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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의 제안 "과도한 '레벨D' 방호복 대신 '4종 세트'를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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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의 제안 "과도한 '레벨D' 방호복 대신 '4종 세트'를 입자"

입력
2020.12.06 07:00
수정
2020.12.0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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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D는 통풍 안 되고 무거워 의료진 건강 위협
움직임 둔하고 손 끝 무뎌 환자 안전까지 우려
중환자 병실에 들어갈 의료진 확보에도 걸림돌

서울대병원 위기대응중환자실 신진경 간호사가 레벨D 방호복(왼쪽)과 4종세트(오른쪽)를 입고 있는 모습. 레벨D는 바람 한 점 통하지 않게 온몸을 다 감싸지만, 4종세트는 다리와 머리, 목 부분은 통풍이 된다. 남보라 기자

서울대병원 위기대응중환자실 신진경 간호사가 레벨D 방호복(왼쪽)과 4종세트(오른쪽)를 입고 있는 모습. 레벨D는 바람 한 점 통하지 않게 온몸을 다 감싸지만, 4종세트는 다리와 머리, 목 부분은 통풍이 된다. 남보라 기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방호복으로 꽁꽁 감싼 의료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풍경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철벽 방어’ 하듯 이렇게까지 중무장할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나친 중무장은 의료진 건강에도 부담이 되고, 중환자실 근무를 꺼리게 되는 이유가 되는데다, 둔중한 움직임 때문에 환자 안전까지 위협할 우려가 있어서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레벨D를 입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기 확산 때 레벨D를 입었다가, 관성적으로 이를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통풍 안 되는 보호복 + 3kg 장비 + 4시간 연속 근무

‘레벨(LEVEL) D’ 수준 방호복은 그야말로 중무장이다. 머리부터 발목까지 이어지는, 온몸을 가리는 전신 보호복을 입는다. 손엔 장갑, 발엔 덧신을 신는다. 머리 전체를 덮는 후드도 쓰고, 허리에는 3㎏짜리 전동식 호흡장치(PAPR)까지 찬다.

그런데 이 방호복, 입고 벗는 게 쉽지 않다. 한국일보는 서울대병원 위기대응중환자실 신진경 간호사에게 레벨D 방호복을 입어봐달라고 요청했다. 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는데만 4분 7초가 걸렸다. 끙끙대며 다 갖춰 입고 나니 이미 신 간호사 이마와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입는데 힘을 쓴 기운이 입은 뒤 더 올라간다. 보호복이 부직포 재질이라 통풍이 전혀 안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의료진이 레벨D 방호복을 입은 후 허리에 차는 전동식 호흡장치(PAPR). 이 장치는 깨끗하게 걸러진 공기를 방호속 안으로 넣어 숨쉬기 편하게 해주지만, 무게가 3kg이나 된다. 김창선PD

코로나19 의료진이 레벨D 방호복을 입은 후 허리에 차는 전동식 호흡장치(PAPR). 이 장치는 깨끗하게 걸러진 공기를 방호속 안으로 넣어 숨쉬기 편하게 해주지만, 무게가 3kg이나 된다. 김창선PD


입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방호복에다 3㎏가 넘는 장비를 매단 채 의료진은 기본 2~4시간 정도 환자를 돌본다. 신 간호사는 “워낙 땀이 많이 나 탈수 증상이 나타날까 봐 물을 마시려 해도 방호복 때문에 그럴 수 없다"며 “호흡장치 무게 때문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동료들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여름엔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채로 근무하다 탈진해 쓰러진 사례도 나왔다.

육체적인 부담이 크니 업무 집중도도 떨어진다. 한만호 대한간호협회 정책전문위원은 “방호복 입고 1시간 정도 일하고 나면 정신을 가다듬고 체력을 유지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며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게 바로 방호복”이라고 말했다. 실제 방호복 때문에라도 코로나19 병상 근무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병상 부족 현상이 계속 문제가 돼도 '의료진을 구하지 못하는 이상 중환자 병상만 늘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는 방역당국의 설명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의료진이 불편한데, 환자가 편안할 리 없다. 방호복 때문에 의료진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데다 체력까지 급격히 소진된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실수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전재현 국립중앙의료원 음압격리병동 관리실장은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장갑을 두 벌 끼면 손의 감각이 무뎌지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며 "환자 상태가 급변하는 중환자실에서 의료진 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해외는 간편한 4종 세트만… “레벨D와 감염력 차이 없어”

이 때문에 국립중앙의료원은 의료진의 건강과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레벨D 방호복 대신 ‘4종 세트’를 권한다. 4종 세트란 전신 가운, N95 마스크, 장갑, 고글(또는 페이스 쉴드) 등 4가지를 가리킨다. 신진경 간호사에게 착용을 부탁했더니 레벨D의 절반 정도인 2분34초에 그쳤다. 여기다 통풍도 잘되고 움직이기도 훨씬 수월했다.


