비 50%를 치과에서 부담한다. 더스마일치과의 운영 취지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낸 후원금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정부의 장애인 치과진료 전달 체계 중 대표 기관은 권역별로 설치된 12개의 '장애인 구강진료센터'. 장애인 구강진료센터는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에게 비급여 진료비의 50%를, 치과영역 중증 장애인에게 30%를 지원하고 있다.

2015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장애인 구강보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전문치과병원이 아닌 거주지 인근 개인 치과의원에서 진료받는 장애인은 45%에 달한다. 이 센터장도 이론적으로 장애인의 80~85%는 특수 장비가 필요한 장애인 전문 치과가 아니더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정 장치가 달려 있는 유닛 체어.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정 장치가 달려 있는 유닛 체어.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는 3단계 의료전달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주지 인근 개인 치과의원에서 1차 진료를 받는 거예요. 진정제 투입, 물리적인 압박 등 더 강제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 2차 진료기관, 전신마취가 필요한 경우 3차 진료기관을 찾는 거죠.”

현재 국내에서 장애인 치과진료에 참여하는 진료시설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없다. 스마일재단에서 2004년부터 운영 중인 '장애인진료치과네트워크’가 민간부문 장애인 치과 진료기관의 유일한 통계다. 2020년 현재 전국 치과 1만5,000여 곳 중 400여 개의 치과가 함께하고 있다.

“치과의사들이 장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해야 돼요. 잘 모르면 진료를 거부할 수밖에 없거든요. ‘먹을 권리’라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게 치과의사의 역할이라면, 정책도 같이 가야 합니다. 장애인 대상 비보험 진료 품목에 대한 지원을 민간 병원까지 확대하면 좋겠죠.“

새 장소로 이전, "잘 되겠지 생각해야죠"

장애인 전문 치과 병원 '더스마일치과' 이긍호 센터장. 배우한 기자

장애인 전문 치과 병원 '더스마일치과' 이긍호 센터장. 배우한 기자

현재 더스마일치과는 서울 영등포구 뇌성마비 장애인직업재활센터 나로센터 5층에 위치해 있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서 더스마일치과가 개원한 2014년부터 현재의 장소를 무상임대해줬기 때문. 뇌성마비복지회와의 인연은 이 센터장이 뇌성마비 장애인을 대상으로 치과 치료를 시작한 20여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센터장과 의료진은 18일 새로운 곳으로 둥지를 옮기려 하고 있다. 복지회 측이 올해 4월 퇴거를 요청했고, 우여곡절 끝에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

"4월 이사회에서 결정이 났다고 7월까지 나가라고 그러더라고요. 공사 중이라 12월 중순 넘어서 이사할 것 같아요. 휠체어가 화장실 앞까지 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마땅치 않아요. 환자들에게 낯선 곳으로 가는 것도 걱정이죠. 그래도 잘 되겠지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죠."

이 센터장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잘 되겠죠"라는 그의 얘기가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그를 찾은 환자들이 이용하기 어렵지 않은 치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테다. 40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이은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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