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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 7조, 공무원이 봉으로 보이시나요

입력
2020.12.17 06: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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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세종청사. 연합뉴스

정부세종청사. 연합뉴스


코로나19 2차 유행이 한창이던 지난 8월, 시대전환당의 한 의원은 공무원 임금을 20% 삭감해 2차 재난지원금에 보태자는 주장을 내놨다.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공무원 사회 일각에서는 "우리가 정치인의 도구인가" 하는 자조섞인 안타까움이 새어나왔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코로나19, 수해 등 연이어 터진 재해·재난에 공무원들의 업무량이 폭증한데 다 재난지원금 재원 마련이라는 명목으로 공무원 연가보상비마저 전액 삭감된 와중에 나온 이야기라 박탈감은 한층 더 심했다.

국회는 한술 더 떠 공무원 다주택자 형사 처벌, 부동산 백지신탁 등 부동산 시장 안정화라는 명목으로 기본권을 침해하는 이야기를 흘리는 모양새다. 국민의 공복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국민임에도 공무원들은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되는 이러저러한 정책과 제도에 대해 뭐라고 말도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냉가슴만 앓고 있다.

정치권력만 공무원들을 함부로 대하는 게 아니다. 일부 국민들은 민원현장에서 폭언, 폭행, 악성민원으로 공무원들의 몸과 마음을 멍들게 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국에선 방역 일선에서 감염의 공포와 막대한 업무량으로도 벅찬 공무원들이 국민의 비협조와 폭행, 폭언으로 지쳐가고 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정치인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공무원을 때리고, 국민은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공무원을 때리는 사이 공무원 조직은 국민의 삶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보다 어떻게 하면 처벌받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소극적인 자세로 변해간다. 이러한 무모한 공무원 때리기는 결국 우리 사회와 전체 국민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

국민의 삶에 이익이 되려면 공무원이 특정 정권의 무리한 정책, 입법에 휩쓸리지 않고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정권은 바뀌더라도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행정은 연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문화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지금은 재난·재해나 정권의 정치적 위기와 같이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에 공무원 사회를 들었다 놨다 하는 식의 움직임이 너무 쉽게 그리고 자주 나오고 있다.

거기다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집권 여당과 청와대가 실력 있는 공무원, 소신 있는 공무원보다는 자기 정권의 말을 잘 듣는 관료만 승진시키고 요직에 중용하는 관행이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10년, 20년을 내다보고 만든 정책을 책임지는 공무원들을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전혀 상관없는 자리로 발령 내고 해당 정책은 전 정권의 유산이라며 백지화하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공무원은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신을 헌신해봐야 정권이 바뀌면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좌절감에 주눅 들지 않겠는가? 국민이 낸 세금으로 뽑아 월급 주면서 전문성을 키운 공무원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줄 서는 모습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하는 일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일 뿐, 공무원도 동일하게 기본권을 보장받는 존재다.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이미 많은 불이익을 감수하는 이들에게 민원인들의 갑질, 정치인들의 주먹구구식 입법, 정권의 줄 세우기까지 참으라고 할 수 없다. 국가의 미래,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서라도 부당한 대우는 멈춰야 한다. 자기 안위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만 전념해도 불이익 받지 않고 신나게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공무원은 봉이 아니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ㆍ성균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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