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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을 알프스로 만들자고?...헛걸음 친 '한걸음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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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을 알프스로 만들자고?...헛걸음 친 '한걸음 모델'

입력
2020.12.12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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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일대에 산악열차와 케이블카 설치 프로젝트
기재부가 '한걸음 모델'로 중재 나섰지만
합의된 결론 도출 실패... 애초 중재 왜 나섰나 비판

산악관광열차. 하동군 제공

산악관광열차. 하동군 제공


"이해관계 충돌이 있는 신산업에 대한 '한걸음 모델'을 구축해 상생형 해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도록 하겠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지난해 12월 19일)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향후 원점에서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충실히 수렴하고 갈등을 해결할 것을 권고했다."(기재부, 올해 12월 11일)

정부가 한걸음 모델 상생조정기구를 약 5개월간 가동한 끝에 '충실히 해결하라'는 다소 맥빠진 결론을 내놨다.

한걸음 모델이란 '타다 사태'처럼 신사업 출현에 따라 사회 갈등이 발생할 경우 정부가 이를 중재해 상생안을 마련하는 모델이다. 하지만 홍 부총리 약속과 달리 추후 논의 과제만 잔뜩 남겨, 정부가 애초 이 문제를 무리하게 한걸음 모델 협상 테이블에 올려놨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하동군 "지리산에 산악열차 깐다" vs 환경단체 "반대"

정부는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에 한걸음 모델을 적용해 도출한 최종 논의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란 민간자본과 지방비 총 1,650억원을 투입해 스위스 알프스산맥처럼 지리산 관광을 키우겠다는 하동군의 지역 사업이다. 지리산 형제봉 일대에 △배터리 충전식 전기열차 △케이블카 △모노레일을 설치하고 숙박시설 등을 조성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정부가 개발 추진을 검토 중인 지리산 형제봉 일대에 멸종위기종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는 게 뒤늦게 확인됐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 제공

정부가 개발 추진을 검토 중인 지리산 형제봉 일대에 멸종위기종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는 게 뒤늦게 확인됐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 제공


해당 프로젝트는 지역관광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지리산 일대가 반달가슴곰의 서식처라는 점에서 환경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정부는 이 때문에 올해 한걸음 모델 우선 적용 과제로 산림관광을 선정해 지방자치단체, 환경단체, 지역 주민, 전문가, 관계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상생조정기구를 마련했다. 해당 기구는 지난 6월부터 지난달까지 7차례 전체 회의를, 30회 가까이 소규모 회의를 열었다.


5개월 논의 끝에 정부 "현행 법 내에서, 하동군이 갈등 해결"


수십차례 회의에도 결국 '상생형 해법'은 도출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날 △현행 법령 내로 하동군의 사업계획 축소·변경할 것 △경제적 타당성 및 환경 영향을 공인된 기관을 통해 평가할 것 △하동군이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갈등을 해결할 것 등을 논의 결과로 내놨다. 애초 하동군 계획대로 산 정상부에 호텔을 지으려면 산지관리법 등 관련 법안 개정이 필요했는데, 이를 무른 것이다. 그밖에 결론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제시하기만 한 수준이었다.

구체적인 상생안이 도출되지 못한 것은 환경 영향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원회 등 환경단체는 "대규모 산림파괴와 멸종위기종 반달가슴곰 서식지 파괴, 보전산림 개발 등이 필연적"이라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냈다. 실제 프로젝트가 실시된다면 철도 등이 설치돼야 하는 지역에는 반달가슴곰이 최근 4년간 매년 4, 5마리씩 출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원회. 한국환경회의 관계자들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반달곰이 사는 지리산 개발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리산산악열처반대대책위원회 제공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원회. 한국환경회의 관계자들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반달곰이 사는 지리산 개발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리산산악열처반대대책위원회 제공


반면 개발 찬성 측은 산림관광이 반달가슴곰의 서식지를 파괴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산림열차가 설치되는 경로가 기존에도 차량이 다니는 도로이기 때문이다. 상생조정기구에 참석한 관계자는 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제외하고 전기열차의 기술성 등에선 양측의 큰 이견이 없었다"면서 "경제성의 경우 하동군 자체 평가 결과 비용 편익(B/C) 값이 1 이상(경제성 있음)이었지만 환경단체에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규제도 없는데 기재부 헛걸음? "개정 않기로 한 것이 성과"

애초 산림관광이 한걸음 모델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신사업 대 구산업'의 이해 당사자 간 갈등을 중재하겠다는 기본 취지와 다르게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는 '개발 대 환경' 갈등 양상이기 때문이다. '타다 사태'보다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논란과 더 닮았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법 개정을 하지 않기로 한 논의 결과를 두고 "개선할 규제가 없는데도 회의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산림관광은 2019년부터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됐던 주요 과제"라며 "사업에 투입되는 배터리 충전식 전기열차가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세계 최초 개발한 기술이기 때문에 신사업 요건이 충족된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법 개정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하동군이 상생조정기구를 통해 한걸음 양보한 덕분으로, '혁파할 규제가 없었다'는 지적은 맞지 않는다"면서 "사업 '절대 불가' 입장이었던 환경단체가 영향성 평가를 받아보는 데 동의했다는 점도 이번 한걸음 모델의 성과"라고 자평했다.

경기지역 빈집 모습. 경기도 제공

경기지역 빈집 모습. 경기도 제공



농촌 빈집숙박은 상생안 도출 성공... 도심 내국인 공유숙박은?

그러나 하동군과 환경단체 간 논의과정이 고스란히 남았다는 점에서 1년여간 회의를 왜 진행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한걸음 모델 성과를 내기 위해 정부가 무리하게 중재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와 반대로 정부가 지난 9월 발표했던 '농촌 빈집숙박 사업' 한걸음 모델 상생조정기구의 경우, 이해 관계자 양측이 만족하는 결론이 구체적으로 나왔다. 전국 5개 기초자치단체에서 50채 규모로 농촌 빈집숙박 사업을 시범 운영하기로 하는 동시에 △영업일 수 제한 △정부의 농어촌민박 지원 △마을 기금 적립 등 상생방안도 마련됐기 때문이다. 올해 마지막 한걸음 모델 과제인 도심 내국인 공유숙박은 이달 안에 결론이 나온다.

한편 하동군은 이날 "숙박 인프라 개선, 관광객 편의 증진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 도입 등 지속 가능한 체류형 산림관광 모델 구축을 위해 힘쓸 예정"이라며 "지역 주민의 소득 증대 및 일자리 창출 등 사업의 이익이 지역 사회로 환원될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종= 손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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