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스터디도 술모임도 줌으로...화면에서라도 친구 만나야죠
알림

스터디도 술모임도 줌으로...화면에서라도 친구 만나야죠

입력
2020.12.14 09:00
수정
2020.12.14 10:20
0 0

코로나19 속 20대 청년들의 연말 나기
화상회의 플랫폼 활용한 만남..."새로운 방식의 대면"
추억의 '마피아 놀이'도 코로나19 덕 인기 급상승

화상회의 플랫폼 '줌' 화면에 모여 잔을 들고 건배를 하는 대학생 류모씨와 그의 친구들. 류씨 제공

화상회의 플랫폼 '줌' 화면에 모여 잔을 들고 건배를 하는 대학생 류모씨와 그의 친구들. 류씨 제공

최근 대학생 류모(23)씨는 빨간 옷을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zoom) 화면 속 친구들의 옷도 모두 빨간색. 지난 3주 동안 친구를 거의 만난 적이 없었던 류씨는 "1월 이후 한 번도 못 본 친구들과 12월에 만나자며 방까지 예약했는데 코로나로 약속을 취소했다"며 "대신 만나기로 한 날에 똑같은 색깔 의상을 맞춰 줌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13일 기준 하루 확진자가 1,000명으로 넘어서고, 앞서 수도권 2.5단계·비수도권 2단계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면서 갈 곳이 줄었고 자연스레 사람들의 만남이 단절됐다. 특히나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등 떠들썩하게 모이는 것을 즐겼던 20대들로서는 답답하기 그지 없다.

마음으로야 코로나19 감염을 줄이기 위해 외출을 자제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막상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지금, 20대들은 방역도 하고 외로움도 달래기 위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원룸에서 하루나기가 괴로워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여기 한 칸짜리 방에 남겨진 20대 청년들이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무기력함을 호소했다. 대학원생 이모(24)씨는 얼마 전까지 대학원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최근 방역을 위해 학교 건물에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지고 도서관이 문을 닫았다. 종종 시간을 보냈던 학교 주변 카페도 테이크 아웃만 되고 머물 수 없게 되면서 꼼짝없이 방 안에 '갇히게' 됐다.

이씨는 "온종일 혼자 있다 보니 '나는 누구이고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마음이 자꾸 든다"며 "연구실에서 비슷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며 틈틈이 재충전하던 시간이 아예 사라져 아쉽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모(26)씨는 "방에만 있다보면 운동도, 소화도 안 된다"며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다면 우울했을 거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학교에서 '장애학생 활동 보조'로 일한다. 일주일에 20시간 동안 지체장애인 학생을 돕는 일이다. 박씨는 학교에 가고, 사람을 보고 대화를 나누니 "그나마 집에서 느꼈던 우울감이 줄어들고 생기가 도는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줌 켜놓고 할 일 하기...그대로 곁에 친구가 있으니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zoom)을 이용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 AP 연합뉴스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zoom)을 이용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 AP 연합뉴스

자취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대학생 정모(24)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씨는 "학교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서 공부할 공간을 찾기 힘들고, 좋아하던 수영도 할 수 없게 됐다"며 "문을 닫고 식당을 이용하기 꺼려지면서 자연스레 친구들과 만남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씨는 수시로 줌을 켠다. 몸은 고립 속에 있지만 마음까지 혼자 있고 싶지는 않아서 택한 방법이다.

정씨가 처음 줌을 사용한 건 5월 교환 학생 생활을 하다 미국에서 귀국해 자가격리를 하던 때였다.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격리 생활이 만만치 않았고, 그 어느 때보다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외로움과 무기력을 견디기 위해 친구들을 모아 '줌 스터디'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대단한 스터디는 아니다. 그냥 줌을 켜 둔 채 각자 할 일을 하는 방식이다.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줌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침묵 사이사이 농담과 질문이 섞인다. 비록 화면을 통해서지만 바로 곁에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대개 토론회, 강의, 회의 참여를 위해 줌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정씨는 주로 ‘친구들과 안부를 확인하고 온라인 만남’을 위해 줌을 쓴다. “그냥 줌을 켜둔 채 각자 할 일을 하거나, 줌 화면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거나 게임을 한다”는 정씨의 말속엔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안희제씨가 '줌 알코올 모임'을 위해 준비한 하이볼. 잔 뒤로 키보드가 보인다. 안희제 제공

안희제씨가 '줌 알코올 모임'을 위해 준비한 하이볼. 잔 뒤로 키보드가 보인다. 안희제 제공

크론병 관해기(증상이 어느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적은 시기) 환자인 대학생 안희제(25)씨는 9일 저녁 친구들과 ‘줌 알코올 모임’을 위해 컴퓨터를 켰다. 안씨는 하이볼을, 다른 친구들은 맥주를 준비해 화면 앞에 모였다. 안씨도 오프라인 만남을 약속한 친구들과 식사 자리가 물 건너가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줌 술자리를 기획했다.

