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규환 충남경찰청 프로파일러
"중학교 2학년 때 피터 홀 감독의 스릴러 영화 '스트레인저'를 봤어요. 주인공이 연쇄 살인범을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인데, 알고 보니 본인 또한 과거의 트라우마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였던 거예요. 사람의 심리라는 게 복잡하면서도 더 파고들고 싶은 묘한 게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일에 저도 모르게 끌렸습니다."
최규환(39) 충남경찰청 과학수사계 경위는 어렸을 때부터 '프로파일러' 외길 인생을 걸어온 범죄심리 마니아다. 프로파일러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1990년대, 아직 학생이던 최 경위는 한국도 20년 뒤면 강력 범죄가 수두룩한 미국처럼 전문 범죄분석가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이 '수학의 정석'을 보며 입시 준비에 한창일 때, 그는 범죄심리 서적을 책장이 닳도록 읽었다.
3일 오후 충남 예산군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규환 경위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꿈꿔왔던 일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최 경위는 경찰 범죄심리분석관 2기 출신의 '1세대 프로파일러'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06년 당시 한국 최연소 프로파일러로 경찰에 입직해 10여년 동안 전국 단위 굵직한 사건들에 투입됐다.
그런 그에게도 2002년 충남 아산시 '갱티고개 장기미제 살인'은 유독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다. 장기미제 사건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달래고자 시작한 기획이었는데, 기대하지도 않은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특히 법원에서 프로파일링 보고서를 증거로 채택한 최초의 사건이 되면서, 한국 프로파일러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최 경위는 "프로파일러들이 초창기 교육 받을 때 듣는 내용 중 하나가 '프로파일링은 수사의 기법일 뿐이지, 법정 증거로는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면서 "저도 그렇게 배웠는데. 이렇게 증거로 채택되니 지금까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철창에 가둬놓은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갱티고개 사건을 계기로 최 경위는 눈 앞의 사건을 넘어, 프로파일러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후배들에게 오랜 기간의 프로파일링 경험을 전수하고자 협업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사비를 털어 공부를 계속해 올해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도, 그런 수많은 노력 중 일부다. 현장에 대한 욕심도 후배들 못지 않아,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 10여명이 투입됐던 '이춘재 사건' 때도 아내의 양해를 구하고 한 달 간 집을 떠나있었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동국대 교수가 경찰을 떠난 뒤, 책임감이 더 커졌다고 한다.
그런 그에겐 프로파일러로서 지켜 할 제1의 원칙이 하나있다. 사소한 사건 하나라도 허투루 프로파일링하지 않는 것이다. 프로파일러는 현장의 수사팀이 사건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 직종'이라는 게 최 경위의 설명이다. 프로파일러에 대한 평가는 결국 프로파일러의 행동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선 형사들이 평생을 수사하면서 프로파일러를 만나게 되는 경우는 아마 한 두 건에 불과할 겁니다. 그래서 보통 형사들은 그 한 번의 경험으로 프로파일러를 평가합니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못하면 '프로파일링이라는 거, 수사에 전혀 도움 안되더라' 소리 듣는 거죠. '프로파일러가 도와주니 사건이 술술 풀리내'. 이 소리를 듣는 게 프로파일러로서의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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