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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코로나에 불황까지”... 주52시간 앞둔 중소기업 '불면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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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코로나에 불황까지”... 주52시간 앞둔 중소기업 '불면의 밤'

입력
2020.12.14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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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을 비롯한 중소기업계 인사들이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주요 현안에 대한 중소기업계 입장이 담긴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을 비롯한 중소기업계 인사들이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주요 현안에 대한 중소기업계 입장이 담긴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주52시간 근로제 취지에 공감한다. 나도 직원들도 사람답게 살려면 도입이 필요한 것도 알겠다. 하지만 올해 적자가 뻔하고, 내년에도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는데 주52시간제를 위해 고용을 더 늘리기 어렵다. 그렇다고 법을 어길 수도 없고, 손해 보며 사업할 수도 없어 매일 고민만 하다 보니 불면증까지 왔다.”

경기 용인시에서 자동차 부품업체 A사를 운영하는 김모(47) 대표는 내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되는 주52시간제를 설명하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 올해 코로나19 충격에 역대급 불황까지 겹치면서, 현장에선 김 대표처럼 이렇다 할 대책 없이 발만 동동 구르는 중소업체들이 허다하다.

이들은 이미 2년9개월을 유예한 주52시간제의 적용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불경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보완책을 마련해 줄것을 호소하고 있다.

"2년9개월 유예 끝, 내년 1월 시행"

13일 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많은 중소기업 사이에선 이런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19에 불황까지 겹치면서 있는 사람도 내보내야 할 만큼 어려운데, 주52시간제 도입하면 오히려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정부에서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문닫는 기업들 줄줄이 나올 겁니다.”

정부는 올해 말로 끝나는 중소기업(50~299인) 대상 주52시간 근로제의 계도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대상 기업은 고용보험 가입 기준으로 2만4,179곳(노동자 253만명)에 달한다.

내년부터 중소기업들은 주52시간제 위반이 적발되면 1차 시정기간 3개월에 2차 시정기간 1개월을 합해 최장 4개월이 부여된다. 이후에도 주52시간제가 지켜지지 않으면 사업주는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 2018년 3월 법 개정 이후 2년 9개월 간의 계도기간이 마침내 끝나고, 중소기업에도 ‘주52시간 시대’가 적용되는 것이다.

쏟아지는 우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이 많다.

현재 150여명이 근무하는 A사는 ‘3조 2교대’ 근무제로 24시간 공장을 돌리고 있다.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생산량이 20% 이상 감소했지만, 내년부터는 ‘4조 3교대’로 전환해야 한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는 인력을 20~30명 더 뽑아야 하지만, 올해 경영 상태가 악화되면서 추가 채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직원 이탈로 걱정이 많은 회사도 있다. 대구 섬유업체 B사의 신모(67) 대표는 최근 직원들의 ‘줄퇴사’로 근심이 깊다. 내년부터 주52시간제가 적용되면 실질 임금이 줄어들게 돼, 현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는 더 작은 업체로 이직하는 직원이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현재 급여는 야근, 특근 등 잔업수당과 기본급이 포함돼 있지만, 주52시간제를 도입하면 추가근무가 불가능해 임금이 30% 가량 줄 수 있다”며 “그렇다고 무턱대고 임금을 올려주게 되면 생산단가가 높아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숙련공이 회사를 떠나면 피해는 단순히 사람이 줄어든 것 이상”이라며 “새로 뽑은 사람의 기술이 숙련될 때까지 정부에서 급여 일부를 지원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기 안성시 전자부품 소재업체 C사를 운영하는 임모(62)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 추가 채용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C사는 전체 직원 80여명 중 90% 이상이 외국인 노동자다. 업무 대부분이 저임금 단순 작업이어서, 내국인을 채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제한되면서 지금도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내년에는 주52시간제 대응이 과연 가능할 지 의문”이라며 “외국인 노동자 취업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정부 "52시간 연착륙 최대한 돕겠다"

하지만 정부는 주52시간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당초 올해부터 적용할 예정이었지만 계도기간을 1년 연장시켜준 만큼, 충분한 준비기간을 줬다는 것이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 50~299인 중소기업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적용 기업 중 81%가 이미 주52시간제를 준수 중이었고, 91.1%는 내년에 준수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계도기간을 또 다시 연장하게 되면 법 집행 의지 자체를 의심받게 되고, 산업현장의 주52시간제 도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어 더욱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주52시간제 정착을 위해 중소기업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노동부는 준비가 덜 된 사업장에 대해 올 연말까지 교대제 개편과 유연근로제 활용을 포함한 전문가 컨설팅을 제공해 주52시간제 정착을 유도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예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은 현행 3개월에서 3개월 초과, 6개월 이내로 확대됐고, ‘선택근로제 정산기간’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어났다.

정부 관계자는 “내년에도 주52시간제 준비가 덜 된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동시간 단축 자율 개선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필요한 인력 알선과 재정 지원 등도 연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류종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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