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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골매와 독수리가 농약에 중독되지 않는 날이 빨리 오길..."

입력
2020.12.12 05: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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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맹금류 재활치료사' 박상현씨
수의사들이 먼저 인정한 실력자로 꼽혀

지난달 24일 경기 김포시 한국조류보조협회 김포시지회의 맹금사 안에서 박상현씨가 농약 중독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독수리들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동그람이 이승재

지난달 24일 경기 김포시 한국조류보조협회 김포시지회의 맹금사 안에서 박상현씨가 농약 중독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독수리들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동그람이 이승재


지난달 24일 오후 경기 김포시 한국조류보호협회 김포시지회 사무실 앞. 세계적으로 개체수가 4,000여 마리에 불과한 저어새 무리가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희귀 철새들이 자주 모인다는 소문을 듣고 온 이들은 연신 사진 찍기에 바빴다. 하지만 박상현(42)씨는 사무실 한 켠에 마련된 맹금사(사나운 새를 가두어 기르는 우리) 안 독수리 3마리에게만 눈길을 줬다. 부상을 당한 채 재활을 기다리는 독수리들 중 한 마리는 아예 윗부리가 잘려 나가 먹이활동이 어려울 정도였다. 독수리의 평균 수명이 40년 가량인 걸 감안하면 서너 살 정도인 어린 독수리들이 홀로 감내하기 힘든 일을 겪은 셈이다.

“유해조수를 잡겠다며 모이에 농약을 적셔 놓는 경우들이 더러 있어요. 그럼 새들이 그걸 먹고 탈이 나죠. 그런데 이런 새들을 최상위 포식자인 독수리가 또 먹는 거예요. 농약성분이 더 농축된 걸 말이죠. 그렇게 중독이 됩니다. 아마 저 친구도 중독된 상태에서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다 교통사고 같은 물리적인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이 독수리는 치의학 전문가들과 보철물을 제작해 우선 먹이활동부터 원활하게 한 뒤에 야생성을 되살려 내년 봄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볼 겁니다.”


맹금류 재활치료사라 불러주세요

박상현씨가 치료 중인 독수리와 눈빛을 나누고 있다. 맹금류 재활의 핵심은 신뢰다. 박상현씨 제공

박상현씨가 치료 중인 독수리와 눈빛을 나누고 있다. 맹금류 재활의 핵심은 신뢰다. 박상현씨 제공


사람들은 박씨를 국내 유일 ‘맹금류 재활치료사’라 부른다. 크게 다친 송골매를 재활해주는 모습이 몇 년 전부터 동물을 주제로 하는 지상파 프로그램의 전파를 타면서 유명세를 탔다. 여기에 탄탄한 근육질 몸과 미스코리아 출신 아내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그가 중학생이던 1992년부터 13년간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인 2005년만 해도 국내에 설 자리가 없었다. 수의사도, 사육사도, 조류전공자도,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도 아닌 일반인이 맹금류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다.

“국내에서 일반인은 맹금류를 가까이 볼 기회조차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전국 야생동물보호소를 돌며 사육장 청소라도 시켜달라 기웃거렸죠. 처음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지만 청소를 곧잘 하니 사료까지 주게 됐고, 지금은 수의사나 사육사와 재활 분야를 함께 고민할 수 있을 정도가 됐네요.”

사실 그는 매 전문가다. 영국 유학 중 매사냥을 전문으로 배우고, 중도포기 했지만 조류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국제 매사냥 및 먹이조류 보존협회(IAF) 회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국제 매사냥대회 한국대표로 출전한 경력도 있다. 사육장 청소도 유학 시절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지겹도록 했던 일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자란 서울토박이 어린 시절부터 그는 이상하리만큼 비싼 로봇장난감보다 맹금류가 좋았단다. 국내 유명 조류박사의 연구실에 무작정 전화해 만나달라 떼쓰고, 동물원 맹금사 앞에서 시간을 보내던 아이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커져가는 그의 열정만큼 당시 국내 맹금류 정보는 그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맹금류에 대한 아들의 관심을 잠시 어릴 적 호기심으로 여기던 부모님도 점차 그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992년 매사냥으로 유명한 영국 켄트지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며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결국 귀국 후부터 지금까지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시간만 나면 맹금류 재활치료 일을 보기 바쁘다. “이런 짝사랑이 또 있을까요? 맹금류들이 본능적으로 저를 좋아할 리는 없는 걸 알면서도, 저만 한평생 이리 따라다니니 말입니다.”

