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태백시 매봉산 정상에 있는 바람의 언덕. 여름이면 고랭지 배추밭과 풍력발전기가 만들어내는 이국적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겨울 초입인 지금은 붉은 황토만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풍경이 대조를 이룬다. 이맘때 이 곳을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서리꽃을 보기 위해서이다.
지난 주말 서리꽃을 기대하며 찾았지만 역시나 허탕이었다. 대신 나를 반기는 건 허허벌판 가운데 만고풍상(萬古風霜)을 겪은 듯 위태로운 모습으로 서 있는 나무들이었다. 갑자기 내려간 영하의 날씨에 세찬 바람까지 불어 사람이 잠시도 서 있지도 못할 그곳에 꿋꿋이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 처음엔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런 나무들을 자세히 보니 하나같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반면 바람을 직접 맞닥뜨린 쪽은 나뭇가지가 거의 없었다. 바람에 순응한 다른 쪽 가지는 여느 나무들과 같이 풍성해 바람이 거센 지역에서 나무가 생존하는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바람을 거슬리면 아무리 강하고 무성한 나뭇가지도 금방 사라지듯, 민의를 거슬리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순리를 깨우쳐 주는 듯 했다. 손자병법에 “전쟁에 아무리 승리한다 해도 민심을 잃으면 전쟁에 진 것 같다”라고 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바람을 견디는 나무를 떠올린 건 혼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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