서울대병원 위기대응중환자실 신진경 간호사가 전신 가운, N95 마스크, 장갑, 고글로 구성된 4종 세트를 착용한 모습. 남보라 기자

서울대병원 위기대응중환자실 신진경 간호사가 전신 가운, N95 마스크, 장갑, 고글로 구성된 4종 세트를 착용한 모습. 남보라 기자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코로나19 중환자를 돌보고 있는 전재현 실장에게 4종 세트에 대해 좀 더 물어봤다.

-4종 세트만으로 감염을 막을 수 있겠나.

“코로나19의 정체나 전파 방식을 몰랐을 때는 높은 레벨의 방호복을 입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19가 비말(침방울), 공기, 눈 또는 코를 통한 감염 등 3가지 경로로 전파된다는 게 입증됐다. 4종 세트로 세가지 감염 경로를 다 막을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4종 세트를 권했다던데.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그랬다. 일반 코로나19 환자를 볼 때는 덴탈 마스크, 가운, 장갑, 페이스 쉴드(얼굴 가리개) 정도만, 기관 삽관이나 기관지 내시경 등 에어로졸(공기 중에 떠 있는 미세한 입자)이 생길 수 있는 시술을 할 때는 덴탈 마스크 대신 N95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다른 나라 의료진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미국 유럽 일본 등 대부분 국가에서 4종 세트를 입는다. 미국에서 레벨D와 4종 세트의 감염력을 비교했더니 차이가 없었다 한다. 레벨D의 경우, 오히려 옷을 벗는 과정에서 감염 위험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거기다 레벨D는 방호복 내부에 열을 높여 피부질환, 탈수, 정신질환 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 일부 국가에선 그런 이유 때문에 아예 꼭 필요할 경우가 아니고는 레벨D를 입지 말라고도 한다.”


다른 나라 의료진들이 입는 방호복. 대부분의 국가들이 몸에는 가운, 얼굴에는 마스크와 고글 또는 페이스 쉴드를 착용하고 장갑을 낀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다른 나라 의료진들이 입는 방호복. 대부분의 국가들이 몸에는 가운, 얼굴에는 마스크와 고글 또는 페이스 쉴드를 착용하고 장갑을 낀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우리나라는 왜 계속 레벨D를 입나.

“관행적으로 입는 것 같다. 질병관리청도 레벨D를 권고한 적은 없다. 4종 세트를 기본으로 병원 사정에 맞춰 입도록 했다. 처음에 레벨D를 입다 그냥 그대로 굳어져버린 것 같다. 의료진들도 감염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레벨을 낮추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4종 세트를 입는 곳이 있나.

“국립중앙의료원, 서울보라매병원, 서울대병원 의사들은 4종 세트를 입는다. 나는 8월 말부터 중환자실에서 4종 세트를 입었다. 지난달 10월부터는 국립중앙의료원 전체 의사가 4종 세트를 착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의사감염은 한 건도 없었다. 다음달부터는 간호사들도 4종 세트를 입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4종 세트라면 중환자 병상 확보가 더 쉬워지나.

“중환자실 병상을 확보할 때 물리적인 공간도 중요하지만, 의료진도 함께 들어가야 한다. 의료진들이 지치지 않고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가 당분간 지속될 텐데 언제까지 레벨D를 입고 버텨내라 할 수 있을까. 지속가능한 코로나19 대응을 위해서라도 방호복을 간소화해야 한다.”

방호복은 코로나19 대응의 핵심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의료진 건강 위협 → 환자 안전 문제 발생, 중환자실 근무 기피 → 중환자 병상 확보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가장 큰 원인이 방호복이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위드 코로나’ 시대, 방호복에도 변화가 필요한 때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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