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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 중 큰 화상 입은 10개월 아들…병원들은 퇴짜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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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 중 큰 화상 입은 10개월 아들…병원들은 퇴짜 놨다"

입력
2020.12.17 09:48
수정
2020.12.1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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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필요하지만 며칠간 병원 찾아 헤매
곳곳 의료공백… 투석 못해 아찔한 상황도
병원도 난감... 자가격리자 치료는 '무대책'

자가격리 중 화상을 입은 10개월 난 아기. 강모씨 제공

자가격리 중 화상을 입은 10개월 난 아기. 강모씨 제공

"10개월 아기가 큰 화상을 입었어요. 그런데도 자가격리 중이면 입원도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겁니까."

아직 돌도 안 된 아들의 사정을 말하며 아버지 강모(39)씨는 울분을 토했다. 강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을 받았고, 이 때문에 아내와 아들이 자가격리 상태에 있다. 그런데 화상을 입어 입원 치료가 필요한 아들은 자가격리를 이유로 병원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고 있다.

사고는 14일 경기 성남시 강씨의 집에서 일어났다. 이날 오전 강씨는 코로나19 확진 통보를 받았다. 그는 잠시 후 생활치료센터로 이동할 예정이었고, 가족은 곧바로 자가격리 조치됐다. 그런데 확진 판정으로 강씨 부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틈에, 아들이 식탁 위에 있던 라면 그릇을 건드려 얼굴과 목 쪽에 큰 화상을 입었다. 바로 인근 A병원 응급실로 옮겼지만, 얼굴에 커다란 물집이 생겼고 얼굴과 목 주변부 표피는 벗겨진 상태였다.

진단 결과 아이는 화상이 깊어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처음엔 입원을 하라고 했던 A병원 측은 갑자기 "(아이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이긴 하지만, 자가격리 중이어서 입원이 불가능하다"고 말을 바꿨다.


서울·성남 일대 병원 확인했지만 '입원 불가'

강씨의 아들이 14일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난 다음날 찍은 사진(왼쪽)과 15일 분당구 이매동의 한 개인병원 원장이 왕진을 다녀간 뒤 촬영한 사진. 강모씨 제공

강씨의 아들이 14일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난 다음날 찍은 사진(왼쪽)과 15일 분당구 이매동의 한 개인병원 원장이 왕진을 다녀간 뒤 촬영한 사진. 강모씨 제공

강씨 부부는 부랴부랴 입원이 가능한 다른 병원을 알아봤다. 보건소에서도 함께 병원을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다. 성남시 소재 병원을 비롯해 서울 대형병원 등 최소 다섯 군데에서 퇴짜를 맞았다. 일부는 입원은커녕 외래진료조차 거부했다.

발을 동동 굴리던 차에,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분당구 이매동의 개인병원 원장이 15일 오후 구급차를 타고 강씨의 집으로 직접 왕진을 와 아이를 치료했다. 화상외과 전문의인 김모 원장은 "상처가 꽤 깊은 편이고, 치료 기간이 꽤 길 것 같았다"고 말했다.

현재 가족과 떨어져 생활치료센터에 혼자 머물고 있는 강씨는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며 "코로나 때문에 아이를 볼 수도 없어 더 난감한 상황"이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17일 현재까지도 강씨 부부는 아들이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했고, 결국 성남시 시립 의료기관인 성남의료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기로 했다.

자가격리자 질환자는 진료받을 길 없어

기사 내용과 관련없는 사진. 10일 서울 은평구 역촌동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음압구급차를 타고 온 한 시민이 코로나19 격리병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기사 내용과 관련없는 사진. 10일 서울 은평구 역촌동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음압구급차를 타고 온 한 시민이 코로나19 격리병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강씨 가족 사례에서 보듯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하면서 자가격리자나 의심환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의료 공백을 실감하고 있다. 대다수 병원은 자가격리자가 다른 질환이 있는 경우 위중증이 아니라면 격리 기간이 끝난 이후에나 입원하도록 조치한다. 시급한 환자더라도 격리 치료가 가능한 격리 병동이나 음압병실이 포화상태라면 다른 병원을 찾아 전전해야 한다.

18년째 투석을 받고 있는 신부전환자 송모(59)씨는 9월 확진자를 밀접 접촉하면서 제때 투석을 받지 못해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코로나19 검사 자체가 늦어진 데다 음성 판정을 받았는데도 여러 병원에서 "자가격리자는 투석이 어렵다"고 내원을 거부한 것이다. 송씨는 우여곡절 끝에 투석을 받아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올해 초 유방암 판정을 받은 B씨(40)도 10월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기로 했으나 입원을 며칠 앞두고 자가격리자로 분류되면서 수술 연기 통보를 받았다. B씨는 3주가량 수술이 미뤄진 사이 암이 더 커지진 않을까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그는 "만져지지 않던 멍울도 만져지고, 더 커지면 어떡하나 속상했다"고 회상했다.

보건소는 보건당국 지침에 따라 자가격리자라도 시급한 경우 일선 병원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러나 병원에서 난색을 보이면 보건소도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한다. 성남시 수정구 보건소 관계자는 "자가격리자는 음성이 나왔더라도 추후 양성 판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음압병실까진 아니어도 격리된 공간에 입원을 해야 한다"며 "만약 병원에서 격리시설이 없어서 안 된다고 하면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병원도 무작정 자가격리자를 받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음성 판정을 받은 자가격리자라도 철저하게 격리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자가격리자도 확진 환자에 준해 치료를 해야 해서 상당한 의료 인력과 자원이 투입된다"며 "환자의 사정은 알지만, 의료기간 입장에서는 응급도에 따라 입원 여부를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자가격리자의 질환에 대응할 별도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입원이 필요한 자가격리자가 여러 병원을 헤매야 하는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 1,000명이 넘어서고 있어, 확진자와 접촉한 자가격리자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17일 기준 자가격리자는 1만2,209명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투석 환자, 임산부, 화상 환자 등 자가격리 중에 병원 진료가 필요한 특수한 경우에 대해서는 정부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예비 병상을 가동하거나 환자가 발생할 경우 보낼 수 있는 병상을 사전에 준비해 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한슬 기자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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