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하던 30대 아들, 복지사가 발견
어머니 죽음 언급에 바로 자택 향해
아들 발달장애 추정… 경찰, 입건 고민
뒤늦게 장애인 등록·긴급 지원 잇따라
“우리 엄마가요. 휴대폰으로 글자 읽고 있다가요. ‘내 팔이 안 움직여’ 이러고 쓰러졌어요.” 발달장애가 있는 최모(36)씨가 옆으로 쓰러지는 시늉을 하며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요, 파리가 날아들고요, 애벌레가 생기고요, 제 방까지 애벌레가 들어왔어요.”
‘진짜일 수도 있겠다.’ 12월 3일, 서울 동작구의 한 식당에서 최씨와 마주앉아 있던 사회복지사 A(53)씨의 머릿속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경찰과 함께 달려간 최씨 집에는 정말로 최씨 어머니 김모(60)씨가 숨져 있었다. 동작구 이수역 근처에서 노숙하던 최씨에게 복지사가 손을 내민 지 한 달만이었다.
재건축을 앞둔 서초구 방배동의 다세대 주택에서 김씨가 지난 3일 숨진 채 발견됐다. 서래마을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동네다. 시신은 군데군데 뼈가 드러났을 정도로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다. 숨진 김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10년 넘게 이 집에서 아들 최씨와 거주해왔다. 경찰은 김씨가 사망한 지 최소 5개월은 흐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3일 한국일보 취재결과, 서울의 대표적 부촌인 서초구에서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 2019년 관악구 탈북 모자 사건과 유사한 취약계층 사망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모자의 비극 이면에는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사회적 약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될 때마다 정부와 지자체는 예방과 지원대책을 쏟아냈지만, 그 때뿐이었다. 이번에도 고독사한 어머니와 노숙자가 된 아들을 사회복지사가 우연히 발견할 때까지, 모자의 비극은 아무도 몰랐다.
엄마가 죽자 30대 발달장애 아들은 노숙자가 됐다
숨진 김씨의 시신은 발견 당시 얇고 해진 누비 이불로 덮여있었다. 청테이프로 이불 끝자락을 비닐 장판에 돌려 붙여 빈틈 없이 막아 놓은 상태였다.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엄마가 옆으로 누워 숨을 이상하게 쉬었어요. 추울까 봐 이불을 가슴까지 덮어줬어요”라며 사고가 있던 날을 기억해 냈다. “파리가 못 들어가게 엄마 머리까지 이불을 덮어줬어요”라고도 말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최씨는 김씨가 숨져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최씨는 경찰과 복지사에게 “울면서 엄마를 낫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했는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엄마가 숨을 안 쉬었어요”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지병으로 인한 변사’로 보고 있다. 타살된 흔적이 없고 김씨가 2005년 뇌출혈 수술을 한 기록이 남아 있어서다. 아들 최씨도 경찰에서 김씨가 쓰러지던 날 6, 7번 구토를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8년 11월부터 건강보험료를 못 낸 장기체납자로 병원을 쉽게 찾을 형편이 안 됐다.
최씨는 한동안 어머니 주검 곁을 지켰다. 빈집에 앉아 공책에 “우리 엄마는 몸 마비로 돌아가셨어요. 도와주세요”라고 적었지만, 읽어 줄 이가 없었다. 먹을 게 떨어지고, 전기마저 끊겨 TV도 안 나와서 더는 집에서 할 게 없었다.
집을 나온 최씨는 그 때부터 지하철역에서 잤다. 얼마나 노숙을 했는지는 명확치 않다. "가을쯤부터 집에 아예 들어가지 못했어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길을 떠돌던 최씨는 지난달 6일 서울 동작구 이수역 12번 출구 앞에서 구걸하다 복지사 A씨의 눈에 띄었다. A씨는 “씻은 지 오래된 모습에 손은 다 부르튼 상태였다”며 “공사장 인부들이 입는 상의에 구두를 신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가정불화 피해 서울로…빈곤과 고독 속에 스러져
김씨가 갑작스럽게 숨지기 전에도 모자는 빈곤과 소외가 일상이었다. 전북에서 살던 김씨는 남편과 불화를 겪다 이혼 후 1993년쯤 서울로 옮겨왔다. 발달장애가 있는 9세 아들은 두고 올 수가 없어서 데리고 왔다.
