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중인 정윤석의 '내일' 논란
중국 리얼돌 공장 여성노동자 다루며 리얼돌 노출
작가·미술관 측 "성 상품화 비판하려 했다" 불구
일부 관람객 "국립미술관 전시로는 부적절" 지적도
여성의 신체를 본뜬 성인용품인 '리얼돌'을 소재로 다룬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여성혐오일까.
국립현대미술관의 연례 전시 중 하나로, 미술 작가 4명을 뽑아 지원해 개인전을 열고 이 가운데 1명을 '올해의 작가'로 선발하는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 리얼돌을 주요 소재로 다룬 영상이 전시되면서 온라인이 비판 여론에 휩싸였다.
작가와 전시를 담당하는 미술관은 해당 작품이 여성을 상품화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일부 관람객은 리얼돌을 재현하는 방식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감상을 남겼고 후보 선정 철회와 전시 중단 요구까지 제기된 상태다.
작품의 핵심 소재가 된 리얼돌
논란이 된 작품은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등의 영화감독이자 시각예술가인 정윤석 작가의 '내일'이다. 인간과 닮은 인간의 대체물을 만들거나 소비하는 사람들을 묘사하기 위해 중국의 한 섹스돌(중국에서 리얼돌을 부르는 이름)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과 그 '대체물'을 소비하는 남성 소비자 등을 다뤘다.
이 작품은 리얼돌을 직접 설치하지 않았지만, 작품의 핵심 소재로 쓰인다. 미술관 측에 따르면, 하나의 장편 영화와 사진 및 영상 설치로 이뤄졌다. 2시간 반 가까운 분량의 영상 작품 안에서는 중국의 공장에서 리얼돌을 만드는 과정을 성적 대상화보다는 '노동 현장'으로 인식하고 관찰하고 있다.
중심이 되는 영화 외에 설치된 사진과 영상도 리얼돌과 이를 제조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미술관 측은 작품의 목적을 "인간이 욕망을 위해 인간 같은 소비재를 제작하는 모습을 기괴하게 포착함으로써 인간과 인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FC서울의 '객석 리얼돌' 떠올라"
하지만 실제 작품을 본 관람객 중 일부는 리얼돌이란 소재를 성적 대상으로 묘사해 전시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실제 영상 내용이 성인용품인 리얼돌 제조 산업을 문제 삼았다기보다는 별다른 고민 없이 작품의 소재 중 하나로만 활용했고, 전시를 보면서 불쾌감을 느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5월 국내 프로축구 K리그1의 FC서울이 관중석에 마네킹 중 일부를 리얼돌로 배치한 사건을 떠올렸다며 "리얼돌 자체가 여성 혐오적이고,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논란이 됐는데 그것을 예술로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놀랍다"고 지적했다.
FC서울은 당시 무관중으로 진행된 광주FC와 홈경기에서 관중석 일부를 메우겠다며 설치한 마네킹이 나중에 리얼돌로 드러나면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FC서울은 리얼돌 설치에 고의성은 없었다고 했지만 부주의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상벌위원회를 통해 제재금으로서는 역대 최고액 수준인 1억원 징계를 내렸다. 연맹은 징계 이유에 대해 "리얼돌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고, 성상품화의 매개체가 되고 있으며, 여성을 도구화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해한다는 등 많은 비판과 국민적 우려가 있었다"고 밝혔다.
정윤석 작가 "여성 상품화의 부조리를 충분히 언급"
해당 작품에 '민감한 소재를 왜 사용했느냐'는 질문은 전시 개막 전인 3일 진행된 기자 설명회에서도 나왔다. 정 작가는 당시 "여성을 상품화하는 시스템이 왜 존재하는지, 왜 시스템을 알면서도 그런 소재들을 선택해서 사는지 인간적인 내면을 들여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시스템의 부조리는 영화에서도 충분히 언급하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는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시스템에서 여성들이 불합리한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과 함께, 그런 것(리얼돌)을 소비하는 남성들이 어떤 식으로 여성을 대체화해서 소비하고 있는지 환경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지 (리얼돌 산업 자체에 대한) 특정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온라인에서 항의가 이어지자 8일 직접 운영 중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계정에 "정윤석 작가의 해당 작품은 '돈으로 인간 대용의 인형을 사고 파는 당면 사회적 이슈'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 작업"이라면서 "예술 작품에 대한 관람객들의 비판과 논의는 충분히 가능하며,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같은 시대 미술에서는 불가피한 면도 있다"고 해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로 적절한가 두고 논란 계속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는 리얼돌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는 방식이 리얼돌을 비판할 수 있게끔 묘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감상 의견이 이어졌다.
2시간 반 분량의 영상 내에서 리얼돌 산업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있다 하더라도, 전시장에서 이를 끝까지 보기는 어렵고 외려 거대한 리얼돌 사진 등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상황이 문제라는 것이다.
반면 리얼돌을 소재로 사용한 것만으로 이를 여성 혐오로 보기는 힘들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전시된 리얼돌 사진은 리얼돌을 그로테스크한 대상에 가깝게 표현했다"며 작품의 의도를 존중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당 새로운미디어위원회는 9일 논평을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성 착취를 정당화하는 리얼돌 관련 이미지를 전시한 것이 공공기관으로서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라며 "정윤석 씨의 올해의 작가상 후보 자격을 박탈하고 즉각 전시물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10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양한 반응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하며, 이것이 동시대 예술이 사회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술관도 현재 성명서와 온라인의 다양한 비판과 의견들을 계속 경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시 철회 등은 어려울 듯
전시 중단이나 후보 철회 등의 요구는 당장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올해의 작가상'은 외부에서 초청한 심사위원들이 작가와 작품을 선정한다"며 "미술관 차원에서 별도 조치를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은 매년 미술계 안팎의 추천을 받아 10여명 중 4명을 뽑은 뒤, 이들에게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 기회를 준다. 이어 이들의 전시가 마무리되기 전 4명 가운데 1명을 '올해의 작가'로 뽑는다.
심사는 당연직인 국립현대미술관장 외에 국내외에서 4명의 전문가를 외부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진행된다. 2020년 심사의 경우 윤범모 관장과 이영철 계원예술대 교수, 패트릭 플로레스 2019 싱가포르비엔날레 예술감독, 크리스토퍼 류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 로리타 자브론스키엔 리투아니아 국립미술관 수석 큐레이터가 심사를 맡았다.
'올해의 작가상' 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내년 4월까지 진행되지만, 서울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18일까지 잠정 휴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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