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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주 교수 "대형병원 병상은 감염 온상 우려... 차라리 체육관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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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주 교수 "대형병원 병상은 감염 온상 우려... 차라리 체육관을 써라"

입력
2020.12.17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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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상황 대처에 대해 의견을 내놓고 있는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배우한 기자

코로나19 상황 대처에 대해 의견을 내놓고 있는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배우한 기자


"전쟁에 대비해서 무기를 비축하자고 하면 수십조원을 별말 없이 내주면서,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음압병상 같은 의료자원에 투자하자고 하면 왜들 그리 아까워 할까요."

지난 15일 서울 구로동 고대구로병원에서 만난 김우주 감염내과 교수의 반문이다. 괜한 질문이 아니다. 김 교수는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부터 시작해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감염병이 돌 때마다 정부의 범부처 사업단장, 민관합동공동위원장, 즉각대응팀장 등으로 활동했다.

김 교수는 그때마다 매번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신종플루를 혹독하게 겪고는 음압병상을 300개 만든다고 했어요. 그런데 6년 뒤 메르스 때 보니 110개 밖에 없더라고요. 그마저도 2인, 3인짜리가 있었어요. 음압병상은 1인1실이 원칙인데, 정말 한숨만 나오더군요." 음압병실은 기압 차이를 이용해 병실 내부의 공기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을 가진 병실로, 감염병 환자들을 위해 사용된다. 감염병이 없을 땐 쓸 일이 별로 많지 않아 유지비용만 든다. '돈 먹는 기계'로 전락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 음압병상 문제는 늘 도돌이표를 찍는다. 평소에 음압병상 확보 문제를 거론하면 '아직 큰 일도 없는데 왜 겁부터 주냐'고 타박하다, 막상 감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그때는 안하다 지금에 와서야 난리냐'고 또 타박한다. 그때그때 대책은 요란한데, 결국은 서로서로 책임을 미루는 일만 반복된다.

이건 꼭 비용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학병원은 물론, 지역 주민들도 음압병상을 꺼리는데, 그건 병원이나 동네 이미지 하락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해서다. 김 교수의 반문은 그래서 나온다. "최소 10년 주기로 감염병 유행이 들이닥치는 시대가 됐어요. 그런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감염병이 도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어떻게 대응할지가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를 위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인 만큼 발상의 전환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음압병상은 김 교수가 제시하는 상징적 사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에 맞춰 병상과 인력이 부족할까봐 덜덜 떠는 일은 그래서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인재'에 가깝다. 김 교수는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른다고 하면, 탱크나 미사일이 음압병실이고 상비군은 의료진"이라며 "이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다 이제야 병상이, 인력이 부족하네 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 사태는 그래서 더 아쉽다. 예전의 감염병이 그나마 단기간에, 일부에 국한된 사태였다면 코로나19는 전국에 걸쳐 오래 지속된 사태다. 처음에야 당황했다지만 그 뒤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올겨울을 대비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저 "아직 여유가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다 병상부족이 현실화하자 지난 13일 뒤늦게 '3주간 1만 병상 이상을 추가 확보하겠다'거나 '2025년까지 지방의료원 20개를 신·증축해 공공병원병상 5,000개를 늘리겠다'고 했다. 음압병상 문제를 겪었던 김 교수의 눈에는, 이 또한 언제 흐지부지될지 모를 약속이다.

그런 맥락에서 코로나19 중증환자 병상 확보를 위해 정부가 민간 대형병원에 병상을 내놓으라하는 것도 답답하다. 우선 현실적 문제가 크다. 겨울이라 폐렴, 심근경색, 뇌졸중 등 중환자들도 생겨나고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병실을 비우면 이 환자들은 어디로 가느냐다.

원칙의 문제도 있다. 김 교수는 "감염병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기존 의료전달체계와 감염병 전달체계를 또렷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한 병원에서 코로나19를 다루는 병실과 아닌 병실을 엄격히 구분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그는 "지금도 환자나 보호자 중에 불쑥불쑥 확진자가 발생해 원내 감염, 의료진 감염 위험이 시시때때로 불거지는데 코로나19 환자를 받으면 위험이 더 커지지 않겠느냐"며 "병원이 뚫리면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이 단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정부는 자꾸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정책을 쓸 게 아니라 차라리 체육관이나 전시장을 비워 병상을 마련하고 의료진을 파견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의료 인력 문제도 그렇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전공의 3, 4년차들에게 전문의 시험을 면제해주고 바로 현장에 투입하는 방안에 대해 김 교수는 "시험은 자격의 근간인데 이를 아예 면제해주면 특혜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며 "차라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처럼 난이도를 쉽게 해주는 방식을 고려하는 게 낫다"고 제안했다. 장기적으로는 국립중앙의료원을 국립감염병전문병원으로 만들어 음압병상 확보는 물론, 연구 및 전문인력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무엇보다 김 교수가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란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백신 논란이 있다지만, 설사 백신이 정부 계획대로 들어오고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한다 해도 그 뒤 곧장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니 그 희망마저도 백신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낼 때까지 잘 버텨낸 뒤의 얘기다. 그건 일러야 내년 말쯤에나 가능하다.

장밋빛 K방역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정부는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정부는 K방역의 성공, 일정 수준의 경제 성장률 이 두 가지를 놓치고 싶지 않겠지요. 국민도 당연히 그 두 가지를 원하고요. 하지만 방역에서는 최악을 대비해야 최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걸 절대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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