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홍성욱, 김영민 교수 등 13인?
고급 서평지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
“좋긴 한데… 그게 될까요?” “시장이 없어서 쉽지 않을 걸요.”
학계에서도 ‘애서가’로 손꼽히는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에겐 오래된 꿈이 하나 있었다. ‘매년 신간만 수만 권씩 쏟아지는 책의 홍수 속에서 ‘좋은 책’을 골라줄, 서평지가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학문적 권위와 대중적 가독성을 두루 갖춘 ‘런던리뷰오브북스(LRB)’나 ‘뉴욕리뷰오브북스(NRB)’ 같은 고급 서평지를 한국에도 만들어보자”라는 마음에, 출판계 문을 두드린 것만 수 차례.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건 “책도 안 읽는 데 서평지를 누가 읽겠냐”는 자조와 한숨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같은 학교 김영민 정치외교학부 교수도 똑같은 ‘갈증’을 느끼고 있단 걸 알았다. “우리끼리라도 일단 한번 해보죠 뭐.”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지 1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서평전문지 ‘서울리뷰오브북스(SRB)’의 탄생 비화다.
시작이 어려웠지, 이후엔 술술 풀렸다. 편집장을 맡은 홍성욱 교수를 필두로 김영민 교수,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등 13명의 어벤저스급 필진이 편집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모두 책 좋아하고, 글 잘 쓰기로 소문 난 이들이다. 사회학, 인류학, 건축학 등 전공분야도 다양했다. 50대 남성 8명, 30,40대 여성 5명 등 세대와 성별도 안배했다. 돈 걱정도 해결했다. 서울대의 ‘통 큰’ 지원에 더해 지난달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서 후원자 모집까지 ‘대박’을 치면서다. 개시 2시간 만에 목표 후원금 300만원을 달성했고, 마감 땐 3,000만원 가까운 돈이 모였다. “고급 서평지를 보고 싶어하는 대중적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것에 저희도 정말 놀랐어요.” ‘시장이 없었던 게 아니라 만들지 못해 존재하지 않았다’는 홍 교수의 ‘가설’이 적중했던 것.
SRB는 “내용은 깊지만, 문체는 쉽고 친절한 서평지”를 내세운다. 교수들끼리 모였다 해서 딱딱하고 불친절한 논문 형태의 글쓰기를 생각하면 오산. 글쓰기 제1원칙이 혼자만의 지식세계에 빠져 있는 “자폐적 글쓰기는 지양한다.”(김영민 교수)일 정도. 이달 공개된 창간준비호(0호)를 제작하면서도 서로의 글을 전부 돌려보며 어렵다 느껴지는 부분은 쉽게 다가올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학계의 서평문화를 좀 먹었던” 주례사 서평을 그만 쓰자는 데도 합의했다. “우리 학계의 고질적 문제가 외국학자 책에 대해선 굉장히 비판하며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반면, 우리나라 학자들 책에 대해선 서로 잘 아는 ‘관계인들’이다 보니, 두루뭉술 넘어가는거에요.”(홍성욱 교수) SRB가 ‘열린’ 비판과 ‘열린’ 칭찬으로 지적공동체의 권위를 세우려는 이유다.
“한국 지식사회의 공론장을 만드는 마중물이 되어보겠다”는 목표를 밝힌 SRB. 그러려면 일단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한다. 그래서 홍성욱 교수가 내세운 마케팅 컨셉은 ‘선물하기 좋은 잡지’다. “2권 사서 내가 하나 갖고, 하나는 친구한테 줄 수 있는 서평지. 읽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SRB의 ‘본격’ 창간호는 3월에 만나볼 수 있다. 일단 계간지로 출발하지만, 더 많은 좋은 책을 소개하기 위해, 격주 발간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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