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위 예결소위서 '야당의 반대' 결정적
방사청 "착수금 10억원이라도..."
전투기 수십대 이착륙이 가능해 ‘바다 위 군사기지’로 불리는 경항공모함 착수 예산 100억원이 내년도 예산에서 빠진 것은 국민의힘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지난달 11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예결소위에서 야당 의원들은 “경항모는 북한, 주변국 위협과 무관하고 오히려 미국의 지원 요구에 끌려 다니기만 할 것”이라는 논리로 반대했다. 군 당국은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고 국회 설득에도 실패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마저 “야당 주장에 반론을 펴기 힘들다”고 할 정도였다. 결국 경항모 도입 적정성을 따지는 토론회 개최 명목의 연구용역비 1억원만 겨우 남겼다.
6일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경항모 도입 반대의 포문은 육군 중장 출신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열었다. 당시 국방위 수석전문위원이 “민주당 민홍철, 안규백 의원이 (당초 정부 예산안에 없던) 경항모 예산 101억원 증액 의견을 냈다”고 보고하자, 곧바로 반대 의견을 폈다. 신 의원은 “우리 안보 환경에 경항모가 필요한 지 제대로 검증도 안됐는데 사업을 추진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솔직히 말해 경항모를 도입하면 미군 태평양 함대의 출동 요청에 불려 다니다가 볼 일 다 본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15년 전 일본이 원자력 잠수함 개발을 논의할 당시, 일본 열도 방어보다 미국 7함대 지원에 더 많이 쓸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향후 수조원의 예산이 투입될 경항모가 우리나라 보다는 오히려 미군에 기여할 것이라는 논리다.
이에 해군과 방위사업청은 “항공모함 2척을 보유한 중국이 항모를 계속 늘리고 있어 준비가 필요하다”며 “입찰 공고라도 낼 수 있는 최소 착수금 10억원이라도 반영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신 의원은 “중국 항모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 태평양 함대와 붙으려고 증강하는 것”이라며 “남중국해에서 미중 갈등이 벌어지면 미군은 우리에게 출동 지원을 요구할텐데, 경항모가 없다면 몰라도 있는 상태에서 거부하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도 “착수 예산이 한 번 들어가면 매년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효용도 검증 안 됐는데 덜컥 예산을 넣는 것은 납세하는 국민에게 무책임한 것”이라고 거들었다.
경항모·한미동맹 놓고 뒤바뀐 논리도 ‘눈길’
그러자 민주당 국방위 간사인 황희 의원은 “오히려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경항모를 도입해야 한다”고 군의 입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는 “일본도 항모가 필요 없을 텐데 미일동맹을 위한 역할을 다하기 위해 항모를 도입한다고 본다”며 “우리도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미군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역할 증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소 한미동맹에 우호적인 보수 야당은 ‘미군에 도움만 주는’ 경항모 도입에 반대하고, 한미동맹 기여에 미온적인 민주당이 ‘동맹 강화’를 이유로 도입을 주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도 경항모 예산을 끝까지 밀어붙이진 못했다. 황 의원은 “사실 저는 경항모가 확정된 사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한 발 물러섰고, 설훈 민주당 의원도 “신원식 의원 주장에 반론이 쉽지 않다”며 “바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고 토론해야 된다”고 했다.
군 입장에서 이날 예결소위는 경항모 예산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애초 방사청은 지난 5월 경항모 착수 예산으로 100억원 편성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업 타당성 조사 미비로 기획재정부 검토 과정에서 전액 삭감되면서 올 9월 국회에 제출한 정부안에는 빠졌다. 사업 타당성 조사를 마치지 않은 무기 도입 예산은 국회 심사과정에서 재도전이 가능해 아예 무산된 건 아니었다. 당해 연도 예산에 반영되지 않으면 사업이 1년 이상 지체된다는 이유로 일종의 ‘쪽지 예산’처럼 막판에 넣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나 군 당국은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이후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예결위 소소위'에서도 반전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지난 2일 내년도 예산안(558조)은 경항모 예산이 빠진 채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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