안씨는 4시간 동안 친구들과 실컷 수다를 떤 뒤 “진작에 왜 이 생각을 못 했나 싶다”고 깨달았다. “줌 만남이 대면 만남보다 덜 한 대체재라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의 대면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아픈 사람이라 나가는 것 자체가 피곤한 데다가 (몸에 고통을 주는) 먹거리를 고르는 문제도 해결돼 오히려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모바일 게임으로 하는 '마피아 놀이'

모바일 게임 어몽어스 진행 중 '누가 임포스터인지' 투표하는 장면 . 구글 플레이 캡처

모바일 게임 어몽어스 진행 중 '누가 임포스터인지' 투표하는 장면 . 구글 플레이 캡처

친구들과 '사회적 거리'를 둔 채 모바일 게임으로 모이기도 했다. 2년 전 출시된 모바일 게임 ‘어몽어스'가 대표적인데, 최근 서버 접속에 지장을 줄 정도로 사용자가 몰렸고 게임 순위 차트에서 역주행하고 있다. 10월 미국 CNBC 방송은 어몽어스를 “사용자 간 상호 작용이 활발해 가상 사회화에 완벽하게 적합한 게임”이라고 평가했다.

어몽어스의 규칙은 시민들 사이로 숨어 있는 ‘마피아’를 찾아내야 하는 ‘마피아 놀이’와 비슷하다. 최대 10명의 플레이어는 게임 시작과 함께 ‘크루원’과 ‘임포스터’로 나뉜다. 크루원이 승리하려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면서 임포스터를 찾아내야 한다. 임포스터가 승리하기 위해선 들키지 않고 크루원을 암살해야 한다.

평소 게임을 즐기는 대학생 김모(24)씨는 “친구들이랑 게임해도 여럿이서 할만한 건 없었는데 어몽어스는 최대 10명까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며 “마피아와 게임 규칙도 비슷해 새로 배워야 하는 부담도 적어서 같이 하자고 제안하면 다른 게임과 달리 다들 즐거워한다"고 전했다.

김씨의 제안으로 어몽어스를 시작했다는 민모(24)씨는 “임포스터 역할을 맡을 때 친구들 속이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휴대폰으로도 할 수 있는 데다가 게임 시간이 짧아서 모이기도 더 쉬운 것 같다”고 말했다.

자취방 피해 본가·독서실·스터디 카페로

2일 서울시내 한 스터디 카페에서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뉴스1

2일 서울시내 한 스터디 카페에서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뉴스1

서울에서 자취하는 대학원생 이씨는 학기가 끝나면 코로나19 감옥을 피해 경기도 부모님 집으로 갈 예정이다. 최근 부모님 집에 다녀왔을 때 '살 만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 자취방보다 공간이 넓다 보니 안방, 이씨의 방, 거실, 부엌을 옮겨 다닐 수 있어 하루 내내 집에 있더라도 한결 숨통이 트인다.

서울 은평구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나모(24)씨는 최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역 당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독서실이 문을 닫을까봐 마음 졸였지만 다행히 시간 제한(오후 9시~다음날 오전 5시)이 생기는 것에 그쳤기 때문.

8월 수도권 방역조치 강화에 따른 '독서실 집합금지 명령'으로 2주 동안 독서실에 갈 수 없어 오도 가도 못하고 집에만 머물렀던 걸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나씨는 매일 독서실로 '등교' 중이다.

대학생 박씨는 시험을 앞두고 평소 잘 찾지 않던 스터디 카페 이용권을 끊었다. 바깥 공기를 맡으며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박씨가 사는 자취방 인근 스터디 카페에는 30개 좌석 중 10개 정도만 차 있는 정도로 사람이 많지 않다. 박씨는 "밀집도도 높지 않고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대화도 하지 않아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은기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