모자는 일정한 소득 없이 정부의 공공일자리 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10월 중 62일 동안 동네 모기방역 활동을 하는 ‘모기보안관’으로 일해 총 124만원을 벌었던 게 마지막으로 기록된 김씨의 소득이다. 김씨 가구는 주거 급여(중위소득 45% 이하)를 받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2018년 10월부터 매달 25만원 가량을 받았다.
경찰이 시신을 발견했을 당시 김씨 집 현관 안쪽 벽에는 빨간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전기 공급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이었다. 집(36.28㎡·11평)에는 틀이 비뚤어진 침대와 브라운관 TV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가구가 없었다. 집 벽면을 따라서 잘 정돈된 옷가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휴대폰 요금은 4월 이후 미납된 상태였다. 세상사에 어두웠던 아들 최씨는 “월세 왜 내요. 안 내면 왜 쫓겨나요. 전기세는 왜 내요. 전기는 왜 끊겨요”라고 물을 뿐이었다.
김씨는 외부 교류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웃 주민 홍모(62)씨는 “(김씨는) 내가 올라가면 나오려고 하다가도 문을 닫고 다시 들어갔다가 한참 후에 나왔다”며 “초여름부터는 아예 인기척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도 “이웃과 일절 말을 안 섞는 사람이고 산에 자주 다니던 사람인데 요즘은 통 못 봤다”고 전했다. 복지사 A씨는 “가정불화로 인한 트라우마 탓”이라고 추정했다.
김씨 모자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복지대상으로 관리돼야 할 대상이었지만 지역사회는 도움을 주기는커녕 수개월간 비극을 알아채지도 못했다. 서초구는 7월과 1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필요한 마스크를 나눠줬지만, 그마저도 택배로 배송돼 김씨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모자의 소식을 전해 들은 동네 주민 김모(76)씨는 잔뜩 화가 났다. 김씨는 “주민센터나 이런 데는 뭐하냐, 마스크만 보내지 말고 들여다봤어야 했다”며 “집 안에 움직임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것도 있던데 그런 걸 설치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좀더 신경 썼더라면” 이제야 장애인등록
아들 최씨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어머니 김씨의 주검은 어쩌면 지금까지도 방치돼 있었을지 모른다. 김씨의 시신은 9일 화장해 장지를 찾고 있다.
최씨는 사체유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발달장애가 있지만 장애인 등록이 안 돼 있어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전북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만 다녔던 최씨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글을 읽고 쓸 줄 알고, 숫자도 1부터 10까지 세고, 전화도 걸 수 있었지만 그뿐이다. 복지사 A씨는 “최씨는 ‘신고’나 ‘이웃’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사회생활은 힘들어, 사기 같은 범죄에 무방비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혐의를 벗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 이후가 더 문제다. 전북에 사는 아버지는 최씨를 보살필 경제적 형편이 안 된다. 우선은 복지사 A씨와 사건을 담당한 경찰이 최씨를 돌보고 있다. 경찰은 발달장애센터를 알아보고 있고, 복지사 A씨도 최씨의 장애인 등록과 자립 준비를 돕고 있다. 늦었지만 서초구와 동주민센터는 최씨의 장애 검사비와 장제급여를 지급하고, 최씨를 긴급복지 대상자로 선정해 6개월 동안 매달 생계비 45만여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복지사 A씨는 "최씨 모자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이런 비극이 발생하기 전에 뭔가 해줄 수 있었을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