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확 바꿔놓은 음악시장]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관광, 항공 업계 등이 줄도산 위기에 처했지만, 음반 시장은 오히려 올해 폭발 성장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악화로 CD판매량이 줄기는커녕, 9년 만에 처음으로 3,800만장을 돌파했다. 전년(약 2,500만장)보다 무려 1,300만장 증가한 수치로, 2010년대 들어 최고 성장세다.
코로나19 시대 음반 시장의 이례적 호황은 '보복소비' 영향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부분의 공연이 멈추고, 팬사인회 등이 취소되면서 팬들이 '소장'할 수 있는 음반 구매로 억눌렸던 '덕질'을 풀면서 음반시장이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공연 멈추고, 팬미팅 줄줄이 취소... CD로 몰린 '보복 소비'?
본보가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음콘협)에 의뢰해 1월 1일부터 12월 5일까지 음반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연간 누적 판매량은 3,858만장(상위 400위 기준)으로 조사됐다. 집계되지 않은 남은 4주 판매량을 고려하면 올해 4,000만장 돌파도 점쳐진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1,300만여 장에 이르는 가파른 증가폭이다. 2019년 CD판매량이 전년 대비 220만여 장이 는 것과 비교하면 올해 6배가 껑충 뛰어올랐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 1위를 차지한 앨범 '맵 오브 더 솔:7'과 '비' 등으로 860만여 장을, 세븐틴이 '헹가래' 등으로 250만여 장을 팔아치운 게 컸다.
올해 CD판매량이 급증한 배경으로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특수'를 꼽는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원은 "코로나19로 공연도 못 가고 팬덤 활동 제약이 많다 보니 음반 구매에 소비가 집중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학생인 딸과 함께 K팝을 즐기는 주부 한모(54)씨는 "요즘엔 데이식스를 가장 좋아한다"며 "전엔 딸과 함께 공연도 다니고 했는데 올해엔 한 번도 못 가 대신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NCT 등의 CD 6장을 샀다"며 웃었다.
집계 이후 최초 트로트 가수 50만장... 다양한 세대 '영끌'
'미스터 트롯' 출신 김호중이 올가을 낸 앨범 '우리가'는 50만 장이 넘게 팔렸다. 음콘협이 집계를 시작한 2011년 이후 트로트 가수의 앨범이 50만장 넘게 팔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K팝을 비롯해 트로트 유행 등으로 부쩍 커진 대중음악시장에서 다양한 세대가 모여 코로나19로 움츠러든 '나를 위한 소비' 욕망을 풀고 있는 셈이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에서도 드러나듯 한국 팬덤의 특징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 소비"라며 "한국 팬덤의 '영끌'이 코로나19에도 음반시장을 불타오르게 한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달궈진 음반 시장의 약진은 소장욕을 불러일으키는 화려한 앨범 구성이 땔감이 되고 있다. CD플레이어가 없는 박모(12)양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올해 CD를 샀다. 박양은 "CD로 음악을 듣지 않지만 방탄소년단 앨범을 갖고 싶어서 샀다"고 말했다. 박양이 산 '비' 앨범엔 책을 방불케 할 정도로 두꺼운 방탄소년단 일곱 멤버의 사진첩을 비롯해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수북이 담겨 있다. 코로나19로 팬 사인회 등이 모두 취소돼 CD를 사면 주어지는 팬 사인회 응모 기회도 잡을 수 없고, 음악을 CD로 듣지도 않는데도 올해 CD 구매 행렬이 이어진 배경이다.
더 커진 K팝 해외 팬덤... 미ㆍ일과 달리 수직 상승
밖에서 더욱 커진 K팝 수요는 한국 음반시장 폭발 성장에 기름을 부었다. SM과 YG엔터테인먼트 등에 따르면 NCT의 앨범 '레조넌스 파트1'은 미국 등 해외에서 40만장이, 블랙핑크의 '디 앨범'은 30만장이 넘게 팔려 올해 처음으로 '밀리언셀러'가 됐다. 지난해 단 1장에 불과했던 100만장 돌파 단일 앨범은 올해 6장으로 증가했다. 올 상반기(1~6월) 음반판매량이 미국에서 45%, 일본에서 33% 준 것과 달리 한국에서 수직상승할 수 있었던 이유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내년에도 코로나19로 당분간 대형 콘서트는 열기 어려울 것"이라며 "병역법 개정으로 방탄소년단의 입대가 미뤄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등 K팝에 악재가 없어 음반시장 활황은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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