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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선 환대, 국내에선 비주류... '이단아' 김기덕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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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선 환대, 국내에선 비주류... '이단아' 김기덕의 삶

입력
2020.12.11 22:37
수정
2020.12.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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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 표현에 국내 관객 불편... 여배우 미투 연루도


김기덕 감독이 2012년 9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덕 감독이 2012년 9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피에타’(2012)로 베니스영화제 최고상(황금사자상)을 수상했던 김기덕 감독이 라트비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0세.

11일 김 감독의 가족에 따르면 김 감독은 체류하고 있던 라트비아에서 이날 코로나19로 숨졌다. 김 감독은 지난달 20일 라트비아에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은 카자흐스탄과의 합작 영화 ‘디졸브’를 최근 완성한 후 차기작 작업을 위해 해외에 계속 머물러왔다.

김 감독과 친분이 있는 러시아 감독 비탈리 만스키와 라트비아 언론들에 따르면 김 감독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을 거쳐 라트비아에 도착했으며 라트비아 휴양도시 유르말라에 집을 사 영주권을 받을 목적으로 현지 체류 중이었다. 김 감독은 코로나19에 감염된 상태에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주라트비아대사관과 현지 병원을 통해 사망 관련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인에게는 이단아와 비주류라는 수식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2012년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베니스영화제에서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후에도 중심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대중은 깡패와 성매매 여성 등 주변부 인생의 삶을 날것으로 묘사하는 그의 영화에 불편해 했다. 주류와 섞이지 않는 작업 방식도 그를 국내에서 영원한 비주류로 남게 했다.

김기덕 감독의 데뷔작 '악어'. 한강변을 배경으로 밑바닥 인생을 그려 눈길을 끌었다.

김기덕 감독의 데뷔작 '악어'. 한강변을 배경으로 밑바닥 인생을 그려 눈길을 끌었다.


1960년 경북 봉화군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평탄치 않을 삶을 살았다. 원예와 축산을 배우는 전수학교에서 중학 과정을 마친 후 서울 청계천 기계공장에서 3, 4년간 일했다. 해병대 제대 후 프랑스 파리를 근거지로 유럽을 돌며 거리의 화가로 3년을 살았다. 할리우드 영화 ‘양들의 침묵’과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하고 귀국했다. 데뷔작이 된 ‘악어’(1996)의 시나리오가 공모전에 당선되며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고인은 유작 ‘디졸브’를 포함해 장편영화 26편을 만들었다. 1년에 평균 1편 이상을 연출할 정도로 다작이었다.

고인의 영화는 늘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직설적인 폭력 묘사, 여성 비하적인 장면과 대사 등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특히 여성 관객의 반감이 컸다. 한강변에서 익사자 시체를 건져 생계를 유지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데뷔작 ‘악어’부터 도발적인 내용으로 논란을 샀다. ‘파란 대문’은 여대생이 친구가 된 성매매 여성을 대신해 일을 한다는 장면을 담아 비판받았다. ‘나쁜 남자’는 한 불량배가 짝사랑한 여대생을 성매매 여성으로 전락시킨다는 내용으로 논란이 됐다.

고인의 영화는 해외 특히 유럽권에서는 환대 받았다. 회를 뜬 물고기가 헤엄쳐 가는 장면(‘섬’), 물 위에 지어진 사찰의 모습(‘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 강렬하고 도발적이면서도 토속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서구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다. 고인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이 유럽에서 크게 흥행한 후 해외 인지도가 높아졌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잇달아 수상하며 세계적 감독으로 떠올랐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NEW 제공

김기덕 감독은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NEW 제공


해외에선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됐지만, 국내 관객들에겐 여전히 비주류 감독이었다.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한국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던 전례와 달리 ‘사마리아’와 ‘빈집’에 대한 관객 반응은 싸늘했다. 실망한 김 감독은 2006년 ‘시간’의 개봉을 앞두고 “앞으로 한국에서는 내 영화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영화계에 파장을 불렀다. 충무로 주류와 대립하고, 대중과 불화하던 고인은 한때 칩거생활을 하다 2011년 주연을 겸한 ‘아리랑’으로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을 받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2012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영화 인생 정점에 올랐다. 한국 영화로서는 세계 3대 영화제(칸ㆍ베를린ㆍ베니스)에서 받은 첫 최고상이었다. 국내 감독 중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본상을 모두 받은 이는 고인이 유일하다.

고인은 ‘피에타’로 국민적 관심을 받았지만 잠시뿐이었다. ‘뫼비우스’(2013)와 ‘일대일’(2014) 등은 흥행과 거리가 멀었다. 국내보다 해외 자본으로 영화를 만드는 일이 잦아졌다. 함께 일했던 여배우가 2018년 미투 폭로를 한 후 국내 활동은 사실상 중단했다. 김 감독은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여배우와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최근 패소했다.

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한때 봉준호 감독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했던 고인이지만 한국 영화사에선 고립된 섬 같은 존재였다”며 “기존 서사기법을 무시한 도발적인 연출, 이미지의 물질성에 상당히 예민했던 감독”이라고 평가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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