현재 그는 도움이 필요한 맹금류가 있다면 국내 야생동물 구조센터 20여 곳을 비롯해 어디든 나선다. 맹금류 재활치료사 호칭은 수의사들과 함께 맹금류를 구조하고 치료·방사하는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마땅히 그를 부를 말을 찾던 수의사들로부터 얻었다. 그는 수의학적 처치를 받고 몸이 회복단계에 들어간 맹금류 개체들 가운데 야생성이 살아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재활치료를 진행한다.

맹금류는 어지간한 골절도 2주면 회복할 만큼 신체 회복 속도는 빠른 편이다. 하지만, 반대로 야생성은 2주만 먹이활동을 못해도 급격히 줄어든다. 그래서 야생성을 살려주는 건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만큼 재활프로그램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이어야 한다. “사람이야 다쳤다가 퇴원하면 요양하고, 휴식도 취할 수 있지만, 맹금류는 자연에 돌아가는 순간부터 먹이와 영역 경쟁을 해야 하기에 재활치료는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예요. 재활치료 후 야생으로 돌아가는 맹금류는 ‘치료 후 바로 시합에 나가야 하는 운동선수’ 같은 운명입니다.”


지난 2014년 교통사고 이후 무려 1년 6개월간 재활치료를 받아 야생으로 돌아간 송골매 '나래'의 훈련 모습. SBS TV동물농장 방송 캡처

지난 2014년 교통사고 이후 무려 1년 6개월간 재활치료를 받아 야생으로 돌아간 송골매 '나래'의 훈련 모습. SBS TV동물농장 방송 캡처


2014년 경기 화성시에서 농약중독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송골매 '나래'를 치료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교통사고로 부리와 갈비뼈, 다리가 부러졌고, 농약 중독으로 시력저하와 혈변 증상까지 보이며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나래는 한 달 넘게 수의사들의 치료를 버틴 후 다시 1년간 그와 재활을 함께하고 제주도에 방사됐다. 그는 재활 동안 나래의 몸통에 소형캠을 달아 비행상태를 점검하고, 시속 100㎞가 넘는 소형 무인 동력기에 먹이를 매단 채 날려보내 고속비행에도 먹이를 낚아채도록 하는 등의 맞춤형 훈련을 진행했다.

그러나 가장 집중한 부분은 재활 중 나래와의 적당한 거리 두기였다. 이는 모든 맹금류의 재활치료에 해당한다. 처음 재활을 위해서는 맹금류 몸에 손을 댈 수 있도록 먹이를 주며 서로 교감을 쌓을 필요가 있지만, 교감이 과하면 야생복귀에 방해가 될 뿐이다. 그는 나래의 경우 방송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필요해 이름을 지었지만, 평소 재활을 하는 다른 맹금류에는 이름 조차 짓지 않는다고 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관건입니다. 심지어 어린 새끼들을 재활할 땐 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커질까봐 직접 먹이를 주지 않고 어미새 모형을 이용할 정도예요."


박상현 씨가 태어난 직후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송골매를 보살피고 있다. 어린 새끼의 경우 돌봐주는 사람을 어미로 착각하게 해서는 안된다. 박상현 씨 제공

박상현 씨가 태어난 직후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송골매를 보살피고 있다. 어린 새끼의 경우 돌봐주는 사람을 어미로 착각하게 해서는 안된다. 박상현 씨 제공


그는 맹금류와 교감하고 이해하려는 모습을 넘어 그들이 사는 환경 개선에도 힘쓰고 싶다고 했다. 재활을 제대로 마치고 자연으로 돌아가도 생태계가 엉망이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이유다. 아시아 대륙 끝에 위치해 많은 철새들의 쉼터가 되고, 고유 종도 많지만 빠른 도시화로 맹금류를 비롯한 많은 새들이 생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상황에는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도시화를 막을 수 없다면 그 조건에서 맹금류의 이동시기, 장소 등을 고려해 체계화된 연구와 모니터링을 진행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실천’을 강조한다. 국내 맹금류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문제의식만 갖기보다는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맹금류들이 농약 중독과 교통사고에서만 벗어나도 현재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에 놓일 수 있다.

“맹금류를 포함해 우리 주변 동물들을 보호하는 것을 너무 먼 얘기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연, 생태계는 주인이 없잖아요. 이 말은 반대로 보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소리거든요. 소유의식이 아니라 공존의 개념으로 작은 활동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그들과의 공존을 위한 노력은 내가 아닌 전문가나 활동가들이 하겠지'라고만 생각한다면 누구도 전문가, 활동가가 되지 않을 겁니다.”


이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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