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유행 직장맘 돌봄 절벽 직면?
돌봄? 떠맡은 여성들은 경력 단절 위기?
‘돌봄 사회화’ 가속으로 해법 찾아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긴급보육 사유서를 내셔야 합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난 8일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엊그제 둘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공문을 보내왔다. 다음 주부터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려면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맞벌이라서 긴급보육은 가능하지만 가정보육을 종용하는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우리집은 비교적 용이하게 연차를 쓸 수 있는 아내와 내가 돌려막기식으로 아이를 돌봐줄 수도 있고, 급하면 처가의 손도 빌릴 수 있어 돌봄 절벽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지는 않았다. 운이 좋은 경우다.
하지만 재택근무나 가족 돌봄휴가 같은 제도를 쓸 여건이 안되는 직장에 다니고 노부모의 손을 빌릴 수도 없는 맞벌이 부부라면 코로나 장기화 사태는 절망 그 자체다. 그 절망감 대부분을 엄마들 홀로 감당한다는 점이 뼈아프다. 실제로 요즘 온라인 육아 카페에는 돌봄 절벽의 고충을 털어놓는 직장맘들의 사연이 꾸준히 올라온다. ‘어린이집 휴원으로 가정보육 중인데 곧 복직이다. 복직 후 단축 근무가 안되면 아이 맡길 곳이 없어 퇴사해야 한다’ ‘올해 중반에 연차도 다 쓰고 2.5단계가 되니 걱정돼 가정보육을 하고 싶은데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다’ ‘학원은 집합 금지인데 일은 쉴 수가 없고 초등학생 아이를 집에 하루 종일 혼자 둘 수도 없다’ 같은 사연들에선 고립무원 처지에 놓인 직장맘들의 막막함이 느껴진다.
코로나 사태가 환기시켜 준 분명한 사실은 재난이 계급적으로 불평등하게 닥친다는 점이다. ‘계급’의 자리를 남녀로 바꾸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평소에 남성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으며 더 불안정하게 일하고 있는 여성들이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통계는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봄부터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더 큰 폭으로 일자리를 잃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 1, 2월 여성들의 전년 대비 고용률은 남성보다 높았으나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된 4월에 역전된 뒤 지난 10월까지 한 번도 남성을 앞서지 못했다.
여성들이 재난으로 일자리 위기에 직면한다는 건 표피적 문제다. 코로나 사태 후 가중되는 육아ㆍ가사 부담으로 여성들이 일자리 찾기를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일할 능력은 있지만 취업을 안 하고 있는 비경제활동 인구는 남녀 모두 3월부터 증가했지만 증가의 폭도, 원인도 남녀가 다르다. 가령 4월에는 '육아ㆍ가사'의 사유로 비경제활동 인구가 된 여성들이 전년보다 27만3,000명이나 증가했는데 같은 이유로 비경제활동 인구로 집계된 남성은 6,000명에 불과했다.
반면 비경제활동 인구가 된 남성들의 사유는 그냥 ‘쉬었음’이 압도적으로 많다. 코로나 사태로 고용 한파가 닥치자 남성들은 유급노동자에서 ‘그냥 쉬는’ 실직자가 됐지만 여성들은 유급 노동자에서 무급(육아ㆍ가사) 노동자로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들어 연령대별 여성 고용률 패턴이 ‘M자 곡선(출산ㆍ육아기인 30대에 여성들의 고용률이 감소하는 형태)’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고 분석한다. ‘코로나 경단녀’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얘기다.
출산전후휴가,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우리나라에서도 출산ㆍ육아ㆍ보육을 위한 제도들은 이제 완성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는 농반진반 ‘외할머니 인프라’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돌봄시스템의 허와 실, 여성의 일 가정 양립을 가로막는 돌봄 불평등의 민낯을 보여 주고 있다. 돌봄의 사회화를 북돋우는 문화적ㆍ제도적인 개선 노력이 없으면 여성들의 돌봄 절벽 문제는 위기 때마다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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