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징계위, 대통령 "정당성" 강조 무색
해임 결정 날 경우 누가 납득하겠나
역풍과 민심 이반… 이기고도 지는 길
애초에 많은 사람이 추측한 대로라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윤 총장 해임을 의결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윤 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모두 물러나게 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을 법하다. 내년 초 새 장관과 새 총장을 임명하고 4월이 되면 유권자들은 추·윤을 까마득히 잊었을 수도 있다. 지금 국민의힘의 우왕좌왕과 ‘막말 스타 배현진’의 탄생을 보노라면 민주당이 다시 서울 시장을 가져오지 말란 법도 없다. 검사가 육탄전을 벌이고, 감찰 주체가 수사 대상이 되고, 수사로 사건의 실체가 뒤집어지는 온갖 활극을 다 본 터라 이제 그만 끝내 주기를 고대하는 심정도 없지 않다.
하지만 10일 시작된 징계위는 추·윤 갈등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 될 것 같다. 검찰총장을 징계위에 회부한 초유의 사건을 이렇게 절차도 원칙도 없이 처리한 데 대한 역풍의 시작이다. ‘우리 편이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고 믿는 이들 외에 누가 징계 결과를 납득할 것인가.
조국 사태부터 추·윤 갈등까지, 있어서는 안 되는 법무부·검찰 갈등이 지속되면서도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검찰 개혁의 명분 때문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도덕적 흠결과 위선적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지만, 윤 총장의 과잉 수사 또한 지나친 것이었다. 추 장관의 인사가 정권 관련 사건 수사팀을 좌천시켜 문제가 됐지만, 윤 총장의 특수부 중심주의 역시 바람직하지 않았다. 전국법관회의에서 아무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판사 사찰이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팽팽하던 기류가 바뀐 것은 추 장관이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며 윤 총장 직무 정지와 징계 청구를 밀어붙인 결과다. 검사들이 집단 반발하고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폭락했다. 중도층 민심이 떠났고 콘크리트 지지층의 균열도 엿보인다. 누구 편에 서 있고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지켜야 할 절차가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민심을 잡을 최선의 방법은 징계위가 편견 없이 엄정하게 살펴 결론을 내렸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10일 개최된 징계위는 이미 중립성 논란에 휩싸였다. 윤 총장 측의 징계위원 4명에 대한 기피신청을 기각하고,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은 자진 회피해 징계위원이 4명만 남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다. 문 대통령이 며칠 전 “징계위의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은 괜한 명분 쌓기였던 걸까.
징계위에서 윤 총장 해임 결정이 난다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해서 검찰총장을 찍어냈다’는 의심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못 박힐 것이다. 골수 지지층을 제외한 다수의 민심 이반은 돌이키기 어렵다. 법적 분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도 떠안아야 한다. 그 사이 윤 총장이 지지율 20%대의 강력한 대선 주자로 부상해 어떤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지도 알 수 없다. 물론 징계위가 혐의 없음이나 경징계로 결론 낼 경우 기세등등해진 윤 총장의 칼을 더 이상 제어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여권에는 훨씬 더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얻은 승리는 결코 검찰 개혁이나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차라리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듯이 검찰총장에게 불신의 뜻을 표해 물러나도록 하는 정면돌파를 시도했어야 했다.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하도록 검찰을 놔두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당장은 지더라도 결국 이기는 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징계위 뒤에서 집행자 역할에만 머물러 있는 문 대통령은 이제 이겨도 지는 길을 걷게 됐다. 모든 가치를 저버리고 승리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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