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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으로 시작해 스카를라티로 끝나는 피아니스트 이야기

입력
2020.12.09 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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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에 나오는 27개 클래식 음악들

편집자주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지만 막상 무슨 노래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 음악, 그 음악을 알려드립니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의 주인공인 헨리 콜(패트릭 스튜어트·왼쪽)은 헬렌(케이티 홈즈)의 도움을 받아 무대 공포증을 극복한다. 판씨네마 제공

영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의 주인공인 헨리 콜(패트릭 스튜어트·왼쪽)은 헬렌(케이티 홈즈)의 도움을 받아 무대 공포증을 극복한다. 판씨네마 제공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인 영화라 소나타로 시작해 소나타로 끝난다. 서사보다 깊은 여운을 남기는 요소는 90분 상영시간을 촘촘히 채우는 클래식 음악이다. 무려 27개의 곡이 나오는데, 특히 피아노 수작들이 총출동했다.

지난달 19일 개봉한 영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의 도입부는 베토벤 소나타 23번이다. 베토벤 4대 소나타 중 하나로 '열정'이라는 부제로 유명하다. 주인공인 거장 피아니스트 헨리 콜(패트릭 스튜어트 분)은 오랜 만에 무대에서 이 곡을 치다가 갑자기 공황장애를 겪는다. 가까스로 완주했지만 무대 공포증에 휩싸여 공연장을 뛰쳐나온다. 격정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음산한 단조로 시작하는 1악장은 콜의 불안을 대변하는 듯하다.

손도 안 댔던 담배까지 입에 물었다가 겨우 무대로 복귀해 치는 곡은 슈만의 '환상곡(판타지)'. 연인 클라라에 대한 슈만의 사랑이 담긴 곡으로, 작곡가의 피아노곡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완성도가 뛰어나다. '환상적이고 열정적으로' 연주해야 하는 곡 분위기와 달리 콜의 심리는 갈수록 위태로워진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는 콜을 잡아주는 건 뉴욕의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헬렌(케이티 홈즈)이다. 콜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면서 관계가 시작된다. 공포감에 짓눌린 콜이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지 못하고 망설이자 헬렌이 옆에 앉아 콜과 '카르멘 판타지'를 함께 치며 위기를 모면한다. 콜이 쇼팽의 '발라드 4번'을 연주하다 '코다(CODAㆍ악보에서 특별히 추가된 종결부)' 부분에서 실수를 하고 무너지자 그를 다독여 다시 피아노 앞에 앉힌 것도 헬렌이었다. '발라드 4번'의 코다는 연주자들이 특히 어려워하는 대목으로 악명 높다. 코다는 영화 원제이기도 하다.

헬렌 덕분에 콜은 생기를 되찾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헬렌이 사고로 생을 마감한 것.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 순간 콜은 베토벤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을 치고 있었다. 의미 있는 사람을 잃은 콜은 홀연히 여행을 떠나고, 스위스의 어느 호텔에 머물며 가곡을 듣는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중 첫번째 곡 '안녕히 주무세요(Gute nacht)'다. 실연으로 연인 곁을 떠나는 나그네의 쓸쓸함이 묻어있다.

상실의 아픔으로 얼룩진 콜은 헬렌의 유작이 돼버린 콜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다시 무대에 선다. 이번에는 발랄한 곡이다.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콜이 헬렌을 위해 연주한 스카를라티의 소나타(L366)가 흘러나온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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