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거대 여당과 선진화법이 만나 '무적의 입법 독주' 됐다
알림

거대 여당과 선진화법이 만나 '무적의 입법 독주' 됐다

입력
2020.12.10 04:30
수정
2020.12.10 08:27
1면
0 0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개정안은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훼손을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뉴스1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개정안은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훼손을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뉴스1


거대 여당과 국회선진화법(선진화법)이 만나 '무적'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강행 처리 과정에서 선진화법을 살뜰히 활용했다. 선진화법은 국회 폭력을 금지하고 특정 정당의 정략적 입법 저지를 제한해 국회 생산성을 끌어올리자는 취지로 2012년 제정됐다. '민주 원칙을 존중하는 한, 입법은 진행돼야 한다'는 게 선진화법의 정신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민주 원칙'엔 대체로 눈 감고 '입법 진행'만 앞세운다는 것이다. 법안 기습 처리·강행 처리·꼼수 처리를 해 놓고 "법이 그렇다"고 발을 뺀다. 민주당은 의석 수와 법을 앞세워 국회에서 독주를 계속할 태세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일 “개혁에는 고통이 따르고 저항도 있다. 그런 어려움을 이기며 역사를 진전시켜야 한다”며 비판을 반(反)민주 논란을 불가피한 진통으로 치부했다.


①'날치기' 횡포 막는 안건조정위 무력화

국회법은 여야 이견이 큰 쟁점 법안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여당 3명+야당 3명)를 90일까지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간을 두고 '말'과 '정치력'으로 끝까지 조정하고 타협해 보라는 취지로, 선진화법에 따라 도입됐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여당이 다수로 날치기하는 것을 막기 위한, 말 그대로 국회선진화법”이라고 극찬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8일 오후 상법 일부 개정법률안 등을 처리하기 위해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장으로 들어가는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박주민 의원을 향해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오대근 기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8일 오후 상법 일부 개정법률안 등을 처리하기 위해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장으로 들어가는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박주민 의원을 향해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오대근 기자


국민의힘은 공수처법과 경제3법(공정거래법ㆍ상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을 강행 처리하는 민주당에 맞서 안건조정위 카드를 꺼냈지만, 민주당은 철저히 ‘패싱’했다. 공수처법 조정안을 마련하기 위한 8일 법사위 안건조정위는 70여분만에 종료됐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 기한’ 안건을 논의하다 불쑥 “토론을 종결하겠다”며 민주당안을 의결했다.

안건조정위 야당 의원 중 한 명이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었던 만큼, 의결정족수(4명)를 '합법적'으로 채우긴 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국민의힘과 협의할 생각이 없었다는 속내를 들켰다. 최 의원을 안건조정위원으로 지정한 건 민주당이었다.


②소수당은 대놓고 기만

재벌개혁 ‘패키지’인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논의하기 위한 8일 정무위원회 안건조정위에서는 노골적인 기만 행각이 벌어졌다. 당시 민주당은 ‘오전 9시 30분 안건조정위 개최→오후 2시 정무위 전체회의’ 수순을 밟을 계획이었다. 안건조정위 의결은 6명 중 4명이 찬성하면 가능한데, 민주당 의원 3명에 범여권인 배진교 정의당 의원을 합하면 속도전이 가능했다.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태일 3법국회 대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11.10/뉴스1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태일 3법국회 대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11.10/뉴스1


배 의원이 공정거래법상 전속고발권에 대한 ‘현미경 심사’에 나서며 꼬이기 시작했다. 정부ㆍ여당은 담합에 한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다 재계 반발을 고려해 전속고발권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배 의원은 “재계 눈치를 본다”며 반대했다. 배 의원의 '찬성표'가 필요했던 민주당은 ‘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만 폐지하자’고 제안했고, 결국 안건조정위를 통과했다.

약 3시간 후 열린 정무위 전체회의에는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내용의 수정안이 상정됐고, 민주당 주도로 의결됐다. 안건조정위 의결 법안을 곧바로 수정해 전체회의에서 넘기는 것 역시 합법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작정하고 배 의원의 '뒤통수'를 친 셈이 됐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정의당까지 사기를 당했다”고 꼬집었다.


③집권 여당이 '꼼수'도 불사

민주당은 속 보이는 ‘꼼수’도 동원했다. 8일 공수처법 개정안이 법사위 안건조정위를 통과한 건 오전 10시 30분. 민주당은 오전 11시로 예정된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낙태죄 공청회를 진행하겠다”며 야당의 시선을 돌렸다. 공청회 동안 시간을 버는 듯 했던 국민의힘은 그러나 일격을 당했다. 민주당이 기습적으로 전체회의에 공수처법을 상정, 단독 처리한 것이다. 여성과 태아의 인권과 건강권이 걸린 낙태죄마저 정치에 이용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키려하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독재로 흥한 자 독재로 망한다 구호를 외치며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키려하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독재로 흥한 자 독재로 망한다 구호를 외치며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④입법 절차는 줄줄이 ‘패싱’

속도전을 위해 입법 절차도 줄줄이 생략했다. 법안의 전부 개정안 또는 제정안이 상임위에 상정되면 '대체토론→공청회→소위원회 심사→축조심사(법 조항 하나씩 낭독하며 심사)→찬반토론'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10여개의 쟁점 법안을 처리하며 이 같은 절차를 생략하거나, 요식 행위로 처리했다.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지난 7일에야 공청회를 개최했다. 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전문가 2명이 참석해 30분간 법안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고 끝났다. '졸속' 공청회 이후 절차는 전부 건너뛰었다. 지난 7월 말 ‘임대차 3법’도 이 같은 방식으로 강행 처리됐고, 이후 전셋값 폭등이라는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9일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등을 위해 본회의에 참석하는 여당 의원들을 향해 공수처법 저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오대근 기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9일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등을 위해 본회의에 참석하는 여당 의원들을 향해 공수처법 저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오대근 기자


9일 경제 3법 등 법안 127개 처리

한편 9일 여야는 국회 본회의에서 '경제3법' 등 127개 법안을 처리했다. 본회의 직전 박병석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의 결정에 따라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하지 않은 법안부터 의결했다. 국민의힘은 공수처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야당의 총력전에도 공수처법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은 이르면 10일부터 순차적으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열린민주당 등 범여권을 규합하면 필리버스터 중단에 필요한 180석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지속할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박준석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