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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10년... 중동·아프리카엔 겨울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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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10년... 중동·아프리카엔 겨울이 왔다

입력
2020.12.17 04:30
수정
2020.12.17 09:3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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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혁명 10년 지났지만 권위주의 회귀
지속되는 내전에 난민 급증 등 부작용 심화
유럽선 난민 위기 가중으로 극우주의 득세
"혁명 안 끝나"... 코로나 사태가 전기될 수도

2011년 2월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가 카이로 타흐리르광장에 모여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카이로=AFP 연합뉴스

2011년 2월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가 카이로 타흐리르광장에 모여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카이로=AFP 연합뉴스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의 작은 도시 시디부지드에서 노점상을 하던 26세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날 아침 그는 외상으로 받아온 바나나 7㎏, 사과ㆍ배 다섯 상자를 단속반원에게 빼앗겼다. 뇌물을 주지 못한 탓이다. 물건은 가족의 유일한 밥벌이였다. 저울이라도 돌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담당자는 만나주지도 않았다. “이제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 불덩이에 휩싸인 채 그는 울부짖었다.

부아지지는 이듬해 1월 4일 숨졌다. 성난 이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높은 실업률과 부정부패 등 곪을 대로 곪은 모순이 폭발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분노의 불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활활 타올랐고, 국경을 넘어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바레인, 예멘 등으로 삽시간에 옮겨 붙었다. 거대한 저항의 물결은 중동ㆍ북아프리카의 독재정권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아랍의 봄’의 시작이었다.

2010년 말 튀니지 혁명과 아랍의 봄이 튀니지의 노점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으로 시작됐다. 위키피디아 캡처

2010년 말 튀니지 혁명과 아랍의 봄이 튀니지의 노점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으로 시작됐다. 위키피디아 캡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7일(현지시간) 아랍의 봄이 꼭 10년 됐다. 봄은 찰나였다. 아랍에는 시련만 더해졌다. 민주주의는커녕 정치ㆍ사회적 혼란과 갈등은 더 첨예해졌다. 결과만 보면 봄이 아니라 겨울의 초입이라는 평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튀니지에선 벤 알리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하면서 23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민주 헌법이 제정됐고 이후 다섯 차례 총선과 대선도 무사히 치렀다. 고물가 등 불안 요소는 여전하지만 그나마 유일하게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나라 사정은 정반대다. 이집트에선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독재가 종식된 뒤 첫 민선 대통령이 탄생했으나, 불과 1년 만에 쿠데타가 일어나 군부정권으로 회귀했다. 압델 파타 엘시시 현 대통령은 지난해 헌법까지 개정해 장기집권 토대를 다졌다. 권위주의로 퇴행한 것이다. 무려 42년간 집권한 무아마르 카다피가 시민군의 총격에 사망한 리비아,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33년 독재를 끝냈으나 시아파 반군이 봉기한 예멘, 수니파인 아사드 세습정권이 시아파 국민을 유혈 진압한 시리아는 내전으로 치달았고, 지난한 싸움은 진행 중이다.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는 힘의 공백을 틈 타 이 곳에 똬리를 틀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수많은 악행을 일삼았다. 노아 펠드먼 하버드대 법학 교수는 “IS는 아랍의 봄의 의도치 않은 결과물”이라며 쉽지 않은 민주화 여정을 안타까워했다.

‘아랍의 봄’이 밀어낸 독재자들. 생전 알리 압둘라 살레(앞줄 왼쪽 두번째) 예멘 대통령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앞줄 가운데),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앞줄 오른쪽 두번째) 등이 2010년 3월 리비아 시르테에서 열린 아랍 정상회의 개막식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아랍의 봄’이 밀어낸 독재자들. 생전 알리 압둘라 살레(앞줄 왼쪽 두번째) 예멘 대통령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앞줄 가운데),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앞줄 오른쪽 두번째) 등이 2010년 3월 리비아 시르테에서 열린 아랍 정상회의 개막식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아랍의 봄’ 주요 일지. 그래픽=강준구 기자

'아랍의 봄’ 주요 일지. 그래픽=강준구 기자


봄은 왜 꽃피지 못했나

아랍의 봄으로 촉발된 독재정권의 몰락이 민주화 달성으로 이어지지 못한 건 역설이다. 무소불위 권력의 부재를 채울 야당 등 대안 세력이 없었던 탓이다. 과거 독재자들은 총부리를 앞세워 종파, 부족 등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여러 세력을 억눌렀지만, 갑자기 찾아온 자유사회에서 이를 통합할 리더십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민주주의의 씨앗은 던져졌으나 뿌리 내릴 토양도, 거름도, 시간도 없었던 셈이다.

아랍사회에 강하게 남아 있는 부족주의 및 군사주의 문화와 서구 민주주의 제도 사이에 간극도 컸다. 선거는 민주 방식으로 치러도 통치는 이슬람 교리를 따르다 보니 불협화음이 빚어졌다. 인권 등 개인주의적 가치에 대한 인식도 낮았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아랍사회가 민주주의 정치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도만 들여오다 보니 혼란이 가중됐다”며 “기존의 부족ㆍ군사문화 잔재 속에서 서구식 민주주의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다보니 더 쉽게 권위주의 체제로 돌아갔다”고 풀이했다.

올해 5월 시리아 이들리브에서 아이들이 내전으로 파괴된 마을 광장에 모여 장난감 총을 들고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다. 이들리브=AFP 연합뉴스

올해 5월 시리아 이들리브에서 아이들이 내전으로 파괴된 마을 광장에 모여 장난감 총을 들고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다. 이들리브=AFP 연합뉴스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혁명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파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수년째 내전이 계속되는 시리아, 예멘, 리비아에선 수많은 사람이 죽고 난민으로 전락했다. 난민들을 가득 태운 보트가 유럽으로 향했다. 배가 난파되면서 해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세살배기 시리아 아기 아일란 쿠르디는 전 세계 사람들을 비통하게 했다.

거꾸로 유럽에선 급증하는 난민이 골칫거리다. 일반 시민에겐 난민ㆍ외국인에 대한 공포, 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불러일으켰다. 반대 급부로 극우주의도 다시 활개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18년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을 수용할 것이냐는 문제를 두고 큰 진통을 앓았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아랍 민주화 실패와 난민문제를 겪으며 세계는 민주주의, 자유주의를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며 “다자협력의 국제질서 대신 다시 각자도생의 국가주의가 득세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아랍의 봄을 실패로 단정하기엔 무리라는 견해도 있다. 한국도 4ㆍ19혁명과 5ㆍ18민주화운동, 6ㆍ10항쟁 등을 거쳐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30년 넘게 걸렸다. 아랍도 아직 민주화 과정 중이라는 것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새로운 전기(轉機)가 될 수 있다. 인 교수는 “삶의 안보 위기인 팬데믹은 공동체 의식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2014년 1월 26일 튀니지 제헌의회 의원들이 새헌법이 발표되자 수도 튀니스 의사당에서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민주화단체 연합체인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는 201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튀니스=AP 연합뉴스

2014년 1월 26일 튀니지 제헌의회 의원들이 새헌법이 발표되자 수도 튀니스 의사당에서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민주화단체 연합체인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는 201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튀니스=AP 연합뉴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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